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정말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 그리하여 허구라는 장치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김진명 작가의 작품은 무한 신뢰를 하게 되었다. 철저한 고증으로 대한민국 국호 韓의 유래를 밝힌 <천년의 금서>, 일본이 한반도 침략이 어떤 역사논리로 이루어졌는가를 명확히 규명한 국보급 대작 <몽유도원>,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와 난징대학살의 비밀과 참상을 그린 <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1026>,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밀리언셀러 <하늘이여 땅이여>, 경이로운 수의 비밀을 다룬 <최후의 경전>, 북한 지도자 죽음의 미스터리를 담아낸 문제작 <신의 죽음>,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을 예견한 <삼성 컨스피러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둘러싼 한·미·중의 갈등을 다룬 <싸드> 등으로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표지 中)로 인정받은 그가 이번에는 <<글자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조(吊)를 가진 자들이 조(弔)를 없앴으니… 이제 남은 것은 답(畓), 한 글자뿐.

유일하게 남은 한 글자, 답(畓)을 지켜라!(표지 中)

 

굉장히 흥미로운 문구이기는 하지만 어떤 내용일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아무 예측없이 읽을 수 있어서 스토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너무 흥미로웠던 작품, 이런저런 문제로 머리가 복잡한 지금 이 책은 정말 모든 것을 잊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몰입도가 정말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은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액자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인공 태민의 이야기와 한 소설가의 소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수재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태민은 과학고를 졸업하고 한다하는 친구들이 다 서울대학교니 포항공대니 카이스트니 지원했을 때 태민은 캘리포니아공과대학 물리학과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들어갔다. 사람들은 20대에 태민이 박사 학위를 못 받으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장담했지만 그는 박사 학위는 커녕 박사 과정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과목 A플러스의 학점에서 칼텍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냈지만, 그는 학부 과정을 마치고 전공인 물리학을 버리고 국제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꿔 스탠퍼드 석사 과정에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돈이 힘인 이 시대에 따분한 교수나 연구원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렇게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웬만한 사람들이 좀체 들어가기 힘든 무기제조업체인 록히드마틴에 보란 듯이 채용되었고 놀랍게도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국제영업 파트에서 손에 꼽히는 헤비급 사원이 되었다. 그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남북한이 군비 경쟁에 경주마처럼 매달리고 있는 동북아를 가장 큰 시장으로 보고 매달렸고 날카로운 시각을 지닌 그는 일개 영업사원에서 미국 정보계통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부상했다. 하지만 태민은 자신의 성가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사직서를 제출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테헨란로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낸 후 이 회장과의 동업으로 2년 만에 무려 50억 원을 순수익으로 챙기는 기염을 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민은 지금까지의 2년은 자리 잡는 시간이었고 앞으로의 3년을 본격적으로 한밑천 땡기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군 함정들이 줄줄이 문제가 생기자 대통령이 격노하면서 이 회장 회사에 압수수색이 들어왔고 태민의 예금 역시 모두 몰수 돼버리고 말았다. 태민은 특수 1부의 최현지 검사를 찾아가 자신의 무죄를 이야기하려 했지만 오히려 구속이 될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베이징으로 도망치고 만다. 최현지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500억을 모으겠다는 결심을 한 태민은 중국이 북한과 가깝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한국에서 사는 무기가 모조리 북한을 적으로 하는 현실에서 북한을 휘저어놓는다는 나름의 훌륭한 전략을 세우고 베이징의 한 구석진 곳에 위치한 북한 사람들의 식당을 찾아내 그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늘 혼자 다니는 인물을 발견하고 평양에서 온 감시원일지 모른다는 얘기에 접근하지만 그는 태민에게 거리를 둔다. 그런 그가 얼마 후 태민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의 치명적인 약점이 들어있다는 USB를 건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는 그의 적중대로 그날 밤 그는 피살당하게 되고, 중국 공안에 의해 그가 서울에서 온 전진우라는 인물임을 알게 된다. 태민은 그의 죽음이 유에스비와 연관이 있으며 자신도 위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에스비를 열어보게 되는데 뜻밖에도 무슨 소설 작품이 하나 담겨 있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유에스비에 담겨진 소설을 통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왕의 치세 아래 지속된 고구려의 평화 속에서 정만현 사람들은 어느 정도 먹고사는 일이 안정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예를 찾았고 대소사의 예법에 막힘이 없는 스스로를 '유생 석정'이라 칭하는 유학자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규칙이요 법으로 여기며 살았다. 촌장인 소홀라의 죽음으로 유생 석정은 '吊'로써 예를 표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한편, 정만현에 속한 한 작은 마을 아야촌의 모든 사람들이 몰살당하면서 정만현 태수 안망은 수사를 하지만 누구의 소행인지 도저히 알아낼 도리가 없었던 와중에 한 모피장수가 자신과 거래하는 아야촌과 같이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인 내터에 사는 세 명이 오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안망은 내터로 군졸 마발을 보내지만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와 허공에 긴 선을 몇 번 긋다 숨을 잃고 말았다. 안망은 이를 통해 유추를 하기 시작했고 두 마을의 사람들이 순수한 서맥족으로 풍장이라는 풍습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군졸 마발이 쓰려했던 글자가 조(弔)였음을 추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범인이고 왜 그들을 몰살시켰을까?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한편 태민은 북한이 SLBM 발사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다시 재기할 수 있음을 직감하고 보잉과의 딜을 추진한다. 일이 잘 성사되면 전진우는 500억을 벌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도 태민은 전진우의 소설을 읽었고 같은 뜻이지만 서로 다른 글자인 조 吊와 弔의 차이를 확인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태민은 이 소설이 두 글자의 대립을 통해 한자가 중국인들만이 아닌 한국인에 의해서도 만들어졌을 개연성을 제기하는 것이 아닐까를 짐작하게 된다.

