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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으로 가는 길 ㅣ 청소년오딧세이
김용원 지음 / 크레용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김용원 작가는 소설가이며 아동문학가인 동시에 복지관, 장애인 단체 등에서 문예창작 교실 운영 및 장애인을 위한 글쓰기치료에 힘쓰고 있으며, 장애인이 시와 수필, 동화 등으로 문단에 등단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들과 인연이 닿아 몇 년 동안 그들에게 힐링 글쓰기와 문예 창작 지도를 해오고 있는 그가 그들을 위해 클래식기타로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가는 길>>은 그때의 먹먹함, 가슴 저림, 깨달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 경험으로 그려진 이 이야기에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누나, 아빠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이 등장한다.
뇌성 마비 장애를 가진 은선 누나는 시인이 되겠다고 하지만, 아빠는 학교도 안 맞치고 시 나부랭이를 쓴다는 것에 화를 낸다. 춤을 추듯 오른팔을 휘휘 휘두르며 휘청휘청 불안하게 걷는 누나, 엄마의 가출로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빠, 은수는 학교에 가야 했고, 돌아오면 집안일도 해야 했다. 그런 탓에 은수는 동네의 노인회와 시민 단체에서 효자상과 선행상을 타게 되었다. 은수는 오래전 아빠가 이야기한 장면이 떠올랐다. 가족이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으로 여행을 가서 그 궁전 앞에서 기타리스트 타레가가 작곡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아빠는 기타로 연주하고 누나는 춤을 추고 엄마는 노래를 부르고 은수는 초등학교 때 배웠던 멜로디언을 연주하는 것. 하지만 대기업을 다니던 아빠는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고, 장애가 있는 손으로 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만 고집하며 기타를 치고 있다. 기타를 침대 위에 내동댕이치고는 자신의 오른손을 침대 모서리에 메어치기도 하고 주먹으로 벽을 치기도 하면서 악을 쓰는 아빠, 주기적으로 낡은 오디오를 틀어 놓고 언제나처럼 오징어 춤을 추는 누나. 은수는 아빠가 장애를 입고 엄마가 가출했던 날,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그날처럼 복도 난간 아래로 훌쩍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가족과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은수는 민수 형의 권유로 함께 여행을 가게 된다.
누구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된다니,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편안함이었다. 하긴 2년 전만 해도 은수는 엄마 아빠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면 모든 게 해결됐다.
그러나 그 후 2년 가까이 은수가 앞장서서 가야 했다. 그래야 아빠하고 누나와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다. 그건 긴장이었고, 스트레스였고, 힘든 훈련이었고, 아픔을 참아내야 하는 고통이었다. (본문 121,122p)
민수 형은 은수에게 기타를 사주었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악보를 건넸다. 여행내내 은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습했고, 어설프지만 끝가지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아빠를 떠올리게 되었다. 지겹도록 들어야 했던 다그닥 다그닥, 아빠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자신은 이렇게 해낼 수 있는데, 그렇게 노력하고도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아 연주하지 못하는 아빠에 대한 안타까움이 은수의 가슴을 허물었다. 가족의 해체라는 비슷한 환경을 공유한 두 사람은 서울까지 걸어가기로 하지만, 민수 형은 혼자 새가 되어 날아가게 되었고, 은수는 혼자 서울을 향해 걸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함께 하면서 가족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간다.
마음으로 읽는 거, 마음으로 그려 내는 거...뭔가 이해될 것 같았다. 누나가 추는 춤은 남에게 놀림감밖에 되지 않는 춤이었다. 그러나 누나는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춤을 즐겼다. 춤을 출 때면 정말 행복해 보였다. 아니,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빠는 어떨까? 아빠는 비록 리듬이 불규칙하고 말 달려가는 듯한 기타 소리를 내지만, 기타를 연주할 때만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될 정도로 신이 나서 미소가 그득 담겨 있곤 했다. 그렇다면 아빠도 마음으로 연주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본문 223,224p)
집에 돌아온 은수는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넘치게 많다는 사실을 느꼈다. 두 주먹을 불근 쥐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은수는 아빠와 누나가 관심을 가져 주고, 누군가 배고플 때를 알아채고 밥을 차려 주는 것, 무슨 반찬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고, 푹 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힘들었던 현실을 외면한 채 여행길에 나섰던 은수는 혼자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해하는 것, 소통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은수에게 버겁기만 했던 가족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오게 된다. 가족들이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랬던 민수는 은수의 마음을 이해했고, 은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서로에게 버거운 존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가족은 가족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할테니 말이다. 은수, 민수를 통해 가족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비록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에서 연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이 함께 춤을 추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에 마음이 찡해진다. 함께 알함브라 궁전에 가는 가족의 꿈은 서로의 이해와 소통으로 그 첫발을 내딛고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