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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평점 :
"이야기가 시작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실 수 없습니다." (표지 중)
그랬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 도저히 책을 손에서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아주 급한 용무가 아니면 나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었다.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야기는 그리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섬뜩했고, 때로는 생각하기도 싫었으며, 때로는 강한 여운이 남아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결코 믿기지 않는 말그대로 허구뿐인 이야기들이라 생각되었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남들은 믿기 힘든 이야기 혹은 마음속에 감추어두었던 이야기들이 있기에 그저 허구라고 단정짓기에는 아쉬운 무언가가 존재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엄마 아빠를 졸라 옆집에서 텐트며 침남 등의 캠핑 도구를 빌려 계곡으로 피서를 오게 된 아홉 살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유 없는 불안감이 소년의 마음속에서 뒤척일 때 갑작스러운 폭우가 시작되었고, 소년은 엄마 아빠를 잃었다. 이 폭우로 60명이 죽고 32명이 실종되었지만 소년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어른이 된 소년 정우는 '월간 풍문' 잡지를 출간하는 상당히 미스터리한 출판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책을 포장하고 주소 라벨을 붙히거나 자료 정리를 맡아왔던 정우는 대오 선배와 함께 '밤의 이야기꾼'을 취재하는 첫 임무를 맡게 된다. '밤의 이야기꾼'들을 취재하기 위해 가게 된 곳은 목련 흉가라는 이름은 붙은 폐가였다. '밤의 이야기꾼들'에는 멤버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 이야기를 하되 반드시 자신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특이한 규칙이 있으며, 매년 한 번씩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은 사근사근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를 지닌 여자를 비롯해 중년의 남자, 연령을 짐작하기 힘든 목소리의 남자, 소리가 묘하게 울리는 여자 등 여섯 명이었다. 정우는 각기 다른 여섯 개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축축한 어둠 속을 맴돌자 메스꺼워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뛰쳐나왔다. 토하던 정우는 뒤편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발소리가 가까워짐을 느끼고 위험을 감지하여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았지만 빛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호 선배의 도움으로 다시 합류하게 된 정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곧 빠져들고 말았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지 않느냐는 여자의 질문과 시작된 이야기는 고집과 오만을 갑옷처럼 두르고 폭력이라는 무기로 아내를 괴롭히는 K라는 남성이 부인으로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실종과 관련된 옛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이야기다. 잃어버린 물건과 난쟁이 이야기는 그리 괴기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었음에도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다음은 호감 가는 말투의 품위 있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정신과 의사가 그가 만난 기묘한 환자 B는 도플갱어를 만나 불안해했다. 의사가 보기에 B는 성형으로 인한 우울증과 불안장애 그리고 망상에 이르는 복합적인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듯 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B는 전에 볼 수 없이 목소리에 생기가 가득했다. B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된 의사는 그녀가 "제가 드디어 B를 처치했어요. 저희 집에 잡아 가뒀다니까요."라는 말을 듣게 되고, 그녀의 집에 쓰러진 사람을 보게 된다. 오싹하지는 않았지만, 의사가 만난 여자가 B였을지 아니면 정말 도플갱어였을지에 대한 의문을 갖다보면 점점 섬뜩한 기분을 느껴진다. 정우가 그렇듯 나 역시 '밤의 이야기꾼들'에 푹 빠져들고 있었고, 털끈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집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난한 전업 작가였으나 석 달 전 출간한 책의 반응이 좋아 전세 대출을 받고 새로 집을 구하게 된 그는 주인 남자를 만나게 되지만 곧 그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사 후 남자는 주기적으로 집을 찾아왔으며 가족들 사이를 맴돌았다. 집에 대한 두 가장의 지독하면서도 섬뜩한 이야기를 들은 정우는 이 남자가 모녀 살해 사건의 살인자임을 알게 되지만 이 모임의 규칙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네번째 이야기는 목소리만으로도 섬뜩함을 불러일으켰던 여자의 이야기로 정우는 이번 이야기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랬다. 이 야기는 정말 위험했다. 아니 위험하다기보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이야기는 계속 내 주위를 맴돌았다.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사랑, 관심받지 못했던 여자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으며 미친놈 자식새끼하고는 어울리지 말라는 마을 어른들로 인해 친구도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는 아버지가 젊었을 적에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 사 왔다는 피에로 뿐이었다. 곰팡내나는 다락과 그 안에 깃들어 있던 끈적끈적한 어둠이 안식처였던 그녀는 피에로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았고 피에로는 항상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피에로가 알려준 대로 늘 웃었고, 피에로가 가르쳐주는대로 쥐를 가지고 놀았으며, 이후 고양이, 강아지까지 잡아서 가지고 놀았다. 늘 실실 웃는다고 미친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도시에서 전학오게 된 Y와 짝이 되었고, 더 끔찍한 변화를 겪게 된다. 정말이지 너무도 섬뜩한 이야기 [웃는 여자]는 소름끼치는, 그래서 읽고 싶지 않으면서도 몰입해서 읽게 되는 자극적인 이야기였다. 정말이지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음엔 무뚝뚝하고 목소리가 탁한 남자의 30년이 훌쩍 넘은 여자친구와 저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 오싹함과 동시에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토해진 진실하면서도 축악하고 섬뜩한 강력한 이야기가 끝나자, 사회자는 처음 참석하게 된 정우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정우는 아홉 살 여름의 그 먹먹했던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고, '밤의 이야기꾼들'이 진행되는 동안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존재들이 아주 잠시 동안 실체를 얻어 이 세상에 오게 된다는 사회자의 말처럼 정우는 이야기가 끝낸 후 아빠와 엄마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이 책 <<밤의 이야기꾼들>>을 읽으려 한다면 나는 꼭 '밤'에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섬뜩함, 털끝이 삐죽삐죽 서는 느낌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어떤 이야기는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섬뜩했으며, 어떤 이야기는 곱씹을수록 오싹한 느낌을 느끼게 되었고, 어떤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듯 했고, 어떤 이야기는 도저히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이야기임에도 묘한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수학여행에서 늦은 밤, 친구들끼리 모여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잠못 이루었던 그날 밤처럼, 이 책을 읽은 후 괜히 사방을 둘러보게 되었다. 윗층에서 들려오는 저벅저벅 소리에 흠칫 놀라고, 밖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오싹해하게 만드는 이야기 <<밤의 이야기꾼들>>. 무서워서 다시는 읽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괜히 그 오싹함이 주는 묘한 쾌감에 다시 읽어보게 되는 책이었다. 무서워 혼자 화장실도 못 가면서 공포 영화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자꾸 끌리는 이야기 <<밤의 이야기꾼들>>은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정신없이 몰입되는 흡입력 강한 책으로 무료함이 싫은 이들, 자극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이 괴기한 이야기를 권해본다.
지금까지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야기 <<밤의 이야기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