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
박연미 지음, 정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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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민족이라 하지만 북한은 이제 별개의 나라일 뿐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북한의 도발은 그런 생각을 더욱 굳게 해주었고 그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전 케이블에서 우연히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잠깐 시청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탈북, 북송, 그리고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정착한 탈북자가 2만 7천명의 시대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들은 자유를 찾아 두만강을 건너고 있지만, 6.25전쟁 이후 단절되어있던 민족의 벽과 아직도 그들을 울리는 남한사회의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고자 남과 북의 화합을 모색하고자 마련된 소통 버라이어티였다. 약간의 호기심으로 방송을 시청했지만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던 터라 무심히 채널을 돌렸다. 나는 전혀 관심두지 않았다. 그들이 악몽 같았던 그곳을 목숨을 걸고 벗어났으며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인권 유린에 노출된 탈북자들의 실상을 알리고자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세계에 북한 인권의 참상을 알린 탈북 여대상의 고백을 담은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을 읽기 전까지는.

 

참 많이 무심했나보다. 몇 해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꽃제비에 관해 방송할 때만해도 그들의 안타까운 실상에 마음이 아팠었던 때가 있었지만 영국 BBC '올해의 여성 100인' 선정된 바 있는 저자 박연미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북한의 협박에도 목숨을 걸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었다. 이 책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동시 출간되었고, <그들이 보고 있는 동안>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에 부끄러웠으며 내가 당연히 여기며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금 깨달았고 감사해졌다. 그런 마음 탓인지 책을 읽다가 끝내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2007년 3월 31일, 심각한 장염이었으나 오진으로 맹장 수술로 걷기조차 힘들 만큼 쇠약해진 상태로 엄마와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중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의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강둑을 내려간 그녀의 나이는 열세 살이었고, 몸무게는 27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어린 소녀였다. 그녀가 북한에서 도망친 것은 자유를 꿈꾸기보다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배고픔과 질병, 강제 노동소의 비인간적인 환경이 결국 가족을 죽게 만들리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중국으로 떠난 뒤 소식이 끊긴 언니 은미를 찾으려는 이유도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북한의 실상-배고픔, 강제노동 등-에 대해 참 많이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연줄과 당국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중요하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대가가 보장되지 않으며 힘겨운 노동과 생존을 위한 투쟁만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이었다. 형이 감옥에 가면서 집안의 성분이 나빠지자 아버지는 단지 살기 위해 밀수 사업을 해야했고 범법자가 되어야했다. 그녀가 태어난 1993년 무렵부터 북한 경제가 무너지면서 주민들에게 부패와 뇌물, 도적질은 삶의 방식이 되어갔고 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는 이미 기근이 북쪽 지방을 장악했다. 부모님은 굶어 죽는 일만큼은 피하려고 자매만 남겨두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북한 사람들은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중국 광고나 남한 드라마, 1년은 더 지난 레슬링 경기를 보곤 했는데 그것은 지나치게 억압받으며 살기 때문에 일상이 단조롭고 암울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도피가 절실하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인 잠시나마 현실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기운이 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잠자리 잡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우리는 잠자리를 잡으면 먹었다. 동네 남자아이들이 플라스틱 라이터로 잠자리 대가리를 구웠다. 그러면 구운 고기처럼 근사한 냄새가 풍기고 맛까지 있었다. 늦여름에는 매미를 구워 먹었는데, 역시 고급 음식 취급을 받았다. 언니와 나는 하루 종일 들판에 나가 있으면서 조용하고 어두운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대한 배를 채우려 했다. (본문 102p)

 

범법자인 아빠가 잡혀 수감되면서 엄마는 자매를 외삼촌의 집에 맡겨두고 생계를 책임졌고, 이후 병을 핑계로 수용소에서 나온 아빠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언니가 중국으로 떠나게 되면서 연미와 엄마는 언니를 찾아 아빠에게 말할 시간조차 없이 중국으로 가게 된다.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넜지만 중국은 죽음도 삶도 없는 곳이었다. 인신매매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연미와 엄마는 팔려가게 되었고 성폭행과 노예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야 했으며 언니의 행방은 알 수 조차 없었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모두 끝없는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북한을 탈출한 남자들은 중국 농부들 밑에서 노예와 다를 바 없이 생활한다. 그러나 농부가 공안에 신고만 하면 체포되어 북한으로 돌려보내지므로 감히 불평도 할 수 없다. (본문 163p)

그 사람들에게 엄마는 사람이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가축과 다를 바 없었다. (본문 171p)

 

연미는 나만 생각하고 죽느냐, 가족을 살리느냐에 기로에서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인신매매 브로커 중의 하나인 홍웨이의 사업을 돕게 되고, 홍웨이의 도움을 받아 팔려간 엄마를 되찾고, 북한에 홀로 남은 아버지를 탈출시킨다. 연미는 그렇게 아기 냄새는 없어지고 진한 화장을 한 예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암으로 아버지를 잃고, 홍웨이에게 벗어나려다 후왕이라는 남자에게 납치되는 등 온갖 시련을 겪게 되지만 홍웨이의 배려로 자유를 얻게 된다. 하지만 불법체류자인 모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성인 채팅방 뿐이었다. 쌀밥을 배불리 먹고 매일 밤 겁탈당할까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었지만 채팅방은 또 다른 감옥이었다. 그러던 중 남한에 대해 잘 아는 해순을 통해 중국을 탈출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칭다오에 있는 기독교 선교단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몽골을 거쳐 2009년 한국으로 오게 된다. 탈북자에 대한 편견으로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그녀는 공부에 전념하여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엄마가 한국에서 사귄 남자친구의 폭력을 목격한 뒤 진로를 결정하여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합격하였으며 잘하지 못하리라는 주위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내게 된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며 살았지만 언니를 찾기 위한 방송 출연을 계기로 그녀는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는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북한은 그런 그녀에게 공식적인 위협을 가했고, 친인척을 동원하여 '인권 모략극의 꼭두가시'로 그녀를 몰아세웠으며 국내 일부 언론 역시 그녀의 증언에 대해 거짓, 과장된 이야기라며 논란을 부추겼지만 드러내고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말할 수 없어 그녀는 침묵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희망을 되찾았고, 자신의 과거를 당당히 밝히며 북한의 독재와 세뇌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되찾기까지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아내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을 위해 여자로서 이야기 힘든 부분까지 담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용기, 용감한 행보에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의 이야기로 인해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의 북한의 실정에 대해, 북한의 인권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선택은 없고 복종만 있는 북한의 실상은 학창시절에 반공을 심어주기 위해 학교에서 가르쳤던 내용보다 더 참혹했다. 눈을 감고 있었던 그들의 삶에 조금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은 내게 한동안 잊혀지지 않는, 오래 기억될 책이 될 듯 하다.

 

(이미지출처: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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