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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공중 그네>를 통해 처음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이후 오쿠다 히데오의 여러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의 줄거리나 소재 등에 상관없이 작가의 이름만으로 무조건 찾아읽게 되었다. 이번 책 <<나오미와 가나코>>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주저없이 선택해서 읽게 된 책이다. 사실 이런 기대감으로 책을 읽다보면서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되는데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서는 드문 일이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기대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쾌감마저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되는데 옮긴이 김해용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듯 싶다. 남편으로 인해 답답한 현실에 불만을 느끼던 델마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기만 했던 웨이트레스인 루이스가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여행길에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결국 벼랑 끝으로 차를 내몰게 된다. 이 영화를 친구와 둘이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 그리고 <<나오미와 가나코>>는 여러 면에서 닮은 꼴이다. 주인공이 두 여인이라는 점, 친구,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점, 남편 그리고 결말. 사실 결말은 전혀 다르지만 '해방감'이라는 점에서 나는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다른 결말이었지만, 두 작품 모두 쾌감을 느끼게 한 탓이다. 이 책의 결말은 또 하나의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바로 이미숙 이정재 주연의 영화 <정사>다. 두 작품의 결말은 모두 사회적 통념을 깨버렸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회적 통념으로 흔히 생각하는 결말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색다름을 선사했다. 또한 <<나오미와 가나코>>는 두 영화에서는 찾을 수 있는 작품만의 독특함을 분명 가지고 있다.
아오이 백화점 외판부에서 일하는 나오미는 오늘도 물 쓰듯 돈을 쓰는 개인 고객들을 만났다. 외판부는 거의 집사나 다름없는 일을 처리해주기도 한다. 판매와 직접 연결되는 일이라서 외판부가 고객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신입사원은 모두 매장 근무를 경험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보석 매장에 배치 되었다가 장기적인 불황 때문에 미술관 업무를 축소한 탓에 나오미는 직장을 바꿔야 할 것 같았지만 희망을 품어도 될 만큼 마땅한 직장이 없었고, 조금만 더 참으라는 인사부의 말에 그냥 단념해버렸다. 이날 저녁, 나오미는 오랜 친구인 핫토리 가나코와 식사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헌데 오후 3시가 지나 가나코로부터 감기에 걸려 취소 문자가 왔다. 가나코는 대학 동창으로는 나오미의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였다. 성격은 정반대였지만 가치관은 일치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일 년에 몇 차례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여전했고, 아마 평생 친구일 거라고 나오미는 생각했다. 가나코는 대형 가전업체에서 일했는데 작년 가을 은행권과 결혼하면서 퇴직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가나코의 남편은 늘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아마 혼자일거라 생각했던 나오미는 열이 있다면 저녁을 준비하기도 힘들 가나코를 위해 정시에 일을 마친 후 들러보기로 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조심스러운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나코의 맨션에 들르게 된 나오미는 마스크를 쓴 가나코의 볼이 공처럼 부어 있는데다 시커먼 멍이 마스크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가나코를 추궁해 남편의 폭력 이야기를 듣게 된다. 폭력 이야기는 나오미에게는 이중의 타격이었다. 봉인 되었던 기억,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얻어맞던 폭력의 광경이 떠오른 탓이다. 가나코는 나오미에게 이혼을 권유하지만 가나코는 남편의 보복이 두려워 어쩌지 못한다. 한편 나오미는 도쿄에 사는 화교들을 위한 상담회를 개최 중 300엔이 넘는 시계에 관심을 갖던 아케미라는 부인에게 제품을 소개한 후 분실된 것을 알게 되고, 경찰의 조사결과 아케미가 시계를 가져갔음을 알게 된다. 시계는 되찾는 과정에서 나오미는 아케미와 친분을 쌓게 되고, 아케미의 직원 중 가나코의 남편과 너무도 닮은 사람을 보게 된다. 이후에도 가나코 남편의 폭력이 계속되자 나오미는 가나코에게 남편을 죽이자는 제안을 한다.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나오미가 말했다. 물론 내친김에 한 말일 뿐이었지만 입 밖에 낸 순간 죽인다는 선택지가 불쑥 마음속에 출현했고, 그것이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져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다쓰로가 살아 있는 한 가나코는 계속 위협을 받는다. 그렇다면 다쓰로를 죽이는 것은 중요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중국인이었으면 그렇게 했을거라고 아케미가 말했었다. (본문 123p)
다음 날부터 나오미의 머릿속은 어떻게 다쓰로를 사라지게 만들까 하는 공상이 지배하게 되었고, 나오토 과장에서 인계받은 요요기의 사이토 씨가 치매임을 알게 된 나오미는 다쓰로의 제거 계획을 구체화 한다. 사이토 부인이 자신을 믿고 은행 업무까지 맡기면서, 나오미는 다쓰로가 사이토 부인의 예금을 착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다쓰로를 제거한 후 다쓰로를 닮은 아케미의 직원 린류키를 이용해 중국으로 출국한 것처럼 보이기로 한다. 그렇게 나오미와 가나코는 계획대로 다쓰로를 제거하게 되고, 단순 가출로 본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다쓰로의 착복을 알게 된 은행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기에 그들의 계획은 무사히 넘어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쓰로의 여동생인 요코는 흥신소에게 사건을 맡기게 되고 나오미와 가나코의 헛점이 드러나면서 그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나오미 이야기와 가나코 이야기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나오미 이야기에서는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담아냈고, 가나코 이야기에서는 살인 후 주변 인물들의 의혹으로부터 맞서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살인은 엄연한 범죄이며 그에 따른 댓가를 꼭 처벌받아야 하는 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코와 나오미의 범행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가나코를 옥죄는 주변 인물들과 그에 맞서는 가나코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고, 그들의 범행에 허점이 얼마나 많았는지가 드러날 때마다 긴장감은 더욱 팽배해졌다. 경찰로부터 협박을 받고 요코에게 쫓기면서 결국 모든 것들이 끝났다고 생각될 즈음 저자는 저혀 예상치못한 새로운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묘한 쾌감을 느끼게 했다. 이 작품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 나오미이다. 절친이라고 하지만 친구를 위해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아버지의 폭력을 심어두었다. 그것이 하나의 방편이 되었고, 가나코를 돕는 일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엄마를 도와주지 못했던 자신의 자책감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오미가 제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폭력보다 엄마의 작은 동물 같은 눈이었다. 저항도 못하고 울지도, 소리 내지도 못한 채 계속 맞았다. 지배당하는 인간의 표정을 나오미는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어니인 히로미와 손을 잡고 2층으로 도망친다. 어린아이에게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 말고 달리 선택할 게 없었다. 도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귀를 막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본문 234p)
마지막 구절을 읽어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희열! 이 두 글자만이 이 결말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폭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여자들의 현실 앞에서 수많은 허점에도 완벽한 반격을 보여준 <<나오미와 가나코>>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다른 말은 필요없다. 꼭 읽어보시라.
(이미지출처: '나오미와 가나코'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