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는 달 - 권대웅 달詩산문집
권대웅 지음 / 김영사on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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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날 환하게 떠있는 보름달도, 손톱만한 초승달도, 구름 사이로 빼꼼히 눈이 내보인 달도, 그 어떤 모습의 달이라도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마주한 달은 왠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줍니다. 보고 있으면 마냥 빠져들어 한없이 바라보게 되는 달, 그렇게 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달 속에서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의 얼굴, 오래전 함께 놀았던 친구의 얼굴 등 그리운 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리움이 잔뜩 묻어난 달, 그래서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하고, 사색에 잠기기도 하는가 봅니다. 저는 오늘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사람, 이어폰을 꽂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의 달을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하늘빛 표지가 마음에 들어 우연히 읽어보게 된 권대웅 작가의 <<당신이 사는 달>>에는 달을 보며 느끼는 수많은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바쁘고 삭막한 서울의 지하철 속에서 저는 그렇게 고요를 맛보았답니다.

 

 

<<당신이 사는 달>>은 달에 대한 시인의 특별한 애정이 담긴 책으로 '달詩' 23편과 저자의 일상과 생각, 여행을 통한 사진 등이 달과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이 책 속에는 영시도 수록이 되어 있는데, 이 영시들은 저자의 페이스북 친구인 'Rachel Bach'님이 달詩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하네요. 저자는 이 책 속에 '지금 여기에서 당신과 함께 숨 쉬고 느끼고 존재하는 바로 이 순간의 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저자의 바람처럼, 언제나 환하고 밝은 달의 기운이 책을 통해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아닌, 내 마음 속에 환하고 밝은 달을 선물받은 기분도 느낄 수 있었지요. 나만의 달처럼 나 역시도 환하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생겨나네요.

 

달은 참 좋은 에너지다. 언제나 따뜻하고 밝고 환하고 둥글다. 그런 달의 기운을 받고 또 나누고 싶었다. 선물하고 싶었다. 조금 외롭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지만 그래서 다 아름다운 당신의 달을. (본문 282p)

 

저자는 참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달을 닮은 사람이라고 해야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워할 줄 알고, 눈물 흘릴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줌도 안 될 햇빛에 옷가지를 말리려고 젋은 아낙이 마당에 나와 탁탁 옷을 터는 소리에 눈물겨워할 줄 아는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었지요. 불어터진 라면에 잔뜩 배인 깊은 맛을 느낄 줄 알았으며, 엄마의 촌스러움을 이뻐할 줄 알고, 각박해지고 급해지고 마음은 작아지는 바쁘고 정신없고 지치고 외로운 무뚝뚝한 로봇같은 도시에서 오랜 시간 손때 묻은 가구, 작은 것들을 그리워할 줄 알았지요. 그렇게 저자의 달을 닮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에게도 있었던 하지만 잊고 있었던 그 감수성들이 조금씩 톡톡 터지곤 했습니다. 그리움이 잔뜩 배어있지만 늘 환한 달처럼, 제 마음도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면서 또 그 그리움에 묻어있던 기억들로 마음이 벅차올랐지요.

 

강렬했던 어떤 정신, 사랑, 고통, 잊을 수 없는 추억들 또한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저장되어 보존되어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다른 그 무엇으로 성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공간, 바로 이 자리에서 먹고, 자고,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꿈을 이루어내려고 생을 껴안았던 사람들. 그들의 힘이 이 지구를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본문 76p)

 

치열한 도전이나 열정에서 오는 고통은 우리 영혼에 유익한 무언가를 안겨준다. 부딪치고 넘어지고 아프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했던 순간들. 진짜 삶이란 그러한 과정들, 바로 그 순간 속에 있다. (본문 88p)

 

사랑은 그런 것이다. 둘이 서서 네 발로 가는 게 아니라 둘이서 두 발로 가는 것. 당신이 바라보는 풍경을 나도 바라보는 것. 당신 마음에 내 마음이 앉아 있는 것. 둘이서 아름다운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 것.

기다려주고 편들어주는 것. 미워도 다시 한 번 껴안아주는 것. 강물이 바다를 만나러 가는 기쁨처럼, 햇빛이 꽃잎을 만나러 가는 눈부심처럼, 둘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살아내는 그 과정이다. (본문 223p)

 

 

'사랑은 둘이 서서 네 발로 가는 게 아니라 두 발로 가는 것'이라는 문구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래 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야했던 조금은 빡빡했던 하루의 일정 속에 저는 너무 고요한 시간, 그리운 시간, 마음이 환해지는 시간과 마주했습니다. 책 속의 달詩는 잔잔하면서도 은은한 느낌이 주었지요. 얼마 전 호기롭게 퇴사하며 남모를 맘고생을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이제 원망스럽지도, 후회스럽지도 않았습니다. 달의 환한 기운이 이제 저를 채워줄테니까요. 정말 오랜만에 기분좋은 독서였습니다. 제 마음 속에 저자가 선물한 달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이미지출처: '당신이 사는 달'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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