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 1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아진 지음 / 청어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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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크로스파이어>라는 작품을 읽은 바 있다. 염력 방화 능력을 가진 여성 준코와 법으로 처단되지 못했던 죄인들을 집행하는 집단인 '가디언'이 사회악과 벌이는 분투기를 통해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자들을 살해하는 것은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었다. 그 때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개미들>>의 주인공 수영처럼 어떤 이유에서는 살해를 한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최근들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사고와 그 사건에 대한 판결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피해자들은 평생을 아파하며 살아야함에도 극악무도한 죄인들은 짧은 형량으로 모든 죄를 덮게 된다. 그 뿐인가? 권력자들은 법조차도 우습다. 사람을 죽이기도 요양원에서 호화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돈은 모든 죄를 사해준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고개를 뻣뻣이 들고다니는 반면, 피해자들은 오히려 숨어 살아야하는 이 서글픈 현실에서 법은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고, 우리 또한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힘없는 개미같은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겠는가?

 

 

<<개미들>>은 네이버 웹소설 화제작으로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정의가 무엇이며, 악이 무엇인가를 되묻는 선악조차 모호한 세상에 던지는 처철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크로스파이어> 작품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크로스파이어>가 염화 방화 능력을 가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스토리가 조금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면 <<개미들>>은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작품은 비록 신선한 소재는 아니었으나, 독자를 끌어당기는 굉장한 흡입력을 가진 작품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이 사회의 법에 따르자면 저는 죄를 저지른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 행동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징역형을 받는다면 그곳에서 나온 후 또 그런 자들을 처리할 겁니다. 교도소 안이라면 목표로 삼을 만한 인간은 더더욱 많겠지요. 저를 멈추고 싶다면. 그렇다면 죽이세요." (본문 9p)

 

7년 전, 법을 피해 수많은 인간을 죽인 소년은 법정에 서있다. 살인범, 재범의 여지 있음, 뉘우칠 기색도 없음, 그리고 결과로 내려질 수 있는 최고의 형벌에도 검사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소년이 딸을 10년간 성폭행하고도 겨우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남자의 시체가 서울 하수도의 어딘가를 흘러가고 있을 거라고 진술했을 때 검사를 비롯해 어두운 쾌감을 느낀 법의 수호자들도 분명 있었던 탓이다. 소년은 자신이 한 일이 법률에 어긋났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악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물세 명을 살해한 것으로 밝혀진 죄인 살해자, 정의 살인마였던 소년, 정수신을 찬양하는 자들도 생겨났으며, 매스컴에서는 정의의 용사니 살인마니 하는 이름으로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쏟아냈고, 소년의 구명운동까지 벌어졌다. 소년은 정신 이상에 의한 치료감호로 판결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으나, 탈주 후 교통사고에 휘말려 쓸쓸하게 끝을 맞이했다.

 

악몽 속에서 잠을 깬 수영은 7년 전 친구였던 주신의 칼에 찔린, 이제는 붕대 대신에 이미 메워진 지 오래된 작은 흉터를 내려다봤다. 주신이 잡히는데 공헌한 수영, 도망치기 위해 수영을 찔렀던 주신. 7년이 지난 지금도 수영은 주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정주신을 찬양하는 '킬러J'와 같은 닉네임이 존재했고, 누군가는 쓰레기같은 인간들을 죽여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의 친구 기준은 평소 자신을 괴롭히는 선배를 죽이게 되고 수영은 기준을 위해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영은 그를 오랫동안 주시하고 있었던, 주신이 몸담았던 '개미'라는 집단으로부터의 접촉을 받게 되고, 주신의 일을 이어 함께 일해주기를 바랐다.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은 발아래를 보지 않습니다. 권력자들, 힘이 있는 놈들, 법을 이용할 줄 아는 놈들이 움직일 때마다 거기에 휘말린 수많은 사람이 상처입죠. 굳이 뉴스 같은 걸 보기 전에 주변을 둘러봐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런 것이 정수영 씨가 말하는 세상의 상식입니까? 우리는 그 커다란 발에 개미처럼 짓밟힙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복수조차 할 수도 없습니다. 작은 개미는 밟히면 버둥거리면서 죽는 게 전부죠. 다시 묻죠. 이게 당신이 말하는 세상의 상식입니까? 힘없는 자들이 힘있는 자들에게 밟히며 죽어가는 것이?'] (본문 120p)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살해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거부했던 수영은 개미의 일원인 화연의 끈질긴 접촉과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환멸로 인해, 이제야,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해할 수 없었던 주신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고, 함께 일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물론 여전히 수영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었으며, 일을 하는 동안에도 수영은 자신이나 여왕개미는 성자가 아닌 그저 악당이며, 이 일도 최선이 아닌 차악일 뿐이라고 되씹곤했다.

 

이런 쓰레기라도 살아야 하고, 죄를 지은 것은 나라에서 벌해야 한다고, 법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던 자신이 너무나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이론이 아닌 현실인 것이다. (본문 153p)

 

개미들은 모두 다 피해자였다. 그들은 복수를 위해 모였으나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고, 여왕개미가 치밀하게 짠 계획따라 움직였으며, 자신의 복수가 아닌 타인의 복수를 대신 해주었다. 그래야 용의자 선상에 올라서도 알리바이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화연과 함께 일을 처리하던 수영은, 화연의 복수심으로 인해 화연이 일을 그르치게면서 혼자가 되어 일을 처리하던 중, 기자가 된 초등학교 동창인 도식이 7년 전 주신의 칼에 죽은 줄 알았던 수영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특종을 노리고 접근하게 된다. 점점 궁지에 몰리는 듯한 수영에게 걸려온 여왕개미에 대한 뜻모를 한 통의 전화가 수영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7년 전 사건의 마지막 피해자였던 수영,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영은 주신의 일을 대신 하게 하면서 그 악몽에서 벗어났다. 여전히 살해는 범죄라고 여겼던 수영은 어느 순간 점점 그 일에 몰입하는 듯 보였고, 쓰레기들의 악한 본성을 닮아가는 듯 했다. 이 책은 수영이 죄인을 살해하고 처단하는 묘사보다는 정의로웠던 수영의 감정변화가 더욱 무서운 책이다. 악행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조차 퇴색되어버리는 수영의 변화가 두렵다. 책을 읽는내내 여왕개미가 누굴까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했는데, 1권에서는 아직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혹여 주신이 죽지 않은 것은 아닌지, 혹 수영의 범죄가 밝혀지면서 경찰에 쫓기게 되는건 아닌지 가슴 졸이며 읽게 된 책이다. 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서둘러 2권을 읽어볼 수 밖에. 흡입력이 너무도 강했던 작품이었고, 손에 땀을 쥐며 긴장하고 읽었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내내 우리 사회의 현실, 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던 책이다. 그 어떤 공포물보다 무서운 우리 현실의 모습과 수영의 변화가 무섭고 두렵다.

 

"여전히 벌은 가볍고, 그렇다고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도 없어요. 그러는 사이에 우리 같은 개미들은 방치되고 짓밟히고 있죠. 이제 이해가 되나요? 이 쓰레기가 왜 여기서 죽어야 하는지." (본문 239p)

 

(이미지출처: '개미들 1'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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