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와 결혼해 주세요
히구치 타쿠지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소설 <아버지>를 17여 년만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두 번째 읽는 탓에 내용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내내 참 많이 울었는데,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자신이 남아 있음으로해서 가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간병으로 힘들게 밤을 지새며 쓰러지고, 자식 또한 편히 한 번 눕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친구 남박에게 부탁해 죽음을 앞당기게 된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남은 가족의 걱정과 안위만을 걱정하는 사람, 바로 '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여기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는 <아버지>와 같은 코드를 가지고 있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남은 가족이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점이 닮아있다. 하지만 같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아버지>가 진중하면서도 무거웠다면 <<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은 좀 가벼우면서도 유쾌하게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 진솔함이 담겨져 있어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모두가 고통을 참고 웃고 있는데 독자만이 울게 된다는 책 띠지의 글처럼 독자는 유쾌한 스토리 속에서 감동의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된다.

 

<<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는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슈지가 1인칭이 되어 앞으로 남은 시간을 순차적으로 기록한다.

앞으로 181일, 22년 동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일하던 슈지는 췌장암으로 남은 목숨이 약 6개월이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 입원한다 해도 1년 정도로나 연장될 수 있을 뿐이다. 스스로 방송작가의 일에 대해 '세상의 온갖 일을 호기심으로 즐겁게 변환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하던 슈지의 고민은 '아내에게 뭐라고 말하지?' 였다. 결혼한 지 15년이 된 슈지에게는 서른여덟 살 아내 아야코와 열 살짜리 아들 요이치가 있다. 일이 바빠서 가정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돌보지 않은 남편이었던 슈지는 이제 6개월 후에는 아내와 아들을 남기고 떠나야만 한다. 이 상황을 '즐겁다'로 변환해, 가벼운 마음으로 죽어가는 건 어려울 듯 싶다. 아내에게 말하면 멋대로 자책하면서 슈지보다 더 무거운 짐을 떠안을 것이 뻔한 아내이기에, 슈지는 아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결국 슈지는 아내에게 뭐라고 말하지, 라는 기획을 생각하게 되는데, 남은 목숨에 대한 것도 프로그램 숙제처럼 생각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며, 얼마 남지 않은 목숨도 기획이라고 생각하면 즐겁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대개는 남은 시간을 가족과 지내며 간병 속에서 죽어간다. 내가 생각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사라지고 난 후에 아내와 아들이 웃을 수 있는 기획이다. (본문 32,33p)

 

앞으로 173일, 슈지는 우연히 결혼상담소의 간판에서 떨어진 실연당한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아내의 결혼 상대를 찾자'라는 기획을 떠올린다. 그렇게 아내를 위한 슈지의 결혼활동(취직 활동과 같은 맥락의 일본식 조어)이 시작되는데, 슈지는 결혼 활동 관한 책을 읽고, 베스트셀러 저자를 만나며, 아내를 대신해 인생 최초로 맞선 파티를 참가하는 한편, 최근 결혼에 성공한 프로듀서 야마다 미도리를 통해 결혼상담소를 찾는다. 결혼상담소의 사장인 치타는 슈지도 잘 알고 있는 리서치 조사원이었기에 슈지는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고 아내의 맞선 상대를 찾는 일에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해서 슈지의 마음에 드는 이토를 만나게 되고, 슈지는 아내 아야코와 헤어지기 위한 불륜 연기도 감행한다.

 

"좋은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져도 끝내고 싶지 않아요. 좋은 프로그램은 사회자가 바뀌어도 계속되잖아요. 그래서 확실하게 이토 씨와 만나 바통터치할 거예요." (본문 190p)

 

하지만 책은, 결국 슈지의 병을 알게 된 가족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데, 아픔이나 슬픔을 굉장히 절제하면서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이 장면에서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된다. 남편을 위해 맞선을 승락한 아내와 이토에게 아내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장면(이건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이 맞선남에게 얘기해주던 장면과 흡사하다)이나 이토와 아들의 대화 등이 너무도 따뜻하고 아름답다.

 

"오히려 병에 걸려서 잘됐다고 생각해."

"헉! 왜?"

"병에 걸린 게 엄마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만약 엄마가 먼저 죽으면 아빠는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었을 거야. 장례식때도 아무것도 못하고 계속 축 처져 있을 거야. 다른 누구보다 침울해질 자신 있어." (본문 242p)

 

슈지가 죽음 앞에서도 두렵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내의 결혼 상대를 찾는 일을 통해 어떻게든 즐거움으로 변환시키려 함으로써 방송작가로 인생의 엔딩을 맞이하려 했던 것 때문이었다. 그런 슈지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주었던 바로 아내 아야코였다.

<<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는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슈지가 방송작가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세상의 온갖 일을 호기심으로 즐겁게 변화하는 작업'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주인공 어느 누구도 오열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작품임에도 독자들을 오열하게 만드는 작품이기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 듯 하다.

슬픔도 웃음으로 변환시키는 반전의 카타르시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을 소개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을 만난 기분이다. 슬프면서도 유쾌한 소설, 바로 <<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이다.

 

(사진출처: '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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