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저는 이 시대에 사는 한 이런 감시 속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경계하지 않으면 제가 제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되는 끝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겠지요. 그게 가능해진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이런 일이 흔하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우리의 편의의 이름으로 노출하는 정보들이 결국 우리를 감시하는 도욱가 되고 있다는 것을요. 전화번호, 신용카드 사용 내역, 교통 카드 사용 내역, 적립 카드 사용 내역, 스마트폰 사용 내역 등등. 일상적인 일이니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로 한 인간이 가진 취향이나 이동 경로, 성향, 심지어 철학이나 친구 관계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애깁니다. 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어제보다 편하게 만들어 준 건 분명하지만, 그만큼 인간의 삶을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저는 실감했습니다. (본문 364,365p)

 

언제였던가, 우연히 보게 된 시사프로그램에서 내가 만든 보너스 적립카드가 아주 싼 가격에 내 정보를 파는 행위라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쇼핑 성향에 맞는 쿠폰을 제공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동안은 무심코 보게 되었던 메일이, 그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조금 섬뜩한 느낌을 받았지만 곧, 일상적인 일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내 이름과 전화번호 등의 인적사항이 해킹당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고, 다양한 스팸 전화와 메일, 문자를 받게 되는 것도 이제는 그리 놀라운 일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나의 모든 것을 낱낱이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문제를 제기한 <<13월>>을 통해서였다. 정보 유출로부터 안전할 수 없는 우리 사회, 지금 나는 안녕한가?

 

 

이야기의 시작은 1988년 9월 17일, 서울 세검정 백사골 계곡을 등지고 포란된 알처럼 자리 잡은 유토라는 이름의 조리원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시작된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들썩이던 날 새벽, 조리원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산모와 아이들이 대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산모 한 명과 신생아 한 명이 미처 나오지 못했고 화재가 진압된 후 조리원에서는 산모의 시체 단 한 구만 발견되었다. 아이의 시체는 없었기에 죽은 사람은 산모가 아니라 보호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서너 줄짜리의 잛은 언급으로 화재 사건은 올림픽의 함성에 묻혀 조용히 사라졌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본문 9p)

 

2012년 9월 17일 금요일, 수인은 1년 동안 수고했다는 메모와 함께 52권의 새로운 관찰일지를 전달받았다. 강박증과 관음증을 앓았던 정신 병력으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만에 '비밀을 엄수하겠느냐'는 서약과 함께 정부 산하 기관인 목장연구소에 합격하게 되고, 그녀만의 애칭으로 부르는 '밥'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수인이 쫓는 그는 스파이도, 배우도, 간첩도 아닌 여느 인간과 다르지 않는 인물이었다. 수인에게 허락된 건 하루 종일 도서관에 처박혀 책만 보고 어느 날은 집안에 틀어박혀 아예 나오지 않는 상대의 불빛 이동 경로를 보며 관찰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요즘 밥의 동선에 변화가 생겼고, 보육원 친구였던 광모의 등장으로 밥의 규칙적이었던 이동 경로는 변하기 시작했다. 사견 없이 그저 관찰만 해야한다는 규칙에도 불구하고 수인은 자꾸 그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휴일이라도 해도 하루 패턴은 달라지지 않은, 아침 6시에 기상, 7시 30분에 등교, 8시까지 학교 식당에서 식사, 9시에 강의실로 들어가거나 도서관으로 향한다...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늘 자정 무렵이었던 재황은 오랫만에 광모를 만나게 된다. 보육원을 나오면서 영원히 단절되기를 바랐고, 기억 속에 저정된 20년의 세월을 모두 지워 버리고 싶었지만, 만나자는 청을 들어 주지 않았다면 학교까지 찾아왔을 게 분명했을 광모이기에 필사적으로 감춰 왔던 과거를 맥없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재황은 광모를 찾아올 수 밖에 없었다. 광모가 보육원 출신임에도 명문대학에 입학한 재황을 찾은 이유는 여자 장사를 하는 광모에게 여대생은 큰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모의 여성이라면 한 달 300만 원 이상 고소득을 보장한다는 명함을 돌려주기만 한다면 주유소 알바는 필요없게 된다는 광모의 회유와 협박이 재황을 사지로 내몰게 된다.

