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의 연인들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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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내 안의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깨어난다.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라는 놀라움과 두려움. 연애는 기묘한 심리가 난투극을 벌이는 장이라고 한다. 애초에 뜨겁게 달구었던 감정들은 서로 의심하기도 하고,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이 바로 곁에 있음에도 사랑 없는 사막에 내던져져 있는 듯 고독하다. 이러한 정서적 혼란이 생겨나면서, 누군가는 이별을 하고 누군가는 이 혼란을 이겨내고 사랑을 지속하기도 한다. 사랑은 이렇듯 비극적 국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적을 행하기도 하여 거듭되는 시련은 사랑을 더욱 깊고 진실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을 경험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가 아닌 내 모습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랑에 두렵기도 하다. 이 사랑의 모습이 정말 맞는 것인지 늘 의문을 갖기도 한다. 사랑에 관한 자신의 마음은 자신도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바로 그 시련이 무엇인지, 어떤 양상을 띠는지 보다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사랑의 시련에 관한 긴 보고서다. (본문 11p)

 

사랑에 관한 괴이한 심정들은 쉽게 공감을 살 수 없는 탓에, 저자는 당신처럼 기묘한 심정으로 괴로워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런 기묘한 심정은 있을 수 있을 수 있으니 스스로 미쳤다거나 부도덕하다고 여겨서 자괴감에 빠지지 말라는 위안으로, 연애할 때 느끼는 혼란, 폐부 깊숙이 느끼지만 정체가 묘안하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기묘한 심정들이 벌이는 미친 듯한 활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이 책은 그런 사랑과 소설을 주제로 한 에세이로, 소설 작품을 토대로 사랑에 관한 사설을 풀어놓고 있다.

 

저자는 <<서가의 연인들>>을 통해서 12편의 소설을 통해 사랑에 관한 11가지 이야기를 풀어냈다. 각 이야기는 소설 형식의 서두와 에세시 형식의 본문으로 구성하여 서두에는 연애 때문에 고민하는 혹은 고통받는 독자인 민, 경, 희, 연, 도 등 익명의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실제 연애담(저자의 창작한 소설)을 이야기하고, 그와 관련된 소설 속 사랑 이야기와 저자의 사설을 풀어 냈다. 그렇다면 저자는 소설을 통해 사랑을 풀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좋은 소설은 마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은 '마음의 백과사전'이라 했으며, 좋은 소설은 심층 심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기에 좋은 소설들이기에 기묘한 연애 심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고로, 창작으로 그려진 연애담과 소설을 통해 풀어난 이 책은 무수한, 밤하늘의 별만큼 많고 많은 사랑의 엄살꾼들, 사랑의 수난자들, 사랑의 고행자들을 위한 저자의 선물인 셈이다.

 

사랑은 매혹과 두려움과 분열과 혼란이기도 하지만, 그 궁극에는 고독을 나누는 천국이 놓여 있기에, 천국으로 가는 길 위에 놓은 시련에 기꺼이 참여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거니와 사랑은 시간과의 싸움임을 알리는 가블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동상이몽의 마법에 걸린 연인들이 각자 저만의 상상 속에서 상대의 마음을 제멋대로 재단하여 마음의 본색을 소통하기 쉽지 않음을 보여준 밀란 쿤데라의 [히차하이킹 놀이], 사랑을 시험하고픈 정열에 빠져드는, 즉 사랑만큼 과잉이나 잉여로 치닫기 쉬운 정열 탓에 사랑을 시험하는 행위로 잔인한 경지로 치닫게 되는 마음을 엿보게 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사랑과 다른 악마들], 죽음과 자살로 나름대로의 사랑이 완성되어 버린, 죽음으로써 자아의 벽도 허물게 되는 결말을 통해 바디우의 말 '사랑은 차이로 이뤄진 세계를 빠짐없이 경험해나가는 과정 자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미겔 데 우나무노의 [더도 덜도 아닌 딱 완전한 남자], 사랑의 고초는 상대의 모자람이나 부도덕이 아니라 내 심성구조의 견고함에서 유발되므로,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것은 타인의 억압이 아니라 내 몸뚱이를 묶는 내 손의 오랏줄임을 보여주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사랑에 빠진 사람이 실제로 빠져 잇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문과 부대 효과, 저만의 판타지 등등일 수 있으나 그 환각 속 슬픔과 기쁨은 가짜가 아니며 현실의 그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진지함기에 사랑에 빠진 자는 모두 돈 끼호떼임을 이야기하는 미겔 데 세르반떼스의 [돈 끼호떼], 그리고 윤대녕의 [달에서 나눈 얘기]에서는 결핍을 절박하게 느낄수록 고상하게 사랑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능력 즉 잠재적인 힘인 풍요를 향한 열정을 더욱 열렬히 불태울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가능한 답들은 꽤 있다. 말, 고독, 설렘, 성욕, 불안, 의심, 질투, 결핍 등. 하지만 내가 보기에 모범답안은 시간이다. 사랑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을 견디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에 값하지 못하다. (본문 107p)

 

주인공들의 사랑을 부각하고자 커플이 같은 침대에서 같은 꿈을 꾸는 일화를 보여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근원적인 욕망은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하며, 사랑은 가 닿을 수 없는 채로 남아 있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에서는 에로스적 정열은 때로는 애물단지지만, 애물단지인 이유는 그것이 보물단지이기 때문이기에 에로스적 정열로 수난을 겪는다면 그것이 힘겨워도 축복임을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과 윤영수의 [귀가도 3-아직은 밤]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불미스런 그림자, 곧 시련을 거느리고 있는 사랑지만, 그 불미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지속되어야 하며, 사랑의 기적은 바로 그 지속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명작소설, 특히 고전은 이 깊은 마음에 대한 풍요로운 지식을 담고 있다. 명작소설은 (아픈) 마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은 '마음의 백과사전'이다. (본문 298p)

좋은 소설은 밝은 지혜로써 인생의 비밀을 통찰한다. 인생의 비밀이란 생의 섭리, 삶의 이치, 인문학적 지식, 관념적 지식 등의 말로 변주될 수 있다. (본문 301p)

 

이처럼 인생의 섭리와 이치에 대한 풍요로운 지식을 담고 있는 좋은 소설 속에서 저자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관한 고독, 결핍, 욕망 등으로 인한 혼란과 시련에 대해 저자는 소설에 나타난 기묘한 연애심리를 통해 아픈 사랑을 치유하고자 했으며, 그를 통해 성장함으로써 사랑의 힘을 빌린 기적을 행하기를 바라고자 했다. 이에 이 책은 사랑의 비극적 양상에 주목하여 보다 잘 사랑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에 공감할 것이며, 누군가는 소설 속에서 낯익은 증상을 발견하고, 제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면서 무릎을 치며 자신의 복잡미묘했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도 명작소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백과사전'이 되어주리라.

 

생각보다 사랑은 견딜 수 없게 허술한 것이었지만 허술하기에 매력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사랑의 존재를 믿고 다시 사랑할 힘을 비축한다. 가끔은 사랑의 힘을 빌려 기적을 행하려고도 한다. (본문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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