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문 앞에 선 아이 한무릎읽기
노경실 지음, 조성흠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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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먹먹한 동화책 한 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열 살이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사춘기 맞짱 뜨기>로 잘 알고 있는 노경실 작가의 책이라 반가운 마음에 읽어 본 책이었는데,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돈이 세상의 주인이 된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돈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고, 돈 때문에 불행해질 수 있다고 느껴지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벌고자 합니다. 정말 돈만 있으면 행복해질까요? 정말 돈이 없으면 불행한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나쁜 일이라도 돈을 많이 벌면 되는걸까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책을 읽다보면 너무 많은 자문을 하게 됩니다.

 

'제발 아빠가 화를 내지 않았으면. 은실이가 울지 말았으면. 오늘 밤은 우리 집이 조용했으면....' (본문 49p)

 

 

<<세상의 문 앞에 선 아이>>는 일요일 오후를 시작으로 수요일 새벽까지 명훈이에게 찾아온 일을 담아냈습니다. 9월의 끝자락을 닷새 남긴 일요일 오후, 연립 주택 반지하 방에는 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가을 오후의 빛을 바라보는 6학년 명훈이와 커다란 담요를 덮고 배추쌈 모양으로 웅크리고 자는 1학년 은실이 그리고 빈 술병과 함께 누워 있는 시커멓게 변한 얼굴빛과 깍지 않은 수염으로 흡사 산적처럼 보이는 아빠가 있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명훈이는 초등학교 선배로 중학교 2학년인 명훈 선배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동철이는 지금 학교에 다니지 않고 돈을 벌고 있지요. 무슨 일이든 싫증을 자주 느껴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학교도 그만두고, 중국 음식점과 피자집 배달원, 오락실 종업원, 신문 배달 등등의 일들을 하며 지냅니다. 동철이에 대한 갖가지 나쁜 소문이 있지만, 명훈이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동철이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동철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백화점을 세워 가난한 사람들이나 신용카드 없는 사람들도 백화점에서 마음대로 물건을 살 수 있게 할 거라고 했고, 명훈이에게는 부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했으니까요.

 

명훈이는 엄마 힘 하나만으로 살기 힘든 집안 형편 탓에 동철이 선배에게 의지하면 살기가 훨씬 편해질 거라 생각했고, 지금 믿을 사람이라고는 동철이 선배밖에는 없었습니다. 명훈이에게 동철이는 하나님 같은 사람이었지요. 가쁜 숨을 몰아쉬면 만난 동철이는 명훈이, 한태, 보수, 종식이에게 동네에서 제일 큰 주유소인 한국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화요일에 번 돈이 고스란히 금고안에 잠자고 있는 수요일 새벽에 금고를 가져오자고 합니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했고 명훈이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합니다. 반지하 방으로 이사 온 뒤부터 두통이 생긴 명훈은 동철이와 함께 있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오직 신 나는 일과 행복한 미래만 그려졌으며 두통도 사라졌습니다. 명훈이는 빨리 어른이 되어서 동철이가 말하는 행복한 세상에 살고 싶었지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명훈이는 황소 슈퍼에서 외상값 때문에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 앞에서 쩔쩔매는 엄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건설 현장의 소장이었던 아빠가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고, 보상금과 퇴직금으로 사업을 하려다 오히려 사기를 당해 돈을 다 잃고 집과 자동차, 모든 재산을 빼앗긴 뒤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달라진 형편보다 더 무섭게 변한 건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었지요. 희망도 웃음도 모두 사라졌고, 휠체어마저  빼앗긴 아빠는 문밖으로 전혀 나가지 않은 채 술만 마셨으며, 엄마는 아예 말이 없어졌지요. 아빠와 엄마는 전혀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며 대화를 시작하면 언제나 큰 싸움이 되었고, 명훈이와 은실이도 말을 잃었습니다.

 

명훈이와 세 아이는 마치 돌아오는 수요일에 독립운동을 감행하려는 열사들처럼 결연한 표정이었습니다. 명훈이는 자신이 돈 좀 더 벌면 우리 집이 다시 잘살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식구들 중 누군가가 조금만, 조금만 더 돈을 벌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봉수는 돈 보따리 잔득 갖다 주면 엄마가 무시하지 않을테니 하겠다고 했고, 아빠가 한마디 야단치면 더 크게 야단치는 형한테 복수하기 위해서 하겠다고 합니다. 종식이도 공부를 못해서 대학도 못 갈 것 같으니 지금부터라도 돈을 벌겠다고 하지요. 이렇게 아이들은 동철이의 말대로 수요일 새벽에 만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술을 가져오라는 아빠, 은실이와 지연이가 놀지 못하게 하는 지연이 엄마, 숙제 안했다고 아빠에게 회초리를 맞고 우는 은실이, 은실이와 자신에게 화풀이하는 엄마, 명훈이는 참기 힘들었습니다. 명훈이는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엄마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은실이는 엄마와 명훈이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기적이 일어나려나...." (본문 112p)

 

이제 한 시간만 있으면 새벽 세시가 되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명훈이는 한국 주유소로 가야 옳은지, 옳지 않아도 가야만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집을 살릴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생각에 살그머니 빠져나왔습니다. 이제 문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때 안방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동사무소에서 아빠에게 휠체어를 주기로 했고 그로인해 아빠 엄마는 행복한 수요일을 보내고 있었지요. 명훈이는 손잡이를 잡고 있습니다. 손잡이를 살짝 돌리기만 하면 문밖으로, 집 밖으로, 지하실 밖으로 나갈 수 있지요.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명훈이는 나갔을까요? 그래서 명훈이는 행복해졌을까요? <<세상의 문 앞에선 아이>>는 끝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 결론을 독자 어린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길 바라는 듯 합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돈을 많이 가져올 수 있지만 그것은 나쁜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명훈이와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명훈이는 돈이 없어 행복도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벌고 싶었지요. 그런데 지금 돈을 많이 가져올 수 있다는 유혹이 다가왔습니다. 물론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명훈이에게는 그 돈이 행복을 갖다줄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 고민에 맞는 답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 책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힘들어하는 엄마가 명훈이에게 이런 말을 하죠.

 

"용기, 소망, 사랑, 믿음, 진실, 우정.....이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거야. 명훈아, 그런데 엄마 마음에서 그런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하지만 엄마는 끝까지, 너희들이 내 옆에 있는 한 쓰러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잠시, 아주 잠시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도 엄마를 미워하지 말아 줄래? 약속할 수 있니, 명훈아?" (본문 50,51p)

 

돈이면 뭐든지 다 가질 수 있는 세상이고, 돈이 주인이 되어가는 세상이지만 사랑, 진실, 행복 등은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습니다. 달콤한 유혹 앞에서 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명훈이는 지금 망설이고 있습니다. 휠체어 하나에도 행복해질 수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았지요. 행복은 돈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명훈이가 문을 열고 나가지 않기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나쁜 유혹으로부터 단단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갈지, 나가지 말아야 하는지 선택하게 되지요. 부디 우리 모두가 명훈이를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그 지혜를 선물해줄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세상의 문 앞에 선 아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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