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해박한 지식과 화려한 의고체 문장으로 중세 유럽의 한 수도사가 겪는 신비한 체험을 그린 작품 [일식]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라는 파격적인 평과 함께 일본 열도를 히라노 열풍에 휩싸이게 하며 일본 내에서 40만 부 이상이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히라로 게이치로. 그가 이번에는 인간의 기본 단위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에세이 <<나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개인'보다 한 단계 작은 '분인'이라는 새로운 단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는 관점이 크게 달라진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이유는 대략적인고 엉성한 개인이라는 단위가 현대를 사는 우리 생활에는 온전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의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으로는 개인은 절대 나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육체를 떠올려보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몸과 마찬가지로 인격 역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유일한 개념인지를 되묻는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할 때와 가족과 함께 있을 때, 고교 시절 친구와 오랜만에 한잔하러 가거나 연인과 단둘이 사랑을 속삭일 때, 우리의 말투나 표정, 태도는 많이 다르며 이렇게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얼굴이 있기에 인격은 단 하나라는 사고방식은 모순된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타자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억지로 강요당한 '가짜 나'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여러 얼굴들이 모두 '진정한 나'임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individral'이라는 말의 어원은 '나눌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서두에 썼다. 이 책에서는 이상과 같은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기 위해 '분인dividual'이라는 새로운 단위를 도입한다. 부정접두사 in을 떼어버리고, 인간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분인은 상대와의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자기의 내부에 형성되어가는 패턴으로서의 인격이다. 직접 만나는 사람으로

분인이랑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다양한 자기를 의미한다. 애인과의 분인, 부모와의 분인, 직장에서의 분인, 취미 동아리의 분인....그것들은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 한정되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교륙하는 사람도 포함될 수 있고, 소설이나 음악 같은 예술, 자연 풍경 등 인간 이외의 대상이나 환경도 분인과(分人化)를 유도하는 요인일 수 있다.

한 명의 인간은 여러 분인드르이 네트워크이며, 거기에 '진정한 날'라는 중심 같은 것은 없다.

개인을 정수 1이라고 한다면, 분인은 일단 분수라고 떠올려주기 바란다. (프롤로그 中)

 

그동안 알고 있는 개인에 대한 혹은 진정한 나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았던 탓에 새로운 이야기가 분명 흥미롭기는 했지만 몰입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저자가 풀어놓은 자신의 경험에 공감할수록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학교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는 책을 읽을 때의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나'이며 교실에서 친구랑 웃고 떠다는 것은 '진정한 나'가 아니며 표면적인 가면을 쓰고 주위 사람을 맞춰주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이후 파리에서 생활을 위해 어학원을 다닐 때의 경험과, 대학 친구를 만날 때 고등학교 친구를 동반했을 때의 경험을 빗대어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지 결정하려는 것 자체가 쓸모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그는 인간에게는 몇 가지 얼굴이 있으며 상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내가 된다고 말한다.

 

분인의 모델에는 자아니 '진정한 나'니 하는 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그때 큰 비율을 차지하는 분인은 있다. 비율이 큰 분인이 고등학교 시절에는 특별활동부의 고민 선생일지도 모르고, 회사에 들어간 후에는 상사일지 모른다. 우리는 발판이 될 만한 중요한 분인을 일시적인 중심으로 삼아서 그 밖의 분인 구성을 정리할 수도 있다.

당신이 호감을 느끼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다면, 그런 분인을 만들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그 분인이 당신을 변화시켜주는 돌파구가 된다. (109,110p)

 

저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은 부모와의 분인을 기본으로 해서 대인 관계를 넓혀가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 환경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 아이에게 어떠한 분인 구성이 이상적인가를 고려하는 것으로 봐야하며, 아이가 부모 앞에서와 교사 앞, 아이들끼리의 얼굴이 다르다는 것은 아이 나름대로 전혀 다른 인간과 어떻게 하면 원할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지 모색한 결과이기에 결코 부정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한 번쯤 부모와 교사 앞에서 다른 아이의 행동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나 싶다. 그로인해 그가 말하는 분인에 대해 긍정적일 수 밖에 없다.

 

헌데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바로 '나를 좋아하는 방법'에 대한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더 어려워하는데,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 '일단 자기 자신부터 사랑해라,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라고 말해본들 별 의미가 없기에 그는 자기 자신이 싫은 사람이 있다면 인간 전체를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분인 단위로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분인이 하나든 둘이든 있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살아가면 되니까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분인이 좋다는 사고방식은 반드시 한번은 타자를 경유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존재가 불가결하다는 역설이야말로 분인주의의 자기 긍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본문 150p)

그렇게 좋아하는 분인이 하나씩 늘어간다면, 우리는 그 만큼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설령 부정하고 싶은 자기가 있다손 치더라도 자살이라는 형태로 자기 전체를 소멸시키려는 마음을 먹지 않고 어떻게든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본문 151p)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내 모습 중 진짜 '나'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그 중 진짜 내 모습을 찾아 결정지어보려는 소모, 거짓된 내 모습에 대한 스스로의 스트레스 등으로 누구나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한 두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헌데 저자의 말처럼 상대에 대한 내 모습은 그대로의 내 모습이었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의 얼굴은 상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내'가 된 내 모습이었던 게다. 그동안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던 내 모습에 힘겨울 때가 있었는데 이것이 전혀 꺼림직하게 여길 일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나는 위로를 받는다. 상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나의 모습은 모두 '진정한 나'였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분인은 모두 '진정한 나'다. (본문 44p)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분인으로 살아가기에 비로소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화사에서의 분인에 이상이 생겨도 가족과의 분인이 순조로운 상태라면 스트레스는 경감된다. (본문 13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