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집에 갔는데 친구는 없고
신해영 지음 / 로코코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분홍색의 표지가 눈에 띄는 책이다. 제목 또한 눈에 띈다. 친구네 집에 갔는데 친구는 없고 누가 있었던 걸까? 무한 기대를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40대인 지금도 이런 달달한 로맨스에 가슴이 설레인다니. 여전히 마음만은 스무살의 꽃다운 나이인가보다. 하이틴 로맨스를 읽던 어린 시절의 모습처럼 말이다.

 

번역과 통역일을 하고 있는 프리랜서 정윤정은 화려하진 않지만 순탄한 삶을 살아가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이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인생에 길이 남을 그 흑 역사의 날은 몇 년 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물두 살의 정윤정은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룸메이트인 메이가 중국에서 친구가 와 묵는 날, 최악의 날을 맞는다. 윤정은 절대 멈추지 않을 듯했던 그들의 수다를 포기하고 집을 나섰다. 막막했던 윤정은 발레 스쿨에서 만난 어렸을 때의 소꿉친구였던 승희가 러시아로 가면서 한국 집을 그대로 두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고 없는 동안 비어 있는 집을 쓰라고 권했던 사실이 떠올라 승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얼어 죽을 듯한 윤정은 답변이 오기전에 텅 비어 있는 집안으로 들어가 옷을 훌훌 벗고 욕실에서 얼어 있던 몸을 녹였다. 따뜻한 물, 얼었다가 녹기 시작한 녹진한 몸으로 너무 좋았던 윤정은 남성용의 전기면도기를 발견하게 되고, 놀라움에 욕실의 흔적을 지우고 서둘러 거실로 나왔으나 오토 로크가 열리자 옷을 싹 다 끌어안고 베란다로 피신하고 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옷을 훌훌 벗고 있는 남자를 보게 되고, 억만년이 지난 것 같은 시간이 자난 후에야 남자가 욕실 문을 닫고 사라지자 서둘러 옷을 입고 도망치려 했으나 핸드폰이 까톡까톡...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하면서 결국 남자에게 들키고 만다.

 

남자의 이름은 유승우로 승희의 쌍둥이 오빠였는데, 승희가 보낸 메시지로 신분을 증명하고, 통화까지 했음에도 남자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열여덟 살의 나이로 국가 대표에 선발된 유승우를 알아본 승희에게 승우는 승희가 자신을 만난 사실, 자신의 알몸을 본 사실을 소문내지지 못하도록 반짝반짝 빛이 날 것 같은 아름다운 얼굴로 '너, 나랑 자자'라고 말한다. 메이의 친구들이 집을 점거해 버린 후 윤정은 고민 끝에 학교 근처의 원룸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뒤로도 승우는 자자며 사전 연락도 없이 수시로 찾아온다. 윤정은 그런 승우에게 밥을 해주고, 승우는 식사가 끝나면 윤정의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윤정이 잠든 사이에 사라지곤 했다.

 

통역,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모으는 회사에 취직해 일을 하는 동안에도 승우의 느닷없는 방문은 계속 되었고, 승희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도 승우는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윤정은 승우의 경기를 빠짐없이 시청하곤 했으며 연락없이 찾아오는 승우를 자신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힘든 경기를 마치고 찾아온 승우의 몸을 씻겨주고 몸을 감겨 주면서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윤정은 승우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하지만, 승우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승우와 여배우 서해민과의 스캔들이 터지고, 승우는 월드컵 경기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 힘겨운 경기가 계속 되자 승우가 걱정된 윤정은 무작정 브라질로 가게 된다. 자신을 향한 승우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윤정, 그런 윤정의 투덜거림이 좋은 승우 그리고 그들의 달달한 로맨스에 흐뭇한 나.

 

하여튼 재주가 있어............은근 내가 매달리게 만든단 말이지. 내가 그러고 있다는 걸 눈치 못 챈다는 게 귀여워 죽겠지만.

이 여자는 알까?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홀딱 벗은 채 내 침대 위에서 덜덜 떠는 그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모르겠지.

계속 아무도 모를 이야기니까.

 

동생네 집에 갔는데, 동생은 없고, 내 사랑이 있었다. (본문 399p)

 

심상치 않았던 두 사람의 만남, 윤정은 전혀 모르는 윤정을 위해 축구인생까지 거는 승우의 사랑, 승우의 마음도 제대로 모르는 채 승우를 사랑하는 윤정, 두 사람의 달달한 로맨스에 오랜만에 마음이 설레인다. 연작은 아니지만 저자 혼자 시리즈라고 우기고 있다는 <이모네 집에 갔는데 이모는 없고>가 먼저 출간이 되었었나보다. 앞으로 고모, 삼촌, 사돈 등등 힘닿는 데까지 쓰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도 웃음이 빵~ 터졌다. 끝까지 기분좋게 마무리해주는 저자의 센스가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전작 이모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나는 하루하루 차근차근 내 삶을 쌓았던 것처럼, 하루하루 차근차근 유승우와의 시간을 쌓았다. 어떻게 보면 지독하게 평범한 방식으로, 어떻게 보면 약간은 특별한 방식으로.

 

친구네 집에 갔는데 친구는 없고, 내 운명이 있었다. (본문 3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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