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리카와 히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토리텔링의 여왕 아리카와 히로가 선사하는 진한 감동의 아름다운 소설 <<고양이 여행 리포트>>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아리카와 히로는 '가장 좋아하는 여성 작가' 상위권에 랭크되는 일본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인기 작가라고 하는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 처음 작가의 작품을 접하면서 나 역시도 좋아하는 여성 작가 목록에 쏙~ 넣어두기로 했다. 휴식같은 이야기, 메말랐던 감성에 촉촉함을 전하는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쏙~ 든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 사토루의 이모인 노리코처럼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다행이도 얼마 전 <흐리고 가끔 고양이><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을 읽으면서 고양이에 대한 무서움이나 두려움이 조금 사라졌지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도망치지 않고, 예쁜 눈을 쳐다봐주는 것으로, 혹은 길고양이들이 도망가면 '너 참 소심하구나~'하며 말을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내가 <<고양이 여행 리포트>>를 읽으면서 고양이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이 책이 얼마나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떻게 된 거야, 차에 치였니?"

부끄럽지만, 잠깐 실수를 해서.

"아프니? 아프겠구나."

당연한 소리 묻지 마, 화낼 거야. 다친 고양이를 위로하라고.

"너무 절박하게 불러서 잠이 깼어....나를 부른 거지?"

불렀지, 불렀지, 무진장 불렀지. 좀 늦었네, 당신 (본문 12p)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길고양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책의 주 관점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이 길고양이지만, 각 장마다 동창들을 만나는 시점에서는 동창이 시점이 되어 동창과 사토루의 어린시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생후 1년, 성묘가 되었을 무렵 어느 맨션 주차장에 서 있는 은색 왜건 보닛 위에서 자는 걸 좋아하던 고양이는 차 주인인 키가 훤칠하게 큰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뒤로 그 남자는 매일 밤 간식을 놓아주었고, 고양이와 남자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그냥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그들의 관계가 크게 바꾸어 놓은 일이 일어났는데, 자동차 사고로 크게 다친 고양이가 자신을 도와줄 법한 남자를 찾고 남자는 그런 고양이의 절박한 울음에 달려 나오면서부터다. 이 사고로 고양이는 사토루라는 남자와 함께 살게 되고, 꼬리 모양이 위에서 보면 숫자 7로 보인다는 이유로 '나나'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렇게 나나는 언제나 착한 고양이로 5년 동안을 사토루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이제 사토루의 사정으로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게 되었고, 사토루는 나나를 입양보낼 곳을 찾기 위해 동창들에게 메일을 보낸 후 나나가 좋아하던 은색 왜건을 타고 한 명씩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둘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자, 가자. 사토루의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고양이였던 나는 사토루의 여행 동반자로도 더할 나위 없는 고양이일 것이다. (본문 20p)

 

맨 처음 사토루는 초등학교 동창인 고스케를 만나러 갔다. 사토루가 어린시절 길렀던, 얼굴에 얼룩이 여덟 팔자 모양이어서 이름이 하치였던 고양이와도 인연이 깊은 고스케를 통해 사토루의 초등학생 시절과 앞서 등장했던 하치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사토루의 아픔, 그리고 난폭했던 아버지로 인해 늘 주눅이 들어있는 고스케의 상처를 보게 된다. 하지만 나나는 입양되지 못 했고, 둘은 중학교 시절의 요시미네를 찾아간다. 부모님의 이혼, 그로 인해 버림받고 상처 받았던 요시미네, 수학여행 때 둘이 몰래 빠져나왔다가 혼난 추억 등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요시미네가 기르고 있는 새끼 고양이와 나나가 사이가 좋지 않아 이번에도 나나는 입양되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 부부로 함께 맨션을 운영하고 있는 스기와 치카코다. 사토루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스기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잘 통했던 치카코, 세 사람이 함께 나누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스기가 기르는 개 도라마루와 나나의 싸움으로 나나는 또 입양되지 못한다. 결국은 나나는 사토루와 함께하게 이모네 집에서 머물게 되는데, 나나를 입양보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사토루와 함께하고 싶은 나나의 마음과 사토루의 마음 탓이었다.

 

알고 있었어? 나는 사토루의 고양이가 되기 전부터 사토루를 꽤 마음에 들어했어. 사토루를 만나는 것이 즐거움이었어.

지금은 가장 큰 즐거움이야. 나나라는 이름을 얻고, 서토루와 함께 산 5년을 얻고, 나는 그 시절의 몇십 배, 몇백 배나 사토루를 좋아하니까.

나는 자유롭게 사토루를 만나러 올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해. (본문 296p)

 

나나의 새 룸메이트를 찾아 떠난 여행은 이렇게 사토루의 과거를 여행하는 시간이기도 하는데, 사토루 뿐만 아니라 동창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민들이 사토루로 인해 조금씩 풀려나가게 되고, 나나를 입양보낼 수 밖에 없는 사토루의 비밀도 조금씩 드러난다. 서로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가 된 나나와 사토루를 보면서 추운 날씨임에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독백처럼 이루어지는 나나의 이야기들이 유머있게 담겨져 있는데다, 사토루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 그리고 은색 왜건을 타고 친구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을 묘사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등의 요소들로 이 책은 굉장한 흡입력을 갖는다.

 

안녕, 바이 바이, 내일 또 봐. 여기서 꼭 만나.

나는 사토루의 손을 핥아준 다음 사토루의 무릎에서 뛰어내렸다. (본문 297p)

사토루는 그날 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걸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사토루는 내 가슴속에 있다. (본문 305p)

 

나나는 먼 훗날, 사토루와 함께 여행했던 날들을 회상한다. 사토루가 자랐던 마을과 무섭게 묵직한 소리를 내는 바다, 이쪽으로 막 다가설 것 같은 후지 산과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웃는 얼굴까지.

<<고양이 여행 리포트>>에서는 어느 한 줄도 허투루 넘길 문장이 없었고, 각각의 캐릭터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자상하고, 착하고, 긍정적인 사토루는 물론이요, 유머감각이 넘치는 나나는 기본이었고, 사토루의 각각의 친구들과 몇몇의 개와 고양이까지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개성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 얼마만인지. 이렇게 재미있으면서 감동까지 겸비한 책이 얼마만이지. 입가에는 미소가,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는 묘한 작품이었다.

사토루와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나에게도 소중한 친구와 가족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도 그들에게 사토루와 같은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두 주인공으로 인해 소중한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고양이 여행 리포트>>였다.

덧) 고양이가 기르고 싶다. 이건 다 나나탓이다.

 

 

우리는 언젠가 또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지평선 너머에서 만날 것이다. (본문 319p)

 

(사진출처: '고양이 여행 리포트'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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