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
이반 레필라 지음, 정창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는 두 아이가 사투를 별이는 무거운 이야기와 거기에 적합한 극적 구성, 거친 문체, 상징과 은유, 시적 언어와, 동시에 문명사회의 풍요와 빈곤의 부조리를 다루는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문제작이다. (표지 中)

 

유럽 유수 언론의 격찬을 받은 에스파냐의 사무엘 베케트, '이반 레팔라'의 문제작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는 극단의 절망에 놓인 형제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와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인간의 사투를 그린 잔혹 우화라고 한다. 처음 접해 본 에스파냐의 작품이자 이반 레팔라의 작품이었는데 굉장히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철학적인 느낌을 주지만 마지막 반전에서는 서스펜스 느낌을 주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옮긴이는 이 책에 대해 독자에게 두 가지 방식의 책읽기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이야기 그 자체를 읽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책에서 다분히 드러나는 작가의 메시지를 염두에 두며 읽는 것.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한 반전과 매력을 지닌 작품이었는데, 작가의 메시지를 염두해 읽는다면 세상의 부조리에 씁쓸해지는 그리하여 실로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자유무역과 자유시장 시스템에서, 가난한 나라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나라들이 부자라서 가난한 게 아니다.

만일 다른 나라들이 덜 부자였다면, 가난한 나라들은 모두 가능성과 더불어 훨씬 더 가난했을 것이다. -마거릿 대처

 

"아무래도 불가능해. 하지만 꼭 빠져나가고 말 거야." (본문 8p)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두 아이는 숲 한복판 깊이가 7미터 정도 되는 우물에 빠져있다. 우물은 사방이 축축한 흙과 뿌리로 뒤덮인 울퉁불퉁한 벽이 위쪽으로 비좁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흡사 꼭대기가 잘려나간 피라미드 형태였고, 우물 바닥에는 먼 발원지에서 수막을 따라 여과되며 강으로 흘러드는 시커먼 물이 고여 있으며, 그 웅덩이는 부글부글 끓으면서 거품과 함께 유칼리나무 향기를 내뿜고 있다. 형과 동생은 우물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결국 빠져나가지 못했다. 두 아이는 어떻게 우물에 갇히게 된 걸까? 궁금증에 서둘러 책을 더 읽어내려가지만 우물 안에서의 고통스러운 상황만 전해질 뿐 아이들이 우물에 갇히게 된 경위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굵은 뿌리를 외투 삼아 눈을 붙이고 아침이 되자 동생이 배고프다고 보채기 시작한다. 형은 여길 빠져나가면 먹게 된다고 달래지만 동생은 배고파서 속이 쓰리다며 가방 속에 있는 빵을 먹자고 한다. 손도 대지 않은 채 진흙이 잔뜩 묻은 가방은 한쪽 구석에 처박히듯 놓여 있다. 형은 단호하다.

 

"저건 엄마 거야."

형의 목소리가 사뭇 단호하다.

동생은 분노와 체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는다. (본문 12p)

 

형제는 간간이 먹을거리를 사러 집을 나섰고, 어떨 때는 시간을 아끼려고 숲을 관통하곤 했다. 한나절이 걸리는 길이었다. 이쯤에서 나는 생각해본다. 이렇게 먹을거리를 사러 집을 나섰던 두 아이는 숲을 관통해 걸어다가 우물에 빠졌고, 가방에 있는 빵 덩어리 하나와 말린 토마토는 엄마의 몫인가 보라고. 이제야 두 아이가 우물에 빠진 이유를 나 나름대로 해석할 법한 내용이 나왔다. 아이들은 흙냄새가 나는 물을 마시고, 손으로 짓누른 개미와 퍼런 달팽이, 이름도 모르는 조그맣고 누런 벌레, 보드라운 뿌리, 깨알만한 유충을 먹으며 버틴다. 가방 속 빵 덩이리 하나와 말린 토마토 몇 개, 무화과 몇 개, 치즈 한 조각을 아쉬워하는 동생을 향해 형은 가방은 해결책이 아니라며 뺨을 후려친다.

