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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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성의 근원적 상처와 고독에 관한 이야기 <<건너편 섬>>은 각자 슬픔을 지닌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은 8편의 단편 모음집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의 나이가 나와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슬픔과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시간들과 해소되지 못한 슬픔으로 인한 고독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의 할머니 혹은 나의 어머니가 겪었을 슬픔일지 모른다는 공감과 여성이라는 공감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꽃으로 맞아도 눈송이와 부딪쳐도 상처 입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상처가 존재한다는 말도 있다. 세상에 상처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기에 이 주인공들의 상처와 슬픔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던 것을 아닐런지.

 

한인 미주 이민 백 년을 기념하는 연중 기획 특집 프로그램에 모자이크 처리된 것은 [콩쥐 마리아]였다. 마리아를 통해 그녀의 친척들과 친구들 백열아홉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했지만 누구 하나 바나나 껍질 까서 먹여준 사람은 없었다. 공장에서 일하며 위로 셋이나 되는 오빠들을 상급학교로 진학시켰던 마리아는 나중에 출세하면 누이동생 우쭐하게 호강시켜줄 거라는 말에 콧날 시큰해지곤 했었다. 늙은 노처녀인 탓에 재취 자리로 혼인을 했지만 후취가 아닌 첩인 자리가 분하고 억울해서 견디다 못해 시집을 뛰쳐나왔지만 고향에서는 가문 망신이라며 떠나길 바랬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미스터 한의 소개로 앤드류를 만나고 하와이에 왔으나 앤드류의 탈영으로 마리아는 굶어 죽지 않고 살기 위해 클럽에 나가 군인을 상대하게 되었다. 양공주 출신인 마리아는 교인들과 한자리에 앉지도 못했다. 이후 피터를 만나 처음으로 남자의 사랑을 느끼게 된 마리아였다. 피터가 식도암으로 죽은 뒤 혼자되었지만, 마리아를 통해 미국 시민이 되어 댈러스 시내 중심에 빌딩을 사고, 자식들을 일류 대학에 보낸 오빠들과 의사, 회계사, 변호사도 있는 조카들과 조카 사위들 모두 마리아 근처에 살려 하지 않았다. 슬픈 이민사의 상처를 안은 마리아는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 이민 백 년사의 초석은 우리가 '양색시'라고 경멸해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 여성들의 '자기희생'을 토양으로 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그가 말하는 1분 동안 화면은 한국전쟁 이후의 기지촌 풍경을 다양하게 보여줬다. 의정부, 동두천, 평택, 송탄 등지의 기지촌에서 짙은 화장을 한 한국인 여성과 미군들이 뒤섞여 걷거나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본문 32,33p)

 

가족을 때리기 위해 참나무 장작을 휘두르고, 아이들과 아내를 겁주기 위해 위협적으로 눈을 부라리며 소리지르던 아버지의죽음,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아버지를 벗는 일이 쉽지 않았던 엄마와 가족들의 이야기 [미움 뒤에 숨다].

계모의 간사하고 포악함에 집을 나와 함께 살던 다섯살 터울의 세희와 명희 자매는 인민군이 쳐내려오자 지독한 빨갱이가 되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사업과 회의로 바빠진 세희가 쌀이 떨어지기 전에 돌아온다는 말과 함께 나간 후 54년을 헤어지게 된다. 54년 동안 언니가 죽었을 거란 상상은 하지 않았으며 자신보다 못 살거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명희에게 세희는 명희의 의지를 벗어난 신앙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54년 만에 만난 언니는 약속을 못 지킨 것에 대한 미안함도 없었고 잘 살았을 거라는 기대와 다른 몰골이었다. 언니가 기다리라고 한 날부터 이제껏 인생을 단 한발짝도 떼어놓지 못했던 명희에게 이제 언니는 없었다. 언니를 마음껏 비웃었던 명희는 버스가 떠난 뒤에야 언니를 부르기 시작했다. 또 다시 언니를 놓치게 된 세희. 서로를 그리워했던 마음은 만남으로 인해 오히려 사라지고 있었다. [언니를 놓치다]는 분단국가의 그리움이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해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제된 슬픔] 역시 분단국가의 아픔을 담은 책이다. 삼촌과 아버지가 납북을 하고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살아가던 석이 삼촌이 간첩이 되어 내려오면서 겪게 되는 아픔 역시 분단국가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는 죽은 아내의 독백이 담긴 단편이다. 사라져 버린 진실 앞에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던 아내가 진실을 외면한 채 아내를 타박했던 남편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고, 자책하며 절망하는 모습을 보며 건네는 아내의 독백이다.

