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비뚤어지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7
진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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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주목할 시선상' 수상작 <<좀 삐둘어지다>>라는 제목만으로 이 책이 사춘기 청소년들의 조금 비뚤어진 소재로 '지극히 당연한' 스토리의 청소년 문학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책 표지도 그렇고, 책 제목의 '좀 비'를 두각시킨 점도 그렇고 단순한 청소년 문학이 아님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자의 이름이 '진저'라는 점, 소재가 좀비라는 점은 너무도 당연히 외국문학이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순수한 한국 문학이다. 청소년 문학이 폭넓은 소재로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이 기뻤으며, 자의든 타의든 책과 멀어지는 청소년들이 이러한 흥미로운 소재로 인해 책과 다시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레였다. 흥미로운 책 제목과 표지삽화가 한번 더 눈길을 끌게하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롭고, 잔인하다. 그렇다고해서 단순한 흥미 위주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가족,세상과 단절되었던 청소년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모습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소재, 놀라운 흡입력, 빠른 전개는 독자들로 하여금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인기 중년 여배우, 연해린이 '하이'라는 약을 먹고 자신의 펜트하우스 7층에서 추락한 후 좀비가 되었다. 유명 여배우의 추락과 부활 그리고 살육의 광기는 2015년의 한반도를 핏빛 바다로 몰아넣은 시발점이 되었다. 이날 이후 세상은 발칵 뒤집혔고 천지개벽을 해버렸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죽어나갔다가 되살아났고, 되살아난 이들은 이내 인육을 탐하는 괴물로 재탄생했다. 세상은 그들을 '부활자' 혹은 '좀비'라고 불렀으며, 세상은 급속하게 추락하였고 그야말로 무법지대, 바야흐로 '좀비 시대가' 열려 버렸다.  이러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 주목할 만한 정보는 연해린이 몸을 던지기 직전 '하이'라는 흥분제를 50정 이상 입에 털어 넣었다는 사실이었고, '하이'는 자살과 육식 행위를 중동시키는 물질로 변질되었다가 두 알을 연속해서 복용하면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키울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변해버렸다.

 

24시간 내내 화재, 사이렌 소리, 사람들과 짐승들의 끊임없는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도심 한복판에서 총포가 울리는 비틀어진 세상에서 가출팸 무리의 아이들이 가족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어른들은 죄다 죽거나 도망갔기에 아이들 밖에 눈에 띄지 않는 동네를 '19금 구역'이라 부르는 팔정동에 사는 문어파, 상용동 옥탑방에 사는 여섯 아이들이 가족이 된 대장파가 바로 그들이다.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말없이 사라져버린 탓에 옥탑방은 오롯이 대장의 소유가 되었고, 대장은 집 나간 아버지 대신 가출한 십대들을 불러들여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었다. 대장의 따까리 노릇을 하는 참모, 지능이 한 스푼 모자란 탓에 분도, 초등학생 여자아이인 열두 살의 레몬 그리고 현웅과 대장이 살뜰이 챙기는 미강이다. 좀비들이 업그레이드 된 핑크는 아이들의 숨통을 점점 죄었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은 핑크와 사투를 벌이며 삶과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로인해 이들은 현웅을 잃고 연해린의 아들 룩을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런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삶 속에서 가출팸 아이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룩의 도움으로 구한 하이는 좀비에 대한 면역을 키워주지 못했고, 이제 미강, 레몬, 룩만이 남아 서로를 보듬으며 옥탑방을 지키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과 세상과 단절했던 이들은 이제 지쳐서 엎드려버린 세상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일상. 그들은 이제 폐허의 도시에서 좀비와, 핑크와, 공생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뜨겁게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 현재는 그것만이 중요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바로 몇 분 뒤에 저 세상으로 갈지도 모를 일이기에. 물론, 똥줄 빠지게 발악하며 살아갈 각오는 필요했다. 그렇기에 좀비 교과서도 열심히 보고, 새로운 무기도 열심히 찾아다녀야 한다. 대장의 말대로 자살하면 지는 거니까. 지는 건 죽기보다 더 싫으니까. 어쨌든 살아야 한다. 비뚤어져도 살아야 한다.

미강은 끈질기게 외쳐대었다.

"안녀엉!"

그녀는 금빛 테두리를 두른 태양을 향해 마음껏 웃었다. 말을 걸었다.

지쳐서 엎드려버린 세상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볼 때였다. (본문 248,249p)

 

<<좀 비뚤어지다>>는 스스로 가족과 단절한 가출 청소년들이 살아남기 위한 아이들의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다. 좀비와의 사투 속에서 보여지는 스펙타클한 묘사들이 흥미로운 작품 속에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과 소통하게 된 아이들의 모습은 희망 또한 담아내고 있다. 너무도 흔한 주제인 '희망'이 좀비라는 신선한 소재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희망의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동안 만나왔던 청소년 문학의 공통된 소재와 주제들에 식상한 느낌이 들던 찰나에, 오랜만에 흥미로운 소재의 청소년 문학과 만나게 된 듯하여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다. 조금 잔인한 면이 있었지만. 이렇듯 다양한 소재의 청소년 문학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아이들,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진저 정선영 작가가 현재 네이버 웹소설 코너에서 판타지 좀비 소설인 <스니커즈를 신은 소녀>를 연재하고 있다고 하니, 얼른 달려가봐야겠다. 또다른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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