조커가 사는 집
김상현 외 지음, 전홍식 옮김, SF&판타지 도서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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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사는 집>>은 2010년부 2014년 봄까지 5년간 한국 SF 단편 중 최고로 손꼽히는 다섯 작품과 SF 문화에서 영원하고도 가장 흥미로운 화두인 "인식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세 편의 신작과 번역 작품, 그리고 세 편의 짧은 에세이를 수록한 SF소설집이다. 흔히 공상 과학 소설인 SF를 떠올리면 <터미네이터><매트릭스><맨 인 블랙> 등의 영화와 같이 굉장히 거창한 것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런 거창함이 아닌 현실적인 면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진다. 이는 SF의 내용이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런 탓에 지금까지 SF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많이 바뀌어진 듯 했는데, 앞으로 우리 미래가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섬뜩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기묘한 느낌을 주지만 색다르면서도 독특한 스토리에 금새 빠져들게 된다.

 

표제작 [조커가 사는 집]은 SF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느낌을 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이야기다. 한 때 블랙잭 열풍이 불었던 고등학교 시절 주인공은 친구 태식으로부터 카드카운팅을 배우게 된다. 52장 카드의 순서를 10초만에 모조리 외워기 위해서는 카드가 사는 집을 짓어야 한다. 오랜시간에 걸쳐 머릿 속에 집을 짓게 된 주인공은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는 게 가능해졌고, 대학에서는 과동기의 제안으로 한국기억법 연구소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면서 머릿속 카드집은 오류가 생기게 되었고 예기치않은 조커의 방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식이를 찾게 되지만 결국 머릿속 카드가 사는 집은 벌거벗은 여자가 되어 무너져버린다.

 

'존재하게 하려면 통제해야 한다. 통제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은 것은 꿈과 같다.' (본문 44p)

 

사람은 살아가면서 뇌의 5%도 활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뇌의 능력을 훈련을 통해 확대시키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수없는 훈련을 통한 능력도 조커라는 예상하지 못한 존재로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SF소설이기보다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안타깝게도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에는 나의 독서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다소 뼈아픈 작품이기도 했다.

 

[옥상으로 가는 길]은 제1회 SF어워드 소설 부분 수상작으로 요즘 자주 등장하는 좀비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4층짜리 건물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다섯 명이 좀비를 피해 살아가고 있고, 일주일에 옥상에 도착하는 보급품으로 근근히 살아간다. 놈들이 계단을 장악한 후로 옥상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각 층마다 존재하는 쓰레기 배출구인데, 저주받은 몸이라 생각했던 왜소증을 가진 주인공은 환풍구보다 조금 더 넓은 정도의 이 공간에서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권력이었다.

 

정말 독특하고 눈에 띄는 작품은 [장군은 울지 않는다]라는 작품이다. 꼭 닮은 일란성쌍둥이가 태어났는데 둘은 태어날때도 잘 울지 않아서 병원에서 애를 먹었다. 더 특이한 것은 둘째가 첫째를 굉장히 괴롭힌다는 것. 다양한 방법을 써도 고쳐지지 않자 부모는 굿을 하기까지에 이르른다. 헌데 그 이유가 텔레비전에 한 천재 소년이 나온 것을 본 쌍둥이가 영재 학교에 입학하면서 밝혀진다. 이유인 즉,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인간과 가까운 곳이면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공간이동할 장소를 정하자 컴퓨터가 인간들과 가깝고, 가장 안전하면서 호흡할 수 있는 딱 한 곳으로 엄마들의 자궁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전사뿐만 아니라 지원단 모두가 지구에서 아기로 태어난 것. 정말 기발하면서도 유쾌한 상상력에 웃음이 터져나오는 스토리다. 결국 사령관인 둘째는 귀환하기로 하고 첫째는 지구에 남은 전사 5,740명을 찾아 귀환시키기 위해 남는다. 이 독특한 설정에서의 마지막 결말은 가족으로 귀결되는 듯 보인다. 과학이 발달하고 우주를 정복하는 등 SF영화 속처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도래한다해도 가족, 부모와 자식간의 끈끈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 외에도 자연의 진화를 독특하게 기록한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 [씨앗], [사건의 재구성], [큐피드], [도둑맞은 어제], 제1회 SF어워드 소설 부분 수상작 [업데이트][지하실의 여신들]도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과는 무관할 것만 같았던 SF의 세계를 현실의 이야기와 접목시킨 스토리들은 다양한 사회문제들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렇게 수록된 8편은 기발한 상상력과 작가만의 개성으로 각기 다른 매력을 뽑내고 있었다. 물론 편협한 독서력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스토리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소설은 그동안 SF소설을 외국 소설로만 국한되어 보아왔던 나에게 한국 SF소설에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어 준 의미있는 작품이다.

 

과학소설의 매력은 하나의 세포 수준에서부터 전우주적 스케일에서 인간의 삶과 인류의 문명을 조망한다는 점, 그것을 통해 자연과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경이로움을 독자들이 만끽할 수 있다는 점,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를 통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후화를 전한다는 점이다. _정재승(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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