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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철도의 밤 ㅣ 비룡소 클래식 28
미야자와 겐지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2년 4월
평점 :
「비룡소 클래식」은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작품들은 물론, 마치 숨겨진 보석을 찾듯이 세계 각국 명작을 새롭게 발굴해 내는 작업에 나셨습니다. 각 언어권별로 최고의 권위자들이 정성을 다해 번역하여 문체가 유려하고, 개성 넘치는 독특한 삽화가 책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고전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읽는 방법을 청소년 여러분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226,227p)
어린시절 <은하철도999>는 내게는 환상이었다. 특히 긴 머리와 긴 속눈썹, 검은 모자, 검은 원피스를 입은 메텔은 내가 꿈꾸는 미래의 여성상이었을 정도로 이 만화영화에 푹 빠져있었다. 어쩌면 이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우리 세대들 대부분이 여러가지 이유로 이 만화영화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참동안이나 잊고 있었는데 <은하철도999>의 원작 동화 <<은하 철도의 밤>>을 읽으면서 그 어린시절로 잠시나마 되돌아갈 수 있었다.
<비룡스 클래식> 28번째는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 철도의 밤>>이다. 당시 미야자와 겐지의 '파격적인 발상이나 풍부한 환상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 없었'던 탓에 문단이나 일반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묻혔으나 수많은 시와 백 편이 넘은 동화 원고는 그가 죽은 뒤 남동생과 친구들의 노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37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살았던 미야자와 겐지는 1922년쯤에 표제작 [은하 철도의 밤]의 초고를 쓰기 시작하여 십 년에 걸쳐 세 차례나 수정을 하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공을 들인 작품이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한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세계 속에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삶과 죽음이라는 종교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주제를 그려 내었다고 평가(본문 215p)받는 [은하 철도의 밤]은 만화영화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슬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자 집으로 가지 않고 모퉁이를 세 번 돌아 커다란 인쇄소로 들어간 조반니는 종이 한 장을 건네 받고는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조그만 집게로 좁쌀만 한 활자를 하나씩 하나씩 골라냈다. 그렇게해서 받은 조그만 은화 하나로 조반니는 빵집에 들러 빵 한 덩이와 각설탕 한 봉지를 사서 흰 천을 덮고 누워 있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조반니는 엄마에게 아침 신문에 올해는 북쪽 지방에서 고기가 아주 많이 잡혔다고 쓰여진 기사를 보니 아버지가 틀림없이 곧 돌아오실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오실 때는 해달 가죽 윗도리를 가져다 준다고 한 아빠의 말에 아이들에게 늘 놀림을 당하는 조반니였다. 어머니에게 우유에 각설탕을 넣어 드리려 했지만 우유가 도착하지 않아 조반니는 우유를 가지러 갔다가 오늘 밤에 있는 은하 축제를 구경하고 오기로 한다. 조반니는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 틈에서 단짝 친구인 캄파넬라가 안쓰러운 듯 말없이 희미하게 웃고는 화났느냐고 묻는 듯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도망치듯 눈길을 피한 조반니는 목장 뒤편 검고 평평한 언덕마루로 달려가 언덕 꼭대기의 천기륜 기둥 밑 차가운 풀밭에 몸을 던졌다. 얼마 뒤 들판에서 기차 소리가 들려왔고 정신을 들고 보니 조반니는 조그만 열차를 타고 있었다. 열차에는 캄파넬라가 타고 있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우주 여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언덕 꼭대기의 풀밭에 지쳐 쓰러져 잠들어 있었던 조반니가 눈을 떴을 때 조반니는 캄파넬라와 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친구의 죽음, 슬픔, 행복 등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도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풀어낸 작가의 상상력, 필력에 먼저 놀라게 된다. 그리곤 그 환상적인 이야기에 담겨진 의미에 매료되고 만다.
'아아, 그 넓은 바다는 태평양이 아닐까? 빙산이 떠다니는 북극의 바다 위에서 누군가가 조그마한 배 위에서 바람과 얼어붙을 듯한 바닷물, 혹독한 추위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어. 나는 그 사람에게 너무나도 죄스럽고 미안하구나.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나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그것이 진정 옳은 길을 가는 중에 생긴 일이라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두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겠지요."
"네, 맞아요. 최고의 행복에 이르기 위해 갖가지 슬픔을 겪어야 하는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랍니다." (본문 63p)
반면 산골짝을 흐르는 강 옆에 조그만 학교에 학생이 전학을 오게 되고 아이들은 그를 두고 '마타사부로'라 부르며 함께하는 이야기 [바람 소년 마타사부로]는 [은하 철도의 밤]과는 다른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다. 이외에도 죽음과 아름다움, 영원한 것과 변하는 것과의 관계를 추구하는 작품이며 아름다운 무지개를 동경하는 개머루와 무지개와의 이야기 [개머루와 무지개]와 거대한 인간과 힘없는 인간 사이의 대립과 공존을 보여준(옮긴이의 말 中) [수선월 4일] 그리고 [땅신과 여우]에서도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환상적인 스토리를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은하 철도의 밤]도 좋았지만 [수선월 4일]도 너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환상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그러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은하 철도의 밤>>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어도 정말 좋은 이야기에 강추 또 강추해본다.
꼬마가 다시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눈 아이는 웃으며 다시 한 번 꼬마를 떠밀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주위가 어슴푸레 어둑해지더니 3시가 채 되기도 전에 날이 저문 듯했습니다. 꼬마는 이제 기운이 바닥나 더 이상 일어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눈 아이가 웃으며 팔을 뻗어 빨간 담요를 꼬마에게 포옥 덮어 주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자고 있어. 내가 담요를 두둑이 덮어 줄게. 그러면 몸이 얼지 않을 거야. 내일 아침까지 설탕 과자 꿈이나 꾸고 있으렴." (본문 20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