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모자람과 넘침의 격차 사이에서 불안하게 뒤흔들리는 젊음

바다를 품은 소녀 에리와 파도를 타는 소년 미쓰히데의 뜨거운 성장기

 

순정만화를 보는 듯한 표지 삽화에 이끌려 책을 펼쳤다. 열혈 서퍼인 미쓰히데와 자타 공인 모범생인 에리의 이야기가 중첩적으로 수록된 이 작품은 불안하게 뒤흔들리는 청춘 남녀의 뜨거운 성장기를 담고 있다. 여자 친구와 서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망설임없이 서핑을 택할 미쓰히데에게 서핑은 한없이 자연스럽고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 지금, 미쓰히데는 아버지의 폭군 같은 행동에 집을 떠나 지금은 혼자 하숙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다.

집이나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통하는 에리를 두고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에리에게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욕구가 있다. 가장 오래된 유치원때의 기억에 의하면 자신은 성적인 욕구의 싹 같은 게 숨겨져 있는 것, 자신의 성욕이 아무래도 남들보다 훨씬 강한 것, 마음은 여자를 원하면서도 몸은 남자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지겨운 것은 나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모범생이라는 가면 밑에 숨겨놓은 채 태연히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도 진짜 나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제 새삼 내 입으로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없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기대되는 역할이라는 게 있고 나는 지금까지 너무도 능숙하게 그 역할을 해내버렸다. 이제 와서 그걸 내던진다면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걸 피하려면 나는 이대로 계속 사람들을 속이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진짜로 모든 게 지겨워진다. 이따금 내 손으로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을 만큼. (본문 21,22p)

 

아버지에게 반감을 느겼던 것은 아버지라는 인간이 내가 가진 싫은 부분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존재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본문 263p)

 

폭군같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런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미쓰히데와 이따금 여자를 사랑스럽게 느낀 적이 있다는 걸 친구 미야코에게 털어놓으면서 미야코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한 에리가 서로 만나게 된 것은 미쓰히데는 아빠와 이혼한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며 에리는 길거리에서 만난 남자와 처음 잠자리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 우연한 만남으로 에리는 미쓰히데에게 함께 잘 것은 요구하고 그들의 만남은 지속된다.

 

때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가 부르기 전에 내가 먼저 그의 하숙방에 쳐들어갈까 생각했을 정도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매번 미쓰히데의 인내력이 먼저 바닥났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 (본문 160p)

 

미쓰히데는 아버지의 암, 에리는 큰오빠의 살인으로 두 사람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하지만 그들은 서로 금기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스로의 답을 조금씩 찾아간다. 딱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될 때 슬쩍 도망쳐버리는 미쓰데이는 에리를 향한 한 걸음 더 나아갔고,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도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에리 역시 미야코와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청춘들의 방황이 있었지만 파도는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파도를 통해 불안하게 흔들리는 청춘의 모습을 그려낸 저자의 비유를 보면서 청춘과 파도가 참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파도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거친 파도도 언젠가는 점점 멀어지고 작아져버린다는 사실을 마치 몰랐던 것 마냥 새롭게 받아들여본다.

 

점점 멀어져간다. 작아져간다.

콩알만큼 작아지고 이내 금빛 점이 되더니...

이윽고 반짝이는 물거품과 구별이 되지 않았다. (본문 433p)

 

<<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는 일본과 한국의 정서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음....글쎄...우리나라의 청소년들도 성적인 부분에서 우리와 같지 않다는 얘기는 많이 들은 바 있지만,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성장 소설에서 성적인 묘사가 너무도 세밀한 이 표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파도에 빗대어 불안안 청춘의 묘사한 부분이나 그들의 고민, 방황 등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한 것은 정말 좋으나, 아무래도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는 듯 보이는 성적 표현이 조금은 거북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그가 보여준 섬세한 묘사와 스토리의 진행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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