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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9
쥘 르나르 지음, 전혜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9월
평점 :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졌다. 그러나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삶'이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존재하는 삶은 항상 저마다의 무게를 떠안고 있다. 그 무게는 진실이라는 옷을 입고 문학 작품 속에 영원히 생명을 불어넣는다. 우리는 그것을 '고전'이라 부른다. (기회의원의 말 中)
작품이 본디 지닌 맛과 재미를 고스란히 살리면서 청소년들이 읽고 소화하기 쉽게 글을 다듬고, 현직 국어 교사들이 직접 쓴 해설을 통해 작품에 대한 풍부한 설명과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현재적 의미까지 상세하게 짚어주는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시리즈 서른아홉 번째 이야기는 프랑스의 대표 작가 쥘 르나르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성장 소설인 <<홍당무>>다. 이 작품은 머리카락이 빨갛고 얼굴에 주근깨가 많다는 이유로 '홍당무'라 불리는 소년과 그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어두운 밤 닭장 문을 열려있자 르픽 부인은 큰아들 펠릭스에게 문을 닫고 오라고 하지만, 겁이 많은 데다 게으르기까지한 펠릭스는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에르네스틴 역시 무서워 싫다고 하자 르픽 부인은 막내아들인 홍당무를 시킨다. 홍당무 역시 무섭다고 하지만, 르픽 부인에게 홍당무의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마음이 여린 에르네스틴이 촛불을 가져와 복도 끝까지 가주었지만 촛불이 꺼져 도망가 버린 탓에 홍당무는 어둠 속을 덜덜 떨면서 다녀와야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한껏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온 홍당무에게 르픽 부인이 건넨 말은 매일 밤 닭장 문을 닫으라는 지시뿐이었다. 칭찬을 기대했던 홍당무에게 르픽 부인이 내린 처우는 너무도 잔인했다. 어린시절부터 오늘까지 이 작품을 여러 차례 읽어왔지만, 그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르픽 부인의 이러한 행동이었다. 홍당무를 향한 알 수 없는 르픽 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이 뿐만이 아니다. 상처를 입고도 죽지 않는 동물들의 숨통을 완전히 끊는 일을 홍당무에 맡기고, 맡을 일을 해야만 하는 홍당무를 오히려 잔인한 아이로 몰아간다. 자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침대를 내주고 엄마와 자야하는 홍당무가 코라도 골면 아들의 엉덩이를 피가 나도록 세게 꼬집는 엄마가 또 누가 있으랴. 더욱 황당한 것은 이불에 실례를 한 홍당무의 그것을 수프에 넣어 먹였다는 것.
"아이고! 더러워. 네가 지금 뭘 먹었는지 알아? 넌 지금 '그것'을 먹었어. 네가 싼 것을 도로 네 입에 넣고 삼켰다고."
"그럴 줄 알았어요."
홍당무는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매우 태연하게 대답했다.
홍당무는 이제 이런 일에 아주 익숙했다. 무슨 일이든 익숙해지고 나면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는 법이다. (본문 25p)
홍당무: 차라리 고아였으면 좋겠어. (본문 192p)
르픽 부인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책의 말미에는 르픽 부인이 친엄마가 아닌 새엄마임이 밝혀질 거라 기대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뺨을 때리는 일은 다반사며, 괴롭히려고 일부러 누명을 씌우기도 하니 어린 시절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홍당무는 이런 엄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당무의 모습은 무척이나 밝게 그려졌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둘러대는 행동이나 말들, 엄마를 위해 오노린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 등은 요즘말로 정말 웃픈 상황이다. 홍당무는 엄마에게 상처받지만, 다행이 무뚝뚝하지만 홍당무를 사랑하는 아빠가 있고, 홍당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부가 있기에 비관적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는 홍당무를 왜 이렇게 그려 놓았을까? 쥘 르나르는 1890년에 쓴 일기에 이른 글을 남겼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이를 천사로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잔인하고 사악한 면을 지니고 있다. 아이는 어른과 마찬가지로 악덕과 미덕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인격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본문 266p)
홍당무라는 캐릭터는 정말 독특하다. 굉장히 순수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동물들을 끔찍하게 죽이는가 하면, 천진한 듯 보이지만 가끔은 교활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우리 아이들의 순수하면서도 때로는 거친 모습 그대로를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는 듯 하다.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지만, 홍당무에게 돌아오는 건 따귀 세례나 꾸지람 뿐이다. 그런 부당한 대우에도 의연한 듯 행동하고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은 듯 행동하며 꿋꿋하게 잘 버티던 홍당무는 결국 엄마의 행동에 맞서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려움에 처할수록 재치와 기지를 발휘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상상 속에 빠지거나 글을 써가면서 성숙해져가는 홍당무가 드뎌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반갑기만 하다. 나는 여전히 르픽 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매가 잘 통하기 때문이라는 홍당무의 이야기만으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홍당무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두각시키기 위해 르픽 부인과 같은 엄마를 탄생시킬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고보면 작가 쥘 르나르도 꽤 잔인한(?) 면이 있다.
역경에 굴하지 않는 홍당무의 밝은 성격과 긍정적인 자세는 삶이 불우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작가 쥘 르나르도 어려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나중에 어머니에게 자립심이 강한 사람으로 키워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라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셈이다. (본문 265p)
<<홍당무>>라는 고전에서 보여주는 삶의 무게는 무엇일까? 열악한 환경에도 용기와 긍정적인 태도로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고 해결해 가려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부모의 사랑과 애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와 공상 그리고 글쓰기 등을 통해 성숙해져가는 홍당무가 가진 자세 말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고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내려할 때 우리는 성장해간다. 고통은 성장의 밑거름인 것이다. 쥘 르나르가 후에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던 것처럼. 우리도 훗날 그 고통에 감사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유머를 통해 어두운 이야기를 유쾌하게 이끌어가는 <<홍당무>>는 평범한 소재로 다양한 매력을 선보이는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