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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아내가 있다 - 세상에 내 편인 오직 한 사람, 마녀 아내에게 바치는 시인 남편의 미련한 고백
전윤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5월
평점 :
다 그렇다 하긴 어렵겠지만 이 세상의 부부들은 서로 깊이 사랑한다. 다만 사랑한다는 표현보다 불만을 말하기가 쉬운 탓에 밖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보일 뿐이다. 아내를 생각하는 책을 한 권 쓴 것이 내가 유별나게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라는 걸 증명한다고 할 순 없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도 다 이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표현하는 방법이 약한 것이고 내 경우는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기 때문에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을 뿐이다. (본문 '아내와 나는 아직 연애 중이다' 中)
시인 전윤호는 이 시산문집에 담은 글들이 아내를 사랑하는 다른 남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대신할 수 있기를 바랐다. 결혼한 지 20년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 역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참 약하다. 결혼 전의 달콤한 애정표현은 잊은 지 오래다. 그렇다고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의심한 적은 없다. 이것이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겠거니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헌데 이 시집을 읽다보니 시인 남편을 둔 아내는 참 좋겠다,는 부러움 섞인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서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필요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시인 남편 한 트럭을 갖다준다 한들, 내 남편과 바꾸겠는가. 저자의 바람처럼 그저 그의 시로 내 남편의 마음을 대신해보련다.
<<나에겐 아내가 있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아내, 가족 등에 대한 생각을 예리한 시선으로 '시'형식을 빌어 묘사하고 있으며, 산문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그들의 연애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몇 번씩 사직서를 던지는 남편 옆을 지켜주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나 자식 문제로 싸우는 부부의 모습이라던가, 허덕허덕했던 결혼 생활 등을 주저없이 들려준다. 저자는 자기 마누라 얘기를 쓰는 것을 무슨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꺼려하는 풍토에서 과감하게 금기를 깨려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부부,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사실 많이 닮아있다. 그러기에 누구나 공감하고 위로받고 감동받을 수 있는 소재는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탁월한 소재를 끄집어냈다 할 수 있으리라.
한밤 혼자 깨어_도굴범
잠든 아내를 바라본다
가슴 위에 가지런한
가는 손목을 잡아본다
종일 몸살이 났다더니
먼저 누웠다
새벽 내 출근시간에 맞춰 놓은 사발시계가
그녀의 부장품이다
순장당한 그녀들이 꿈들이
여기저기 반짝이며 널려 있다
아직도 파 냄새가 난다
깊고 후텁지근한 내 고분
들개처럼 쪼그려 앉아
밤을 샌다 (본문 32p)
그는 이 시에서 옛날에는 주인이 죽으면 부하나 하인들이 산 채로 순장되었고, 권력이 강한 자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순장되었는데, 자신처럼 못난 자에게도 순장자가 있다고 말한다. 무슨 권리로 그녀의 삶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자신을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지키는 한마리 들개로 만들고 있다. 자신 때문에 꿈을 포기한 아내의 야윈 모습을 보다가 쓴 이 시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세상의 모든 아내를 위한 시라해도 좋겠다.

[마녀의 나라]는 정말 재미있는 시라 생각된다. 자신의 안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아 아내가 무섭다는 내용을 담은 시이다. 저자는 아내들을 마녀로 표현하고 있는데, 뉴스를 보면서 악당들이 세상을 망친다고 그저 소주나 마시고 소리 지르는 것밖에 모르는 남자들은 속고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은 천년 묵은 여자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저자는 산문을 통해 절대 아내에게 까불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일 뿐이니까. 썩 마음에 드는 시이다. 물론 저자는 세상 남편들의 적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산문으로 저자는 다시는 맞을 일도, 밥을 굶을 일도 없을 듯 싶다.
쥐뿔
난 얼치기 사기꾼
쥐뿔도 없으면서
사람을 낚으려 하지
종일 기다려도 빈 바구니뿐이었던
내게 걸린 단 하나의 월척
운이 좋으면
소도 뒷걸음치다 쥐를 잡지만
그 반대라면 나 같은 남편을 만나는 법
한 번의 선택에 두 아들을 떠안고
살기 위해
종일 남의 집들을 방문하는
당신은 내 인생의 고발자
보상할 수 없는 죄책감에
당신의 머리맡에서
불면의 종신형을 살고 있다네 (본문 164p)
어린 나이에 너무 중요한 선택을하여 그 선택을 책임지고 있는 아내는 몸이 고생스럽고 그런 아내를 보는 자신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저자는 그래도 이렇게 서로 이해하면서 늙어가는 것이 부부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된 삶을 살아가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 등이 시 속에 잘 배어져 있다. 이 시산문집에 담겨진 대부분의 시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미사여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향한 저자의 애정이 잘 드러나 있었다. 그들의 삶이 바로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저자를 통해 남편의 마음을 대신 읽게 된다. 저자의 아내에 대한 위로가 남편이 내게 주는 위로인 양 느껴지는 <<나에겐 아내가 있다>>는 남편에게, 아내에게 좋은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세상에 내 편인 오직 한 사람, 아내(혹은 아내)에 대한 마음을 이 책 한 권으로 전달해보면 어떨까. 소소해서 더 트별한 사랑 고백이었다.
(이미지출처: '나에겐 아내가 있다'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