 

"무른 붓 한 자루의 힘은 천만 자루의 창검보다 강하니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진실을 간하였으며 궁형에 처해지고 나서는 다시 한 번 목숨을 진실과 맞바꾸어 한평생 천하의 대소사를 기록했으니 역사는 그의 붓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숨을 쉬게 되었소." (본문 256p)

 

물 수와 밭 전을 합한 글자는 논 답으로 가장 먼저 생겼어야 할 글자다. 그런데 모든 한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화하족, 즉 한족에게는 이 논 답이란 글자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한자를 한족만이 만들었다고 할 것이가. (본문 273p)

 

태민은 최현지 검사를 복수하고 500억을 벌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과거 문명이 생기고 글자가 만들어지던 때로부터 시작된 전쟁인 한둘의 범인이 아닌 수천만, 수억의 의식을 바꾸는 데 있는 오류를 바로잡는 전쟁 사이에 서게 된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호상 박사가 장관 시절, 중국의 세계적 문호 임어당을 만났을 때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놓아서 한국이 문제가 많다고 하자 임어당이 놀라며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라는 핀잔을 들었다는 일화를 통해 한자가 정말 우리 글자일까? 라는 의문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교과서 한자 병행 표기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한자 병기가 동음이의어 등의 이해도를 높여 우리말 글의 이해력을 신장시킬 것이라는 주장과 한자가 병기되면 한자교육을 시켜야한다는 부담감,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는 부담감이 가중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물론 교과서에 수록된 대다수의 단어들이 한자어로 표기되어 있어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 한자를 알고 있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였다. 이에 나 역시도 한자를 배우는 것에는 찬성이지만 병행 표기로 인한 교육의 부담으로 나 역시도 반대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의 나라의 언어를 꼭 교과서에 병행 표기해야하느냐에 입장에서 이제는 한자가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또 다른 생각을 갖게 한 것이다. 글자전쟁은 중국인의 의식을 바꾸는 데에서만 시작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으로도 시작되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중국, 일본의 역사 왜곡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도, 국민들의 관심도 부족한 상황에서 역사 왜곡은 앞으로도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배우고 알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글자전쟁>>은 한자를 자전에 따라 발음하면 곧 우리말이 되는 이 괴리를 풀어내었으며 역사의식을 고취시켜 줄 것이다.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소설은 올바른 우리 문화,역사이해에 대한 필요성을 꼬집고 있다. 몰입도가 굉장히 높은 소설이었다. 수많은 독자들이 '김진명 김진명'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그 진실이 <<글자전쟁>>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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