 

"네가 알아야 할 게 있는데,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치는 아이는 바로 나야. 말발굽으로 신을 만들려고. 그래서 내가 밟고 다닌 곳은 더 이상 풀이 나지 않았어. 비열한 자들은 나를 마치 신의 채찍인 양 두려워하더군. 내가 세상으로 긴 여행을 떠나 그들의 땅과 씨앗을 말라붙게 만들었거든." (본문 62p)

 

몇 년 전, 그러니까 내가 이미 늙었을 때, 나는 그 말굽 신발을 벗었지. 유년 시절 이후 처음이었어. 내 발은 여전히 작더라고.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고 냄새도 좋았고. 그래서 나는 그 신발을 철 상자 속의 은 상자 속의 금 상자 속에 넣은 다음, 옛날 집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숲 속 어떤 우물 속에 파묻었어. 아무도 내 신발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내 두 아들놈과 함께 말이지." (본문 65p)

 

 

 

사흘째, 동생은 벌레와 곤충, 온갖 뿌리를 모아 셔츠에 넣고서 빵빵한 덩어리로 변할 때까지 짓이기고 빻고, 형은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운동을 한다. 우물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나자 허약한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들이 우물가로 찾아왔고, 우물은 바싹 말라 나흘 째 물 한 방울 구하지 못한 채 입에서 석탄 냄새가 날 때까지 벽에 붙은 뿌리를 빨아댔다. 동생은 몸이 안 좋아지고 환각에 빠진다. 그렇게 죽음이 우물 언저리에 그 모습을 드러낼 즈음, 폭풍우가 몰아친다. 동생은 차춤 죽어가고, 형은 죽어가는 동생의 목숨을 지키고 있다. 이제 동생은 형을 쳐다보지만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형은 동생에게 사람을 죽이는 법을 가르치고, 동생은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가 바로 자신이라 고백한다.

 

굶주림과 탈진 상태가 계속되고, 동생은 실어증과 섬망증상을 보인다. 형은 혈뇨가 나오자 최후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예감한다. 급기야 동생은 죽여달라고 한다. 위로 못 나가면 지렁이처럼 땅을 뚫어서 밑으로라도 나가겠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형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준비해, 6일 이내에 널 내보낼 테니까." (본문 123p)

 

마지막 닷새, 형은 동생이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도록 힘썼고,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다짐을 받는다. 그리고 우물 속에서 보낸 첫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애썼던 것처럼. 과거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동생은 풀밭 위에 착지한다. 그리고 그들의 약속이 무엇이었는지와 우물가에 빠지게 된 반전 이유가 드러난다. 무섭다. 잔혹하다.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두 아이들의 처연함과 눈물겨운 우애 그리고 반전에서 보여주는 잔혹함은 무섭도록 긴장감을 선보이며서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렇다.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세스펜스와 강렬한 반전으로 재미를 선사한다. 그저 나름대로의 짐작으로 넘겼던 그들의 대화는 나중에 아! 라는 탄식과 함께 비로소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이 이야기 속에 문명사회의 부조리를 담아냈다. 표지를 넘기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마거릿 대처의 말을 그냥 무심코 넘겼었는데 책을 읽다보면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난 죽는 게 두렵지 않아. 모든 게 끝장이라는 식으로 살진 않아. 살다 보면, 삶이 이런 저런 조건을 제시할 때가 있어. 유일한 수단으로 과격한 행동이나 유별난 희생을 요구하면서. 물론 나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 그럼에도 견딜 수 없는 건, 이 우물처럼 황폐한 땅에서 자라는 너를 그냥 두고만 봐야 한다는 거야. 문명의 나약함 때문에 평화롭지 못하게 살다 죽는 곳, 절대 싹을 틔우지 못하는 들판의 꽃처럼 너를 여위게 만드는 공동묘지 같은 곳에서 말이지. 너무나도 작은 세상이 너를 죽게 만든 거야." (본문 90,91p)

 

절망에 놓인 형제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를 보여주고자 한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는 놀라운 반전과 거대한 은유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형제의 모습은 무시무시한 권력과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소시민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랬다. 우물 밖은 권력의 세계였으며, 우물 안은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물 밖으로 나가기 위한 두 아이의 사투, 그것은 불편하지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런지.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읽힌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그것은 독자의 마음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읽든지 충분히 이 작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놀라운 작품이라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미지출처: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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