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히어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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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의 대지진을 겪은 저자가 온갖 장소에서 이 대지진을 경험한 사람,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를 향해 쓴 신작 <<스위트 히어애프터>>가 출간되었다.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하고 선택한 책이다. 갑작스러운 상실에 대한 단상을 담아낸 이 작품은 슬픔 너머 희망을 볼 수 있게 하는 위로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데, 나는 갑작스러운 상실과 예고된 상실은 슬픔의 정도가 참 다르다는 것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10년 간의 투병생활을 했지만 엄마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 전혀 아니었고, 오랜 지병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할머니의 죽음은 가족 모두 예견하고 있었던 죽음이었다. 서로 다른 두 죽음에 대한 슬픔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지극히 평범하게만 느껴졌던 그날,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평범하기만 했던 하루를 엄청한 고통스러운 하루로 순식간에 바뀌어 놓는다. 어느 누구의 위로도 소용없을 것만 같은 고통과 상실감은 희망마저도 죽음으로 내몬다. 헌데, 요시모토 바나나는 갑자기 찾아온 이별로 고통받는 사요코를 통해 위로와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위로가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도쿄와 교토에 살면서 장거리를 연애를 하던 연인 요이치와 사요코는 여름의 끝, 요이치가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인 캐나다 싱어송 라이터 레너드 코헨의 「Lover, Lover, Lover」를 들으며 구라마 온천에서 돌아가는 길에 반대 차선에서 졸음운전을 하며 달려오던 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강가를 향해 거의 반쯤 추락하고,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스물여덟 살의 사요코는 인생이 거의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지만, 배에 쇠막대기가 푹 꽂혀있는 것을 보며 '죽음은 바로 가까이에 있다.'라는 진실을 확인하고 만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바람은 아무쪼록 요이치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마저 전부 그에게 줄 것이니 요이치가 살아 있기를… 그녀는 서둘러 기도했다. 그 후 그녀는 한없이 아름다운 세계에 머물러 오래전에 죽은 강아지를 만났다. 모든 것이 아침이나 저녁노을처럼 생명의 반짝임으로 은근히 타올라 아름다운 세상에 감탄하던 때, 죽은 할아버지가 불쑥 찾아와 속세에서 좀 더 수행을 하고 오라한다. 이곳에서의 좋은 기분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이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라 말하면서. 할아버지 등에 기대 있는 사이에 그녀의 의식은 사라졌고 번뜩 눈을 떴을 때 온통 아픈 육체 속에 묵직하게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아 요이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다. 사요코는 서른이 되었을 무렵에는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여러 가지 인생이 있겠지만, 그 사람과는 사랑하다 헤어졌고, 천국의 한 걸음 앞에서 죽은 애완견을 꼭 껴안을 수 있었고, 할리 데이비슨을 탄 할아버지의 배웅을 받아 여기 있으니, 그럼 된 거지 뭐, 하고 나는 가슴 깊이 생각했다. 이런 걸 다행스러워한다는 것 자체가 머리를 다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슬프지 않다면 딱히 상관없다. (본문 45p)

 

단골 바 '시리시리'의 주인 아저씨 신카키 씨는 그런 그녀를 두고 사고 때 얼을 떨어뜨리고 살아난 모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자신이 좋다고, 늘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머리를 다친 탓인지 사고 이후로 그녀의 눈에는 늘 이상한 것이 보였다. 현실에는 눈앞에 없을 온갖 색과 반투명한 사람들이 보이게 된 것이다. '시리시리'의 카운터 저 끝에 앉아 리듬을 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머리 긴 여자와 사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곧 철거될 아파트의 2층 모퉁이 방에 늘 방긋거리고 있는 여자 유령이 보인다. 환하게 웃는 유령이 누구이며, 왜 저기 있는지 궁금했던 사요코는 아파트 입구에서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어머니가 보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아타루 씨와 친구가 되었다. 샤오코에게는 자신을 죽은 아들의 아내로 대하는 요이치의 부모님이 있었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모른 척 할 수 밖에 없는 그렇지만 의지가 되는 신키치 씨가 있었으며, 유령이 보이는 자신을 스스럼없이 친구로 받아준 아타루 씨가 있었다.

 

이제 됐어요, 혼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래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지금의 자신에 만족해요. 어떻게든 될 거고, 이렇게 사는 기분도 나쁘지 않아요. 인생이란 안 그래도 애매모호한 일이 많고 명확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그런 부분을 줄여 가고 싶어요.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챙겨 볼까 하는 욕심은 이제 넌더리가 나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한 가지 소망입니다. (본문 141,142p)

 

그녀는 그들이 있어 새로운 추억 하나를 더 만들었고, 그가 있던 교토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새로이 태어날 수 있었다. 과도하게 섞이지 않는 하루하루의 무상한 생활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고통을 치유하고 슬픔 너머의 희망을 되찾게 되었다. 채워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삶에서, 떨어뜨렸던 얼을 되찾고 삶의 의지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소한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리라. 고통에서, 상실감에서,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하기 보다는 떠나보낸 이들과의 시간을 공유하고, 함께했던 시간들이 즐거웠다는 것을 기억하는 마음이면 되는 거였음을 사요코는 안다.

 

나는 살아 있다, 그러니까 살자, 살아 주자. 그렇게 생각했더니 왠지는 몰라도 죽은 이에 대한 애도로 가라앉아 가던 세계에서 벗어났다. 일방적으로 그를 잃은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죽을 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했던 강아지와 할아버지밖에 만나지 못한 것은, 가령 서로 사랑했어도 마지막에는 어디를 가든 어떤 결정을 하든 혼자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그의 그림자뿐. 즐거웠던 추억뿐. 뒤집어 말하면, 누구도 그것만은 내게서 빼앗을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기에 나는 지금을 살 수 있었다. (본문 51p)

 

삶과 죽음은 서로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죽음은 정말 바로 가까이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신가키 씨가 한 말이 있다. 저세상과 이 세상은 원래 섞여 있으며 과도하게 섞이지 않도록 하루하루의 무상한 생활 속에서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말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상실감을 겪게 될 것이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날도 있을 것이고, 죽음이 바로 내 앞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생사는 그렇게 우리 속에 섞여 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에게 죽음과 이별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별의 순간도 죽음도 사요코가 경험한 죽음의 경계를 통해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하게 한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이별의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그 시간은 죽음의 순간 앞에서도 고통스럽지 않을 것만 같은 놀라운 마법. 그 마법을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픈 이별을 겪은 적이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그렇게 위로와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과 시간의 공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운다. 그것은 삶과 죽음에 있서도 힘이 되어주는 마법이니까.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참 아름다운 책이 아닌가 싶다. 담담하면서도 여운을 담기는 책 <<스위트 히어애프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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