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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생각해보니 박범신 작가의 책은 그리 많이 읽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최근 <은교>를 영화로 접한 바 있었지만, 박범신 작가의 책을 읽은 건 <물의 나라><불의 나라> 이후로 정말 꽤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마주한 박범신 작가의 책 <<소소한 풍경>>은 독특하면서도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사랑 이야기였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세 사람의 삼각관계로 인한 질투, 갈등이 아닌 세 사람이 사랑하는, 그렇다고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먼가 결핍이 있는 이야기였다. 내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소소한 풍경>>이었다.
이 책은 소설가인 '나'에게 제자인 여자 ㄱ이 간만에 전화를 걸어 의례적인 서두도 없이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셧어요?'라는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ㄱ이 살던 집터에서 발견된 데스마스크, '나'는 ㄱ을 기억내했고 다음 날 소소로 그녀를 찾아갔다. 그것은 10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 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혼자 살던, 둘이 살던 그리고 셋이 살던 좋았던 그 이야기로 말이다. ㄱ은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은 뒤 대학에서 한 남자를 만나고 자신처럼 사랑하는 여동생을 잃은 그와의 우연한 부합에 사랑하게 되고 동거를 하게 되지만, 둘이 함께 살면서 알게 된 그의 모습에 대한 오해의 확장과 실망감으로 헤어지게 된다. 그 뒤 그녀는 부모님이 살던 소소라는 곳으로 오게 되고, 혼자 사는 즐거움을 느끼던 그녀는 어느 날, 남자 ㄴ를 만나게 된다. ㄱ은 늦가을 사선으로 내려다보이는 다세대주택 외벽에 발을 대고 물구나무를 서 있던 갈 곳이 없던 남자와 함께 살게 되고 둘이 사니 더 좋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한 달쯤 뒤 이번에는 키 작고 동그란 눈을 가진 소년 같은 얼굴의 한 조선족 처녀가 찾아오게 되고, 그렇게 두 여자와 한 남자가 함께 덩어리가 되어 살아간다. ㄱ은 셋이 사니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뜻밖이다. ㄴ이 내 집에 들어오고도 나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남편'이 아니라 단순한 '동숙자'이기 때문일까. 둘이 사는데 혼자 사는 것 같고 혼자 사는데 둘이 사는 것 같다. 동숙자가 줄 수 있는 예상 밖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본문 61p)
ㄴ은 우물을 판다. 그는 스스로 풍경이 된다. 마침내 우물에서 물이 솟았으나 ㄴ은 성취감 대신 그의 어때와 등은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우물에 바짝 다가가 앉았고, ㄷ은 그런 그에게 다가갔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등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고, 마침내 우물에는 그녀만이 그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 우물 밑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ㄱ은 다시 혼자가 되어 이사를 하게되었고, 이후 그들이 살던 집터가 허물어지면서 ㄴ의 데스마스크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ㄱ은 경찰로부터 심문을 받게 되지만, 불법체류자였던 ㄷ을 경찰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고, 미제사건이 되어버린 이 사건 아니, 이 사랑은 이제 ㄴ의 이야기 그리고 ㄷ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소소한 풍경>>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은 모두 셋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랑하며 사랑받는 자, 오직 둘만 있는 독특하고 이상한 사랑(본문 336p)을 담아냈다. 복도훈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을 두고 '셋이 동거하는 사랑은 욕망이되 욕망의 "멸진"을 향하는 욕망이며, 삼각형을 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소소한 풍경'의 사랑은 불가능한 사랑이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삼각관계의 사랑 이야기라고 콕 짚어서 말하기에는 먼가 부족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생의 심연으로 가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녹아내어 인간의 본질적인 사랑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과 죽음, 사랑과 욕망에 대한 본질말이다.
이 책을 처음 읽다보면 소설가 '나'로 인해 자연스럽게 <은교>가 떠오른다. 이 두 작품에 대한 공통점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구심이 책을 읽는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두 작품에서 박범신 작가만의 사랑을,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파격적인 사랑과 인간 심연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독특하지만 매혹적인...사랑.
<<소소한 풍경>>은 <은교>에서 시인 이적요가 꿈꾸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즉 결핍되었던 완전범죄를 새롭게 꿈꾸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소소한 풍경>>이 <은교>를 떠올리게 하는 건 사뭇 시사적이다....<<소소한 풍경>>은 <은교>와 가장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먼 이야기다. (본문 343,344p)
"사람들 몸뚱어리 속에 가시들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일 뿐만 아니라, 사랑이 어떻게 죽음까지 이어져 있는지, 또한 타자의 그 무엇이 한 존재를 그토록 매혹시키는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매움 섬세하고 아름다운 기록(본문 348p)인 <<소소한 풍경>>을 통해 바라본 사랑, 삶, 죽음은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독자로서 내가 이 작품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는 나 스스로에 대해 커다란 의구심이 들지만, 독자를 끌어당기는 독특하면서도 매혹적인 스토리임을 이해하고 확신하기에는 나의 짧은 독서력만으로도 충분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들 ㄱ,ㄴ,ㄷ...하지만 나는 어느 새 마음 깊이 그들을 이해하고 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