 

당신 죄는 아닙니다. 그렇게 모질게 당신 책망하면 안 돼요. 그건 사랑이 아니랍니다.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거 이제 알겠어요.

아, 순영 아빠. 지금 당신은 내가 그렇게 주저앉지 말라고 부택했는데도 땅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당신을 사납게 때립니다. 당신의 머리를 땅바닥에 짓찧습니다.

"내가 죽인 거야!"

울부짖는군요. 하늘이 듣게, 땅이 듣게....

아닙니다. 내가 나를 죽였습니다. 한 가지 숨구멍이라도 보였더라면 거기 얼굴을 대고 숨을 쉬었을 것을. 하지만 더는 버틸 힘이 없었던 거 이해해주세요. 그러니 순영 아빠, 당신 자신을 책망하는 거, 더는 하지 말아요. 당신도 이제 당신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기를. 제발. (본문 179p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

 

이혼한 여성이 딸과 함께 살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주인공인 두 작품 [고독의 해자][이별은 나의 것]에서는 소설가로서의 삶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표제작 [건너편 섬]은 서른 살에 아들을 낳고 삼칠일이 되기도 전에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 된 여인이 홀로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아들을 키워냈음에도 외로운 노년을 보내는 일상을 그렸다.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찾아온 슬픔과 고독을 다룬 다른 작품과 달리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여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 시대의 여성의 고독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듯 싶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년의 여성 모습은 바로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과 진배없기에.

 

"엄마도 참 힘들었을 거다. 사랑해야 할 피붙이를 두고....다른 삶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아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불쌍한 인생을 살았다. 유명할진 몰라도 자신은 늘 춥고 불안하고 슬펐을 거다."

아빠가 느리게 말했다. 정화도 정애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고 사위들은 고객 숙인 채 들었다.

"사람이 죽어야 이해를 하게 되니 참 야속하다만 나도 니들 엄마 많이 괴롭힌 사람이다. 모욕하고...모욕했다." (본문 207p 고독의 해자)

 

<<건너편 섬>>의 주인공 여성들은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이며 또 나이기도 하다. 이 주인공들을 오롯이 이해하기에는 나는 아직 엄마로서, 아내로서 갖게 되는 슬픔과 상처에는 익숙치 않다. 하지만 이들로 인해 슬프고 고독했을 엄마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듯 싶다. 겉도는 자식들 속에서 늘 혼자였던 엄마, 하지만 너무도 늦게 이해해버린 엄마의 슬픔과 고득을 나는 어루만져주지 못 하기에 에 안타깝다. 이제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나는 조금씩 여성의 근원적 상처와 고독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 슬픔을 어루만져주겠지.

 

"저 돌아왔어요."

"저요! 김금자요! 돌아왔습니다아."

대답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수많은 소리를 들었다. 그 여자가 하나하나 장만한 가구들, 말린 꽃송이로 만든 액자, 주방의 그릇들, 옷과 화분들, 모두 인사를 받았다. (중략) 텔레비전을 켰다. 귀에 익은 목소리, 낯이 익은 얼굴들, 아나운서들은 말하고 배우들도 말하고 움직였다.

"잘 왔네요."

"즐거웠어요?"

"무슨 일 없었지요?"
사방에서 그 여자의 인사를 받았다. 그 여자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어렸다. (본문 250p 건너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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