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아 우라 - 박삼중 스님이 쓰는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불과 며칠전, 사형수 교화 사업에 힘쓴 삼중 스님이 지난 30년 동안 안 의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고 조사하셨던 내용을 동화작가인 고수산나 작가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고 재미있게 재구성한 <영웅 안중근의 마지막 이야기>책을 읽게 되었다. 비록 동화책이었지만 안중근 의사의 평화 사상, 그의 인품을 알 수 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기에 나는 그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위대한 독립운동가라고만 알고 있던 안중근 의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이 알고 싶어졌고 삼중 스님이 성인을 대상으로 쓴 <<꼬레아 우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2015년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지 105주기이며,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에 뜻깊은 책을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마땅히 증오의 대상이었을 안중근 의사를 만나본 일본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고 그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반면 우리는 역동의 역사 속에서 온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한 안중근과 독립된 나라에서 살면서도 역사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다. 짧은 동화속에서도 안타까움과 송구함이 느껴졌는데, 난 이 책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될까? 책을 읽기도 전에 나는 많은 기대감과 감사함을 가졌다.

 

사람들은 묻는다.

"안중근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그러면 나는 그사람에게 묻는다.

"당신은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안중근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애국지사'라고만 알고 있다. 이는 물론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의미로만 안중근 의사를 규정하면 안 의사의 진면목을 놓치게 된다. '한국의 애국지사'라는 관점은 좁은 틀에서 놓고 보았을 때의 평가이다. (본문 13p)

 

이 책은 형무소 담장 뒤에서 태어난 삼중이 스님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시작된다. 삼중은 원망과 미움을 내려놓고 스님이 된 후 전과자와 재소자를 만나면서 '재소자들의 친구'로 살던 삼중 스님은 1984년, 일본 동북지연 센다이에서 열리는 '전국 교도소 재소자 교화 전국 대회'에 초청되어 참석하게 되고 일대에서는 꽤 유명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다이린지라는 전통 사찰을 방문하게 된다. 절은 일본 전통 사찰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대웅전으로 들어서자 뜰 앞에 '위국헌신군인본문(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비석이 눈에 띄었다. 그 비석의 좌측에는 낯익은 단지 손도장이 있었는데, 그 비석의 정체는 안중근 유묵비였던 것이다. 한국에는 2만 개가 넘는 절이 있지만 안중근 유묵비가 세워진 곳은 단 한곳도 없는데, 일본의 전쟁 영웅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유묵비가 일본 시골 마을에 집채만 한 크기로 세워진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삼중 스님이 안중근의 흔적을 쫓아  30년 세월을 보내게 되는 시작이 열리는 순간이 된다.

 

일본 헌병이 자기 나라의 영웅을 살해한 사람에게 품었을 증오심을 버리고 이토록 추앙하게 되기까지 뤼순에서 함께 보낸 오 개월여의 시간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안중근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상대로 하여금 이런 마음을 품게 할 수 있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본문 81p)

 

이제 이야기는 1905년 11월 17일, 조선통감부 통감이 된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군 사령관인 하세가와 요시미치와 수십 명의 헌병을 대동하고 어전회의에 나타나 총칼로 위협하며 여덟 명의 대신에게 을사5조약에 찬성할 것을 강요한 날로부터 시작된다. 부친과 친하게 지내던 김진사라는 분은 안중근에게 백두산 뒤쪽의 서북 젠다오와 러시아 영토인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 한국인 1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모든 것이 풍부해 군대를 한번 일으켜볼 만한 곳이라고 권유했고, 곧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계동청년회의 임시 사찰을 맡아보면서 항일독립 운동 조직에 합류하게 된다. 안중근은 항일 투쟁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1909년 10월 26일, 마침내 이토에게 총을 쏘게 된다. 총을 쏜 안중근에게 순식간에 헌병들이 달려들었지만 안중근은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본문 146p)

 

이토를 저격한 후 체포된 안중근은 이토에게 총을 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 대한의 독립적인 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를 해진 자이므로 한국의 군인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오.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본문 148p)

이후 미조부치 다카오라는 이름의 검사가 조사실로 들어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되물었을 때 수십 수백 수천 가지의 죄 중 열다섯 가지에 대해 말했고, 그 중 가장 큰 죄는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라 했다. 이에 미조부치는 당황했고, 안중근의 진술을 듣고는 동양의 의사라 표현하며 국가를 위해 의로운 일을 했으니 절대로 사형을 받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안중근은 세상이 주목하는 죄수였다. 하지만 일본은 사형을 시키자니 국제 여론이 일본을 비난할 것이고, 살려두자니 독립 정신이 고취되어 향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구리하라 형무소장을 비롯하여 지바 도시치, 일본의 교화 스님인 쓰다 가이준 스님 등은 안중근을 마음에 품었다. 뿐만 아니라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당하자 당시 중국의 총통이었던 장제스는 장례식 때 추모의 글을 써 보냈다.

 

위대한 별이 어젯밤에 강물 위에 떨어졌는데

하늘도 애통해하고 땅도 비통해하는데 물만 스스로 흐르는구나.

몸은 비록 한국에서 났지만 그 이름은 천하만국에 떨쳤도다.

인생이 100세를 살지 못하는데 그는 죽어서도 1000년을 살겠다. (본문 222p)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는 '비범'한 영웅의 이미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안중근 의사는 정 많고 인간적인 '범인'으로서의 안중근이었다. 이는 안 의사를 만나는 일본인마다 그에게 동화되어 증오심과 적개심을 눈 녹듯 사라지고 우정을 싹틀 수 없는 관계에서 신뢰와 우정을 만들어진 관계를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국적과 종교를 초월하여 이루어진 이 우정은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유묵들이 보존되어 있는 이유일 게다. 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들에게도 안중근 의사는 적국의 수장을 대신 해치워준 영웅이었다. 지금은 기념관이 뤼순 형무소에는 지금도 많은 중국인들이 자국의 애국지사들과 안중근의 흔적을 찾아보며 추모하고 있으며, 사형 직전까지 수감되어 있었던 독방을 그 당시 그대로 재현해 공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하얼빈 역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만들어 2014년 1월에 개관하고 있다.  이렇게 동양 평화를 위한 그의 희생은 헛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달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본문 211p)

 

30년 가까이 안중근의 흔적을 쫓고 있는 삼중 스님의 남은 바람은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 고국에 모셔오는 일이라고 한다. 스님은 고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105년째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답답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우리는 역동의 역사 속에서 온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한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도, 독립된 나라에서 살면서도 역사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다. 삼중 스님은 몸이 움직이는 순간까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뤼순의 야산을 뒤지고 또 뒤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동양의 평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한 청년의 숭고한 죽음을 기억하고 새겨야 할 때이다. 우리가 영웅 안중근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야 말고 대한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하루라도 빨리 안중근 의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또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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