 

<<13월>>은 광모를 만나면서 삶에 변화가 생기는 재황, 그런 재황을 관찰하는 수인, 두 사람의 이야기가 중첩적으로 구성된다. 고아였으며 청소년 시기 광모와 함께 방황하기도 했지만, 환경을 극복하고 명문대생이 된 재황은 자기과는 다른 신분을 가진 승희를 좋아하고, 만나게 되지만 자신과는 다른 승희에게 다가가기 위해 소설을 쓰고 문학상을 받지만 곧 표절로 밝혀지고 휴학을 한다. 승희는 그런 재황에게 다가오는 반면, 광모로 인해 코너에 몰렸던 재황은 광모와 파트너가 되어 폭력에 가담하면서 승희와의 점점 다른 계급이 되어간다. 그리고 재황은 과거의 어느 지점을 향해 시간을 거슬러 걸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런 밥을 관찰하는 수인은 폭력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늪을 탈출하려는 그에게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아빠의 불륜을 훔쳐보다 관음증을 앓게 되고, 아빠의 자살과 자신에게 요구만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수인은 점점 그에게 빠져들게 되고, 밥의 뒤를 밟는 게 업무가 아니라 수인의 삶이 되어버린 채 그의 그림자가 되어간다.

 

광모를 통해 점점 무의식 중에 잃어버렸던 과거 속으로 가던 재황은 자신의 출생에 관한 실마리를 찾게 되고, 수인 역시 재황의 체온에 의해 반응하던 인식기의 불빛이 완전히 꺼지면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된다. 이제 스토리는 미로의 끝을 찾아가는 재황의 불안감과 밥을 관찰한 지 2년째 되는 날에 갖게된 수인의 정체모를 두려움 그리고 우리도 이런 감시 속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독자의 두려움까지 뒤섞여 이 불안과 두려움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감정에 뒤범벅 되어버린다. '13월'은 불안과 위기의 시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런 13월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위치 추적이 가능해졌으며, 전화번호 정보 확인이 가능한 어플도 만들어졌다. 스팸전화번호를 차단할 수 있다는 편리성에서 비롯되었겠으나, 내가 걸고 있는 이 전화에 대한 정보가 순식간에 상대방에게 뜬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까지 일게 한다. 나에 대한 모든 정보가 순식간에 타인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알게 된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순식간에 신상이 공개되는 인터넷 세상은 이 감시 사회의 단면이기도 할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사회 속에서 낱낱이 노출되는 한 개인. 개개인의 모든 정보를 수집, 통제하여 뛰어난 인류를 개량하려는 단체가 있다면? 그 음모로 실험 대상이 되는 한 남자와 그 남자를 그림자처럼 쫓으며 스스로의 존재로 잊고 마는 한 여자의 이야기. (표지 中)

 

<<13월>>이라는 책 제목은 아주 짧으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인류에 가장 적격한 유전자를 찾아내겠다는 의도하에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감시를 통해 가장 이상적인 적격의 통계를 얻고자 함이었다. 우연, 선택, 운명 등이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가정이 왠지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그런 세상을 가능케하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동의'를 걸쳐 제공된 나의 정보들이 결국 나의 우연이나 운명을 이끌고 있는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는 헛된 망상까지 하게 되는 걸 보면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 사회의 가장 서늘한 문제를 잘 그려내었다는 뜻이리라. 그는 묻는다.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라고. 작가의 말마따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경계하지 않으면 끝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나는 정말 안녕한걸까? 지금 나는 불안 속의 13월을 보내고 있다.

 

(이미지출처: '13월'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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