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인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6
김경해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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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상황이 어른들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읽는내내 불편했던 책이다.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시설에 맡겨진 소년들의 일탈을 누구에게 탓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으려는 그들을 보면서 먼저 산 사람으로서 나는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그대들, 부모들은 아는가. 폭력 전이의 위대함을. 폭력은 그대로 몸 전체에, 뇌세포에까지 스며들어 언젠가 다시 삐져나오게 된다는 것을. 늙은 아비를 때리는 패륜아는 아마도 그 늙은 아비의 폭력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 도마뱀의 꼬리처럼 징그럽고 무서운 폭력의 전이. 나는 두렵기도 하다. 내 안을 점령하고 있는 그 폭력의 세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증식해서 거대하게 자라날까 봐. (본문 157p)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에서 시설로 오게 된 태양이는 공식적인 가출 기록만 93번을 가지고 있는 가출의 달인이다. 힘과 돈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어른들의 세계와 달리 무조건 힘으로만 서열이 정해지는 아이들의 서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태양이는 학교 울렁증으로 중학교는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최소한 고졸은 되야한다는 생각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결국은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태양이는 오타쿠라 불리는 아이의 19금 만화를 보는 일로 하루를 보내곤 하는데, 수요일마나 컴퓨터실에서 실시되는 인터넷 학습 시간에 이러닝을 로그인 했다가 나사랑이라는 낯선 여자 아이가 보낸 쪽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사랑이가 보낸 첨부파일에는 sun salutation 사진과 함께 댓글이 달려있었다.

 

330개의 유리판이 아드리아 해의 뜻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이 거대 유리판은 한낮의 태양열을 그대로 모아두었다가 밤이면 그 에너지로 불을 밝힌다고 해. 어둠이 찾아와도 한낮이 태양의 인사를 하는 거래. 참, 근사한 말이지.

지금, 너도 한낮의 태양을 모두 모았다가 한꺼번에 뿜어낼 그런 날들을 기다리는 건 아닌가 해서, 아니 그래야 하겠지. (본문 19p)

 

태양이는 사랑이에게 어떤 답장을 해야할지 고민하게 되고, 사랑이에게 보낼 멋진 글을 찾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는다. 태양이 살고 있는 시설에 사는 한결, 은결 형제, 형이라는 가장 큰 백을 가지고 있는 어린 도둑 재모, 넉살 좋은 룸메이트 지수, 단짝 영준, 머리가 좋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찬영, 덩키가 커도 밤마다 혼자 자는 건 무서워 밤새도록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물곰, 싸움 잘하는 강모, 야동 중독자 성주, 여자를 혐오하는 녀석까지 다양한 소년들이 살아간다. 그들이 이 곳에 오게 된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입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에게 상처입고 시설에 온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친구들사이에서도 결코 평범할 수 없었다. 상처주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에게 상처입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태양이는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은 시험 중에서 왜 부모가 되기 전에  치러야 하는 것은 없는 걸까. 왜 아무나 자식을 낳아놓고, 자식의 인생을 망쳐버리게 하는 걸까.

나는 어른이 되는 게 두렵기도 하다. 내가 어떤 어른이 될지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세상 바깥 저 어른들의 세계에 나가서 당당하게 잘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끊임없이 여기를 뛰쳐나가는 걸까. (본문 67,68p)

 

평범할 수 없는 자신과 시설의 아이들의 일탈을 보면서 태양은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만, 사랑이가 마음 속에서 자라면서 삶의 희망을 조금씩 만들어간다. 비록 선입견으로 친절을 베풀어도 타인은 좋지 않은 인상만 건네주곤 하지만, 태양은 사랑이가 살고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간다. 마치 태양의 인사를 보러가듯.

 

사랑이의 말대로 태양의 인사를 보러 가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 안의 어둠을 밝게 비칠 수 있는 태양의 에너지를 충전해 와야하지 않을까. 그러면 내 인생도 희망이라는 게 생기지 않을까. (본문 69p)

 

태양에게 아파트, 햄버거가 이상이었고, 친구들끼리 몰려 다니며 먹는 햄버거는 동경이었다. 그저 평범하길 바라는 아이들은 각자의 쪽팔리는 가족사를 가슴에 묻고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태양의 눈을 통해 아이들의 슬픈 일탈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런 아픈 가족사 속에서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지금 한낮의 태양을 모아두고 있는 중일 게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꺼번에 뿜어낼 그 날을 기다리고 있겠지.

 

저자는 <<태양의 인사>>를 통해 지금 자기가 너무 힘들고 아프다는 평범한 청소년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사는 아이들도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견딜 수 있을 힘이 조금은 생길 수 있을테니 말이다. 쪽팔리는 가족사와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도 없는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희망을 꿈꾼다.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평범한 청소년들에게 평범한 일상의 행복함을, 지금 내가 처한 환경에 대한 고마움을, 그리고 지금의 아픔이 결코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님을 일깨운다. 태양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이라면, 함께 희망을 꿈꾸고 위로하고 위안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현재 우리 청소년들은 모두가 한낮의 태양을 모아두는 중이기에 분명 그 열기를 한꺼번에 뿜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기억이 분명 미래를 위한 나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며, 지금의 아픔을 이겨낼 위로도 되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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