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데뷔 십 년을 기념하게 된 열한번째 책이다. 자신의 새로운 시작이 될 소설을 쓰고자 생각하면서 쓰게 된 작품 <<미궁>>. 이 작품에는 주인공 신견의 내면에 존재하는 R이라는 인격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작품 속에 나오는 R은 옛날에 자신 안에 실제로 있었던 존재이며, 지금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책을 읽은 후에 듣게 된 작가의 고백이 처음에는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는데,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나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가? 예전의 나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행동하지 않았을 행동이나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때면 말이다. 나 아닌 또다른 나는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지켜주는 브레이크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신견은 어린 시절 자신의 내면에 R이라는 또다른 인격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견은 의사의 지시대로 자신의 침묵을, 오른쪽 허벅지를 긁어대는 버릇을, 오른쪽 눈만 질끈 감는 습관적인 틱을, 새 어머니의 속옷을 훔쳐내는 짓을, 같은 반 친구 유리 짱을 껴안아버린 실수를 그의 분신인 R에게 책임져달라고 하였고, 이후 그런대로 살아올 수 있었다. 그는 바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가 곧 전학을 가긴 했지만 중학교 동창이었다는 우연으로 함께 하게 된다. 그녀와의 하룻밤을 지내고, 지금은 행방불명이 된 그녀의 남자친구의 양복을 입고 출근하게 된 신견은 양복을 되돌려주기 위해 그녀를 다시 찾아 갔다가, 자신에게 부탁을 하러 온 탐정으로부터 그녀가 1988년 일어난 미궁 사건인 일명 '종이학 사건'이라 불리는 일가족 살인사건이었던 히오키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도쿄 네리마 구의 민가에서 히오키 다케시(45)라는 남성과 그의 아내 유리(39), 그리고 그의 장남(15)이 사체로 발견된 사건. 장녀(12)만 살아남았다. (본문 36,37p)

 

남편과 아내는 모두 제삼자로부터 예리한 흉기에 의한 자살, 장남은 심하게 구타를 당한 끝에 독극물을 먹고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구타의 흔적으로 볼 때 범인은 몸집이 제법 큰 사람이었으며 왼손잡이었다. 외부 침입 쪽으로 수사하였으나 내부는 밀실 상태였고, 현관문은 체인으로 잠겨 있었다. 아내 유리는 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고, 사체를 장식하듯이 종이학에 파묻혀 있었다. 어렵게 찾은 용의자는 기소에 이르지 못했고, 사건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던 사건이었다. 탐정은 신견에게 행방불명이 된 남자의 시체가 그녀의 방 큰 화분에 묻혀있는지를 확인해달라고 하였고, 싫다는 답변과 달리 신견은 그녀에게 찾아가 함께 확인하게 된다. 탐정에 의한 그녀의 의심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신견은 미궁에 빠진 히오키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사건과 관련되었던 변호사와 이 사건으로 책을 쓰려했으나 유가족의 프라이버시를 폭록하게 되는 탓에 출간하지 못했던 프리라이터를 만나며 사건의 진실을 조금씩 파헤쳐간다. 그가 이 사건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어린시절 꿈꾸었던 살인사건이었고, R이 저지른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을게다. 그리고 이제 밀실 살인사건에서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를 잃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나에를 통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야 만다.

 

"즉,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거야. 그런데도 침입자의 흔적이 있어. 구타할 때에 범인이 남긴 그 피부 조각. 게다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 터인 다케시의 사체까지 그곳에 있었어. 다케시의 구두도 발견되지 않았는데...알았나? 그러니 종이학 사건은 미궁 사건인 거야." (본문 135p)

 

".......이를테면 A를 해결하면 B라는 문제가 터져. B를 해결하면 C라는 문제가 터지지. C를 해결하면 D라는 문제가 튀어나와. 하지만 D를 해결하면 모든 해결이 잘못 되었다는 걸 알게 돼.....미궁 사건이라는 건 그런 거야." (본문 136p)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탓이었을가? 나는 밀실 사건의 범인이 누구일것이다, 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주는 긴장감이나 흥미가 반감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에서는 범인이 누구일까? 에 주목하게 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범인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반면 어떻게? 라는 부분에 전혀 짐작을 할 수 없었던 탓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신견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면서 언론에 드러나지 않았던 일들이 서서히 드러나지만, 끝내 어떻게? 라는 점은 밝혀내지 못했다. 가족이 모두 죽은 상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나에, 범인은 10년 뒤에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사나에의 두려움, 그로인해 죽고 싶은 누군가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싶은 사나에. 그런 그녀를 사랑하고 안쓰럽게 여기는 신견,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사건. 나는 점점 미궁에 빠지고 있었다.

 

자신의 세계에서 살았던 신견은 탐정의 등장으로 자신만의 세계가 아닌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밀실사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임에도 여전히 밀실에 갇혀있던 사나에는 신견과의 만남으로 인해 밀실에서 비로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후에야 그 밀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꽤나 흥미로운, 꽤나 긴장감 넘치는 여행을 한 듯이.

 

<<미궁>>은 과거의 밀실사건을 추적하는 신견을 통해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제공한다. 어린아이조차 들어가고 나갈 수 없는 밀실사건의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끊임없는 호기심을 줄 뿐만 아니라, 신견을 통해 조금씩 사건의 진실을 풀어냄으로써 독자들로하여금 추리하도록 한다. 작가는 이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속에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이들이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출구를 찾아가는 방법으로 신견과 사나에의 사랑을 담았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의 열쇠는 결국 타인이었다. 타인과의 관계, 이해, 사랑이었던 것이다. 혹 내 안의 비밀에 갇혀 바깥으로 나오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가? 그 출구의 열쇠는 어쩌면 나 혼자만이 쥐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임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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