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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ㅣ 클래식 보물창고 37
헤르만 헤세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6월
평점 :
얼마 전 헤르만 헤세에 관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헤르만 헤세의 삶을 살펴보니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었고, 이에 다시금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읽어본 것은 <데미안>이 유일했기에 이번 기회에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보물창고의 <클래식보물창고> 시리즈에서 <<싯다르타>>가 출간되어 주저없이 읽어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로인한 그의 작품 세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해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 쉽게 표현하자면, 이 작품은 불교의 창시자이며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 싯다르타와 이름이 같은 브라만의 아들인 주인공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담아낸 성장소설이다. 허나 그의 고뇌, 동양 사상, 종교 등이 어우러지면서 마치 철학 인문서적을 방불케하는 장엄함과 엄숙함으로 인해 무겁고 어렵게 느껴진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면세계를 탐구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평생 창작의 화두로 삼았던 작가(본문 218p)의 본연 그 자체이리라.
손짓이며 표정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품격을 지님으로써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싯다르트 자신은 가슴속에 일말의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싯다르타의 가슴속에는 불만감이 싹트기 시작했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친구인 고빈다의 사랑이 자신을 달래 주고, 만족시키고,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 제물을 바치는 것 등에 관한 종교적인 제식과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 가장 중요한 존재, 유일하게 중요한 존재인 신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다. 갈증과 고뇌를 갖는 그는 결국 탁발승들에게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친구 고빈다 역시 싯다르타와 함께했다. 싯다르타의 목표는 한 가지였다. 단 하나의 유일한 그 목표란 완전히 텅 비우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곧 갈증, 소망, 꿈, 기쁨 그리고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아가 텅 비어 버리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더 이상 자아로 남지 않게 되어 완전히 텅 비어 버린 가슴속에서 평정을 발견하고, 자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디어 버린 사유 속에서 경이로운 어떤 세계를 마주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탁발승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자아를 벗어날 수 있는 수많은 길들을 가는 법을 배웠지만 결국에는 자아로 되돌아왔고, 시간 이란 것에서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에 싯다르타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깨달음의 경지에 점차 이르고 있는 중인지에 대해 또 고민하게 되었고, 이러한 깨달음의 최대 적은 바로 알고자 하는 것, 곧 배우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탁발승들과 함께 지낸면서 수행을 한 지 3년 정도 지났을 무렵, '고타마'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이 세상의 고통을 완전히 극복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숲 속에 있던 탁발승들에게도, 싯다르타에게도, 고빈다에게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들렸고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고타마를 찾아 그의 놀라운 설법을 듣게 된다. 그동안 싯다르타의 그림자였던 고빈다는 그의 설법을 들은 후 스스로 붓다의 사문이 되기를 청했으나 그동안 해탈의 길을 가고자 했던 싯다르타는 오히려 떠나는 것을 택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설법을 통해 모든 스승님들과 모든 가르침을 떠나 오로지 혼자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또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떠나고자 한 것이다. 비록 친구를 빼앗겼지만 어떤 가르침도 자신을 더 이상 유혹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는 많은 것을 알게 한 가르침과 스승님들이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자문을 통해 자신이 자아에 대한 의미와 본질을 배우고 싶어했음을 깨닫는다. 아트만을, 삶과 생명을, 신적인 것을, 궁극적인 그것을 발견하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그 어떤 가르침도 배우지 않고 자신 스스로에게서 배우고, 자신의 제자가 됨으로써 자신을 알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그는 한껏 자유로워진 눈으로 세상에 머물렀고, 창녀 카밀라와 상인 카마스와미를 통해 사랑의 쾌락과 돈에 빠져들어야 했고, 장사꾼이, 주사위 노름꾼이, 술주정뱅이가, 탐욕가가 되었다. 그는 한없이 타락하고, 한없이 길을 잃고 헤매면서 모든 지식에서 벗어나 결국 죽음을 찾게 되었으나 그것은 자비를 체험하기 위해서, 다시금 옴을 듣기 위해서, 다시금 제대로 푹 자고 제대로 깨어날 수 있기 위해서였음을 깨닫고 새로운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났음을 느끼며 기뻐한다. 그리고 이후 깨달음의 길을 선택한 고빈다와 새로운 싯다르타가 만나게 되는데, 오랜 깨달음의 길을 걸었던 고빈다는 오히려 싯다르타의 미소에서 자신이 평생 동안 사랑했던 모든 것을, 자신의 삶에서 가치 있고 신성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난 내가 직접 깨달은 바를 말하는 거야.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그렇게 할 수 없어. 우리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 살아갈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지혜에 대해 고심하고 정진할 수도 있고, 지혜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어. 하지만 지혜에 대해서는 말할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도 없지. 그러한 사실을 난 이미 젊은 시절에 이따금씩 알아챘어. 그래서 스승님들을 떠난 거야. 고빈다, 나는 어떤 하나의 사상을 발견했어. (중략) 나는 쾌락과 물질에 대한 욕심과 허영심이 필요했어. 치욕스럽기 짝이 없는 절망감도 필요했고. 그건 모두 내가 반항하고 거스르는 것을 포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 세상을 내가 소망하고 상상했던 세상과 더 이상 비교하지 않고, 내가 머릿속에 이리저리 그려 보았던 완전한 어떤 상태와 비교하지 않고 이 세상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지. 아, 고빈다, 이런 생각들이 내가 문뜩문뜩 깨달은 것 중 몇 가지야." (본문 205~205p)
"아, 고빈다, 자네는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비웃을 거야. 그건 바로 사랑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점이야. 이 세상을 훤히 꿰뚫어 보고, 이 세상을 설명하고, 이 세상을 경멸하는 것은 위대한 사상가의 몫이겠지.내가 유일하게 중시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경멸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 자신과 모든 존재들을 사랑과 경탄의 마음으로 그리고 존경의 마음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뿐이야." (본문 208,209p)
<<싯다르타>>는 한 청년의 자아에 대한 끝없는 갈증과 고뇌를 통한 인생의 여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철학적 사유가 오롯이 담긴 책이다. 싯다르타의 고뇌와 갈등, 자아의 실현 등에 관한 이야기들 중 많은 부분에 대해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 우리가 세상과 융화되는 법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도 그 결론이 사랑에 이르렀던 것처럼 한 청년의 오랜 끝없는 고뇌의 결론은 사랑이었다. 그 어떤 깨달음이나 설법도 번뇌와 갈구를 채워줄 수는 없다. 그것은 자아실현을 통해서만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게 읽어나갔던 책이었으나 그만큼의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기에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