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정황만 있을 뿐, 갈등도 없는 소설이다. 진실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상대방의 변심은 곁으로 흘러서 지나가게 하고, 거부는 가만히 받아들이고, 비밀은 덮어놓은 것이다. 말하자면, 괄호에 관한 소설이다. 문제를 괄호 속에 담아두고, 타자와는 가능한 한 부딪치지 않고 돌아서 가고, 변하는 것은 변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세상과는 최소한만 연루되고, 이야기를 억제한 채 감정과 시간이 가만히 흐르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본문 223p 작가의 말 中)

 

<풀밭 위의 식사> 이후로 참 오랜만에 전경린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듯 하다. <<해변빌라>>는 조금 독특한 책이다. 어떤 큰 사건이 펼쳐질 것만 같지만 큰 갈등없이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간다. 여타의 소설이 그러하듯 갈등과 해소 속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며 다음에는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임을 예견하면서 페이지를 넘기지만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분명 무슨 사건은 일어났지만 사건이라고, 갈등이라고 꼬집을만한 일들이 없다. 그래서인지 심심하다. 그런데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주인공 유지의 '나는 하나의 질문을 입안에 물고 굶주려 죽어가는 새였다.'(본문 22p)라는 말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상처 하나쯤, 비밀 하나쯤은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추며 살아가고 있기에 유지의 삶 속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우리는 '상대방의 변심은 곁으로 흘러서 지나가게 하고, 거부는 가만히 받아들이고, 비밀은 덮어놓은 것이다' (본문 223p) 라는 작가의 말처럼 여타의 소설이 아닌 유지의 삶처럼 그렇게 받아들이고, 덮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작품이 처음부터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다. 경어체로 시작된 이야기가 갑자기 평어체로 서술되어간다. 뜻밖의 구성에 당혹스러웠던 걸까? 인물관계나 스토리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처음에는 쉽게 몰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에 몰입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유지는 고모부를 아빠로 알고 지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빠는 고모부로, 새침하고 의뭉스럽고 냉정한 노처녀였던 작은 고모는 엄마가 되었다. 윤유지였다가 하루아침에 손유지가 되는 크레바스를 건너게 된 유지는 중학시절 세상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내면적 소란과 고통 때문에 더욱 피아노에 매달렸다. 생물교사인 이사경은 그런 그녀를 이해해주는 듯 했고, 유지는 그런 이사경을 상대로 맹랑한 음모를 저질렀다. 이사경 앞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마술이라도 시작하듯 차분하게 교복 단추를 풀고 브래지어 자국과 팬티 자국을 순진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독자라면 누구나 어떤 큰 갈등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사경의 어머니가 주말마다 자신에게 피아노를 배우러 오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작가는 왜 이런 식으로 사건은 분명 일어났으나, 일어나지 않은 듯 그렇게 사건을 무마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이러한 전개는 추후에도 여러 번 접하게 된다. 이러한 의구심이나 의문을 가진 채 책을 읽다보면 비로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해변 모래사장에 유목이 하나 올라와 있었어요. 유목은 뭉텅하게 잘린 가지 하나를 위로 뻗은 형상으로 사람 크기만 했지만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도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워 보였어요. 슬픔이라는 단어는 약해요. 비통 같은 현재형도 아니에요. 차라리 바다 전체의 무게로 변한 감정이었어요. 얼마나 오래 바다 밑을 떠돌았는지 나무의 결이 부식되어 켜켜이 부풀었고 나무 표면도 해진 틈 속에 새끼 조개가 다닥다닥 붙어 진액을 빨고 있더군요. (본문 119p)

 

유지는 그렇게 이상경의 어머니인 노부인에게 피아노를 배우기도 하고, 손자인 연조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한다. 누구보다 유지를 강하게 추궁하는 생모인 이린을 통해 유지는 이사경과 손이린 사이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간파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유지는 피아노호텔이라는 이름의 학원을 운영하게 된다. 유지와 일본으로 떠난 이린, 피아노의 패잔병들 같았던 남자친구와의 이별, 연조와의 만남, 연조의 아들 환 그리고 해변을 찾는 사람들 모두가 어떤 방법으로도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슬픔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경린 작가는 이렇게 타자와는 가능한 한 부딪치지 않고 돌아서 가고, 변하는 것은 변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세상과는 최소한만 연루되고, 감정과 시간이 가만히 흐르듯이 그 슬픔들을 담담하게 그려나갔다. 하지만 모호한 것은 담담한 듯 하면서도 결코 담담하지 않은 듯한, 사건이 있지만 없는 듯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경린 작가의 필력인 것인가?

아무리 잔잔한 바다라 할지라도 파도는 친다. <<해변빌라>>는 마치 이런 바다와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무척이나 독특하지만, 그들의 삶이 바로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어 평범하기도 한 작품이다.

 

충돌을 피하고 사건을 자꾸만 주저앉히고 이야기를 자꾸만 무화시키는 사이에도 소설은 흘러가며 구조와 배치와 인물 구성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그러니까 억제해도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소설의 내부에 의식과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로 인해 인물 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자신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흐름이 바뀌고 구조에 변화가 오고 차이를 만들어내며 재조정된다. 결국 괄호는 열리고 삶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본문 224p 작가의 말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