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암행어사 허신행 미래의 고전 50
유순희 지음 / 푸른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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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통해 본 암행어사는 겉으로는 추레해 보이지만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선비로서 학문과 깨끗한 성품을 갖추고 있는데다 수령의 관직을 그 자리에서 박탈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요!'와 함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때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펼쳐지지요. 헌데 <<불량 암행어사 허신행>>이라니요? 책 제목이 너무도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왠지 너무너무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서둘러 책을 펼쳐봅니다.

 

허신행의 집안은 손꼽히는 명문 가문으로, 집안의 삼대독자인 허신행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몰두해서 일찌감치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대과에서는 번번이 떨어져 음직을 통해 관리가 된 인물이었습니다. 대관에 붙지 못하면 중요한 관직에 오르지 못할 뿐더러 가문의 명예에 흠집까지 남기는 일이기 때문에 허신행은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고, 내년 봄에 치러질 복시에 급제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영의정의 천거로 허신행은 임금의 명에 따라 암행어사로 파견되고 맙니다. 암행어사가 겉보기에는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며 학문과 깨끗한 성품을 갖춘 자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이지만, 막상 속을 뒤집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암행어사의 길은 열 명이 떠나면 일곱 명은 죽는 길이었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내년에는 반드시 장원 급제하리라 다짐하고 있던 터였기에 허신행은 괴로웠지요. 하지만 임금의 명이라 허신행은 늙은 종 쇠똥이의 막내아들인 돌금이를 불러 함께 염탐해야 할 지역인 생읍인 순천과 남원을 향해 길을 떠나게 됩니다.

 

먹을 것도 충분치 않고, 잘 곳도 녹록치 않은데다 먼 길을 걸어야 하는 허신행은 명문 가문의 자손답게(?) 모든 것이 힘들기만 합니다. 험난하기만 한 고생길에 불평도 많고, 돌금이가 만들어 준 구멍 난 갓을 쓰고, 말똥 섞인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도포를 입은 자신의 몰골도 마땅치 않았죠. 게다가 글을 모르는 어린 종놈과 말을 섞어야 하는 것도 싫었어요. 허신행은 길을 가던 중 악덕 사또를 보게 되지만, 조정을 집권하고 있는 노론 가문의 사람인 탓에 자신의 가문이 화를 당할까 싶어 생읍이 아니라는 이유로 못 본 척할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노름과 다름없는 쌍륙내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불량 암행어사였지요. 다행이 돌금이의 도움으로 양반을 찾아 죽이려는 화적패로부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고, 종기가 나서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픈 다리를 치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돌금이와 함께 백성들을 만나게 되면서 세상물정은 모른 채 소학, 사서삼경, 논어 등에만 능했던 허신행은 신분의 차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단절되었던 세상과 소통하게 됩니다.

 

종놈과 손을 잡다니! 지금껏 한 번도 종놈과 손을 잡아 본 적은 없었다. 종놈이 사람이라고는 하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 역시 단 한번도 없었다. 종놈은 사고팔 수 있었다. 그런 종놈을 어찌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종의 손도 어머니의 손처럼, 아버지의 손처럼, 아내의 손처럼 따뜻했다.

순간 허신행은 움찔했다. 돌금이의 손은 자신도 피는 뜨겁고, 심장은 펄떡펄떡 뛰고 있는, 너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본문 95p)

 

학문에는 뛰어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허당 허신행, 글자는 모르지만 영특하고 용감한 돌금이의 콤비가 정말 유쾌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양반이라는 신분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허신행이 돌금이와 권력을 쥔 양반들의 횡포에 힘겹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성장 과정이 눈에 띄는 작품이지요. 역사동화이지만 현 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는 현대적 형태의 노예제도에 살아가고들 표현합니다. 경제적, 사회적 혼란으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요즘엔 권력자와 국민의 소통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양반의 입장에서만 보던 허신행이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얼마 전, 설 전 공직기강을 잡기 위한 '민간 암행어사'가 뜬다는 뉴스를 접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소통의 시작이 되어 주었으면 싶습니다.

 

허신행은 자신이 종놈과 이렇게 마음을 나누게 될 줄은, 그리고 그 마음을 나누는 일이 이리도 큰 힘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본문 107p)

 

돌금이가 허신행에게 학문을 많이 해서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해 각자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거 같아요. 불량했지만 멋진 암행어사로 거듭난 허신행의 이야기 <<불량 암행어사 허신행>>, 꼭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강추!!

 

허신행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글을 모르는 자는 짐승과 같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그런데 글을 한 글자도 모른다는 강홍일이 궁박한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참으로 깊었다. 그런 덕은 지금껏 오직 글을 깨우친 자들에게만 깃들 수 있다고 배워 왔던 것이다. 허신행은 그동안 자신이 배우고 믿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본문 114,1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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