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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하품한 거니?"
내 질문에 그녀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품, 참 맛있게도 하네." (본문 248p)
2013년 7월부터 9월까지 네이버 웹소설을 통해 연재된 <<하품은 맛있다>>는 네이버 웹소설 미스터리 부문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던 작품으로 이번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는데, 독특한 책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타임슬립을 소재로 꿈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몸을 공유하게 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미스터리 소설로 굉장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 사실 도입부와 중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조금 미흡한 느낌을 주며, 결말로 치닫는 절정이 조금은 약한 느낌을 주지만 전반적으로 꽤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야기의 시작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집을 청소하는 대행업체의 일과에서 시작된다. 그들 중 특수청소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대학4학년의 이경이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번번히 커피숍이나 편의점의 사장 면접이라는 다분히 형식적인 문턱에서조차 좌절하곤 하는 이경은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지금, 학자금대출은 이미 삼천을 넘어섰기에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졸업과 동시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탓에 이 더러운 알바를 하게 되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빠와 지난달 간병인 교육을 수료하고 환자를 간병하면서 아빠를 돌보는 엄마이기에 이경은 제대로 된 직장을 얻을 때까진 일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죽은 여대생의 고가의 유품을 정리하던 이경은 수십 개의 스노볼 중 '하늘색 물, 미네소타'라는 글귀가 적힌 스노볼 한 개를 갖기로 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경은 수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 꿈은 이경이 꿈속에서 예쁘고 늘씬하며 부유한 다운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반면, 아침마다 엄마가 건네는 녹즙을 마시며 일어나는 어리광이 잔뜩 밴, 높고 가느다란 음성, 이십대 초반의 미인인 다운은 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되어 웬 아저씨들이랑 어딘가 몰려가서 억세게 청소하는 꿈을 꾼다.
그녀의 악몽은 본래 나의 일상이었다. 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청소부의 억척스러운 삶. 그녀가 악몽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면, 나 역시 이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나는 방금 전 말을 되씹었다. 잠원동, 행운아파트가 보이는 집.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녀는 대체 나의 어느 지점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본문 26p)
꿈에서 깨어난 이경은 남사장의 전화를 받고 일을 하러 가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꿈에서 다운이 말하던 잠원동이었다. 어젯밤 다운이 했던 말들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경은 과거의 다운을, 다운은 이경의 미래를 꿈을 통해 체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운은 불길하게 느껴지는 이경의 미래를 꿈꾸고 노트에 적기 시작했고, 이경은 그런 다운의 삶을 엿보면서 한때 연예기획사에서 일했다는 임 대리를 수상하게 여기게 되고, 스노볼의 주인이었던 여대생의 죽음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전직 경찰이었던 남사장 역시 임 대리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기게 되고, 유품으로 남겨졌던 다운의 노트와 이경의 꿈을 통해 범인을 쫓는다.
그런 와중에 이경은 초등학교 때 짝이었던 유나의 뜻하지 않는 전화를 받게 되고, 내림굿을 받았다는 유나는 오래 전 사신을 속이고 명줄을 바꾸었던 이경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충고한다.
그렇게 서로의 꿈을 엿보게 되면서 의식 뿐만 아니라 몸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이경은 다운의 꿈을 통해 자신의 미래가 바뀌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박이경, 궁금한 게 많지? 언제부터 네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오피스텔엔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 앞으로 넌 어떻게 될지. 기다려. 오늘이 다 지나가기 전에 가르쳐줄게." (본문 189p)
꿈을 통해 미래를 바꾸면서 이경의 목숨을 점점 조여오는 다운과 그런 다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경의 팽팽한 기싸움이 긴장감있게 진행된다. 오직 꿈속에서만 이뤄지는 전혀 다른 두 여자의 수상한 동거를 통해 보여지는 흥미로운 작품 <<하품은 맛있다>>에서는 인간의 악한 모습이 여과없이 그려져있다. 인간의 모습이 어디까지 악할 수 있는지를 보면서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의 엇갈린 진실과 나와 다른 누군가와의 엇갈린 운명이 타임슬립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한 팽팽한 긴장감 속에 독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하는 작품이었다. 덧붙히자면, 가난하고 못생긴 이경과 예쁘고 부유한 다운, 이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유나는 짧지만 굉장히 강렬한 캐릭터로 두 주인공 못지 않게 인상적인 인물이다.
혹여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살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가?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를 동경하고 부러워했던 기억들이 많다. 만약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닌 동경하던 그 인물로 살아간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두 주인공을 통해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다. 혹 이런 자문을 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물음의 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달콤하고 쓴 꿈의 이면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