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강지영 지음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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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비를 소재로 한 소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듯 하다. 불과 며칠 전 좀비를 소재로 한 동화책을 읽은 바 있는데, 이런 추세는 수없이 많은 바이러스와 전염병으로 인한 불안이 커져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메르스의 공포가 우리나라를 휩쓸 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천 쪼가리인 마스크에 매달리는 것 뿐이었다. 대책이 아닌 메르스 확진자가 몇 명인지에 대해서만 알려주는 뉴스만 바라봐야했을 때, 영화 <감기>가 재조명되고 있었다. 바이러스의 출현, 안일한 정부의 대책, 그리고 감염자와 의심환자들의 대책없는 격리 등이 현 상황과 너무도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외줄타기보다 아슬아슬하고, 저글링보다 짜릿한 보통 사람들의 리얼 버라이어티 가족 생존기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영화 <연가시>를 떠올리게 되었다. 제약 회사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했던 씁슬했던 장면도 소설 속에서 재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두 영화와 아주 많이 흡사하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설정도 닮아있다. 좀비라는 설정이 없었다면, 미스터리와 모험, 멜로라는 소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장치들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강지영 작가가 없었다면  정말 시시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초과가 소설과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두 달 일주일동안 세상은 초봄 무렵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감기가 슬슬 유행을 시작해, 여름이 된 지금은 곳곳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임시 휴업이나 폐업까지 선언한 상점이 늘어나고 있었다. 유독 중국과 한국에서만 발병한 이 감기는, 페인플루라 불리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는데, 공식적으로 사망자는 없었지만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 또한 없었다. 이 때, 초과는 유이 엄마에게 전화를 받게 된다. 초과가 유이를 낳은 건 9년 전 초여름이었다. 스무 살의 초과는 저체중에 저혈압, 게다가 희귀 혈액형인 RH-O형의 고위험군 산모였고 남편 이석은 대학 신입생 시절, 미국 국적의 교환학생으로 둘은 교제 3개월 만에 유이를 임신하고 예식 없이 동거를 시작했다. 위험천만한 출산으로 유이가 태어났고 얼마 후 학교와 아파트를 알아본다며 미국으로 들어간 이석은 연락이 끊겼다. 대신 이석과 서류상 부부라는 제시카가 찾아와 자신은 더 이상 아기를 낳을 수 없으니 유이를 잘 키우겠노라며 데려갔다. 헌데 유이가 탈장증세가 있어서 수술을 해야하는데 엄마가 있는 한국에서 받고 싶어 하여 곧 한국에 올 것이며 지정 헌혈자를 구해 놓기로 했던 탓에 유이에게 미리 전화를 준 것이다.

 

그동안 초과는 페인플루가 대통령이나 대통령 졸개들이 사고 치고 그거 조용히 덮으려는 수작이라 생각했지만, 유이가 오기로 한 이상 자신이 페인플루에 감염되기라도 한다면 수혈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과는 피에 좋다는 미역국 재료를 사들고 엄마와 뚜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오빠 근대, 다담달이면 몸을 풀게 될 언니 초희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초희는 초과의 신랑도 페인플루에 감염되고 집 앞 골목에서 주찬 할아버지가 최 집사의 살점을 물어뜯는 것을 보고 페인플루가 윤재가 말한 것처럼 이 괴질의 정체가 좀비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믿게 되는데 설상가상 초희마저 페인플루의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근대는 코믹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초과는 딸이 입원해있을 지성대병원으로, 초희 역시 출산을 위해 지성대병원으로 가야만 한다. 근대는 커뮤니티 회원인 지저벨과 타라를 만나 가족을 서울로 데려올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고 떠나고, 초과는 윤재의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로 떠난다. 초과는 초희를 위해 페인플루 의심환자를 신고하지만 감염 의심자들을 격리하고 확진되면 소각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것이 초희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이 되고 엄마는 딸 초희를 위해 경찰과 대치후 지성대병원으로 향한다.

 

이렇게 이들을 가족을 위해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달려간다. 좀비의 습격으로 언제 감염되어 좀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의지만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들의 횡보는 용기보다는 만용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고군분투 속에서 지저벨이 감염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엄마와 초희도 경찰에 잡히게 되는 위급한 상황에 직면하며, 윤재와 초과 역시 좀비와 특별기동대로부터 잡히게 될 상황에 처한다. 이 상황에서 5년 전 초희가 지방의 모 신문사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수상식에 참여해 알게 되었던 윤재의 비밀이 드러나고 근대와 타라 역시 이 바이러스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다. 이로써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했던 두 국가의 대립, 영생과 종말을 주장하는 사이비종교와 제약 회사들의 이익이 얽혀 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권력자들의 이익 앞에 국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세상을 구하는 건 힘센 슈퍼히어로가 아니에요. 힘없고 약점 많은 악당들이지." (본문 172p)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는 이렇게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꿋꿋이 길을 떠나는 조금은 황당하고 무모해보이는 가족의 횡보를 보여준다. 이들의 횡보 속에서 소설은 가족이라는 소재로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런 위험한 현실에서 세상을 구하는 것은 슈퍼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슈퍼히어로나 권력을 가진 국가도 아닌 힘없고 약점 많은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두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지만 자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가 있고, 가족을 위해 실험에 가담했던 아버지가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 한 줄이 빛이 되어주고 있어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은 늘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은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내용들이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지만 좀비라는 소재와 개성있는 주인공이라는 차별화를 통해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메르스의 공포를 체험한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접하게 된 소설이었던 탓에 그 공포가 좀더 크게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덧붙히자면, 개인적으로 제시카의 눈물겨운 모성애가 유독 눈길을 끈다.

 

(이미지출처: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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