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ㅣ 카르페디엠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윤정주 그림 / 양철북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매년 5월 15일이 되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딱 한 분 계신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졸업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몇 번 만나 뵐 수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시골로 내려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통 연락할 방법이 없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아껴주셨던 그 마음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직접 전한 적이 없었기에 스승의 날이면 늘 생각하고 기억하곤 한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큰 아이 학교 추천도서 목록에 있던 책이라 구입하기도 했지만,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책이라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는데, 책을 읽는내내 선생님이 떠올라 그 그리움이 더욱 진해졌다.
요즘 뉴스에서 보도되는 갖가지 사건사고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지식만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들의 행동과 인성이 아이들에게 참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들의 행동, 인성, 관심과 사랑은 아이들의 미래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유명인사나 명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인공 고다니 선생님으로 인해 점점 성장하고 달라지는 데쓰조처럼 말이다. 이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갖가지 사건사고도 있지만 사실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얼마 전에 읽은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우리 반 일용이>에서는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진심으로 대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이에 나는 나의 두 아이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승의 날이면 기억하고픈 선생님을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대학을 졸업한 지도 얼마 안 되었고, 결혼한 지 겨우 열흘밖에 되지 않은 고다니 후미 선생님은 데쓰조네 담임이다.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에 의해 두 쪽으로 찢어진 개구리의 모습을 보고 심하게 구역질을 하며 울음을 터뜨리게 되었고, 이 일이 있은 후 두 달쯤 지나서 개미를 관찰하는 학습 내용에 따라 관찰용 병을 집어들고 설명을 하다 별안간 데쓰조가 덤벼드는 일을 겪는다. 평범한 의사 집안에서 외동딸고 곱게 자란 고다니 선생님은 너무 울어서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퉁퉁 부었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는데, 이후 고다니 선생님이 데쓰조의 이런 행동들을 이해하게 된 것은 고통스러웠던 넉 달의 시간이 지나고 여름방학을 보낸 후 였다.
이 학교는 H공업지대 안에 있고 쓰레기 처리장과 이웃한 탓에 갖가지 피해를 입고 있는데, 이 쓰레기 처리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집 열네댓 채가 하모니카 모양으로 늘어서 있으며 데쓰조와 몇몇의 아이들이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학교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을 냄새난다느니 바보 병신이라느니 하며 사람 취급을 안하는데, 아다치 선생님은 이들이 보물을 쌓아 놓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들과 어울리곤 한다. 그런 아다치 선생님을 따라 고다니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가기 시작했으며, 학기초 데쓰조가 폭력적인 행동을 취한 이유에 대해 점차 알아가기 시작했다.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 데쓰조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 속상함으로 데쓰조에게 다가가는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가 기르는 파리로 데쓰조에게 글을 가르치고, 함께 파리를 관찰하고 실험하는 등 데쓰조가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끈다. 데쓰조의 삶은 어딘가 모르게 파리와 많이 닮아 있었다.
파리는 나면서부터 부모한테 버려진 채 평생 친구도 가족도 집도 없이 혼자 산다. 항상 벌, 거미, 참새 등의 위협을 받지만 남을 위협하는 일은 없고, 먹이라고는 인간 사회의 폐기물밖에 없다. 파리의 생태는 전혀 아름답지 않지만, 잔인하지 않으며 극히 조촐한, 말하자면 서민들이 사는 모습과 닮았다. (본문 92p)
고다니 선생님의 열정은 반에 이토 미나코라는 별난 아이가 전학 오면서 시련에 부딪친다. 장애아동인 미나코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고,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불편한 일이 생겨났다. 학부모들은 아이들 공부가 뒤처질까 걱정되어 학교를 찾아오지만 고다니 선생님은 미나코를 통해 아이들이 달라지고 있으며 배려하고 성장하리라는 것을 믿었다. 그런 고다니 선생님을 지지하는 학부모들도 있었으며, 아이들은 고다니 선생님의 바람처럼 미나코를 통해 함께하는 것을 배우고 있었고, 고다니 선생님 역시 미나코를 돕는 아이들을 통해 배우고 성숙해가고 있었다.
"우린 교육이 뭔지는 모르지만 자기 아이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처럼 입바른 소리만 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겠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세상이 이러니까, 학교에서는 더욱더 서로 돕는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서로 돕는 마음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처럼 들립니다만, 우리 장사치들은 그런 것으로 신용을 얻기도 하죠. 그럴 때면 사는 보람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본문 165,166p)
처리장 이전으로 아이들은 전학을 가게 되는데, 이는 덤프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를 가로질러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에 노출이 되는 것을 의미했으며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고다니 선생님이 좋다고 글을 써주며 마음을 열어 준 데쓰조와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이전과 아이들의 통학 문제로 등교 거부를 하게 된 처리장 아이들과 고다니, 아다치 선생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요즘 청소년들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인성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 교육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어, 국어, 수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다니 선생님과 처리장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 서로 돕는 법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법과 마음이다. 이것이 교육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생님들이 노력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기도 모두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목표로 삼는 선생님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조금 늦는 아이들의 발에 맞추어줄 수 있는 용기있는 선생님, 좋은 점수보다 좋은 인격을 갖출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선생님이야말로 현 우리 아이들에게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하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서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처리장 아이들과 같은 아이들을 편견없이 바라보는 선생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진심으로 함께할 수 있는 선생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에게는 "인간이 아름답게 존재하기 위해 저항"이 필요하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서는 참 많은 부분들을 생각하게 했다. 욕심많은 학부모들을 통해 나를 반추하고, 편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는 아이들을 통해 진심을 배워나가고,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노력하는 고다니 선생님을 통해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했다. 현 교육현실에 대한 비통함도, 편견으로 대하는 선생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타인보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마음만 길러지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가져본다.
"중요한 것은 가르치고 이끄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라는 표지글처럼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배우고 또 한번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