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탄생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이재익 작가의 이름은 책 보다는 영화 <원더풀 라디오>로 먼저 들어본 바 있는데, 놀랍게도 그가 쓴 작품은 모두 열일곱 편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아버지의 길>은 익히 알고 있는 작품이었는데, 이재익 작가의 작품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특히 이번 소설은 올봄 네이버 웹소설을 통해 연재했던 작품으로 작가는 창작의 의도보다는 오로지 읽는 쾌감만을 위해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흔히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본다고들 하는데, 사실 소재면에서는 딱히 참신함이 없었고 불륜, 욕망이라는 썩 유쾌하지 않은 소재였음에도 디테일하면서도 과감한 정사신이나 액션신 등이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스릴러물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범인을 추리해보는 재미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듯한' 소재에 대한 아쉬움은 충분히 달래줄 수 있었다.

 

20대의 사랑은 환상이다. 30대의 사랑은 바람기다. 환상도 깨지고 바람도 피워본 뒤 40대에 이르면 비로소 진짜 사랑을 알게 된다. (본문 10p)

 

서른여덟 살의 인기 아나운서 한석호는 아홉 살 딸 은혜와 세 살인 아들 준우 두 아이의 아빠이자 사랑스러운 아내 미선의 남편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십대의 막내 작가 은정의 호피스텔에서 깊이 공감했던 괴테의 글귀처럼 열렬히 사랑을 나누는 중이다.

한석호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인기 절정의 라디오프로그램 <해브어 나이스 데이>의 청취율은 동시간대 1등인 반면, 동료 아나운서이자 사촌 처남인 재우는 늘 석호와 비교당한다. 그런 석호는 재우를 늘 불쌍하게 여겼는데, 재우의 아내인 연이가 대학시절 자신에게 순정을 바치며 사랑한 여자였다는 사실 탓에 남모르게 그를 더 동정했다.

석호가 자신을 온몸과 영혼을 송두리째 내놓고 사랑했던 연이 대신에 연이와 같은 과, 같은 학번 친구인 미선과 공식 커플을 선언하게 된 것은 미선이 방송국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충격으로 연이는 학교를 휴학했는데, 이후 사촌 처남댁이라는 애매한 관계로 석호의 인생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먹이사슬의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말 테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출구 없이 꼬여버린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성공이란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을 부르는 술 같았다. 미선과의 결혼은 그가 쟁취할 것들의 사이즈를 단 번에 열 배, 수십 배 불려줄 기회였다. (본문 29p)

 

미선의 소개로 연이를 만난 재우는 연이에게 흠뻑 빠져 결혼하게 되었지만 연이와의 결혼은 순탄치 않았다. 우울증 약을 먹는 연이는 늘 위태로워보였다. 특히 재우와 연이와의 관계를 짐작하고 있는 듯한 재우의 어두움은 독자로 하여금 그를 의선상에 올려놓게 한다. 석호는 연이의 연락으로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고, 재우가 출장으로 집을 비운 사이에 연이와의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음을 그들을 모른 채 말이다.

 

결혼한지 십 년이 넘었지만 아내의 아버지는 장인어른이 아닌 언제나 회장님이었는데,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회장이 석호를 비서실장으로서 경영에 참여시키겠다는 뜻을 표했고, 이로인해 석호는 어린시절 식모였던 엄마가 작은 사장님이라는 작자에게 강제로 겁탈을 당한 뒤 합의금으로 집과 가게를 구했던 치욕스러운 기억으로부터, 어린 시절의 분노와 갈증을 모든 여자를 짓밟는 것으로 그리고 불륜으로 풀어냈던 증오심으로부터 새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교통사고를 위장하여 자신에게 다가온 조태웅이 보여준 자신의 정사신이 담긴 사진은 그가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그는 조태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조태웅은 점점 더 그의 숨통을 조이고, 결국 그는 조태웅의 지시에 따라 은정, 연이, 미선 중 한 명을 직접 죽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연이와의 재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 석호는 연이에게 모질게 대하고 결국 연이는 우울증과 충격으로 자살을 감행하게 되는데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석호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는 깨달았다. 그에게 단 한 명의 여자는 아내라고. 그녀뿐이라고. 만약 그에게 아내와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허락된다면. 허락만 된다면....(본문 329p)

 

석호는 가정을 지키겠다는 숭고함과 이 지옥에서 반드시 나가겠다는 집념으로 조태웅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남들처럼 아들을 키울 수 있다면 뭐든 참을 수 있다고 다짐했을 부모님의 마음을,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은 조태웅의 등장을 시작으로 스토리의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긴장감을 높였는데, 특히 한석호의 탁월한 심리묘사가 그 긴장감을 더욱 높였다. 조태웅과의 대립에서 보여주는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졌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조태웅의 배후 인물을 추리하는 일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모든 것을 끝났다고 생각할 때 즈음 독자의 허를 찌른 반전의 결말이 특히 마음에 든다.

 

<<복수의 탄생>>은 저자가 의도한 바대로 읽는 쾌감이 무엇인가를 알려준 작품이다. 성공을 위한 욕망으로 점점 몰락해가는 한석호가 진정한 사랑,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부모님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를 해소해가는 심리변화로 인한 긴장감의 고조에서 작가의 필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인간의 욕망에 반기를 든 복수 속에서 거대한 욕망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지를 통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파헤치는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의 크기를 가듬케 해본다. 이 소설은 디테일하면서도 파격적인 묘사, 넘치는 긴장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로움이 올여름 최고의 스릴러로 자리잡을 수 있을 듯 싶다.

 

- 이카루스라고 알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던 이카루스 말이야. 날개가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날아오르는 높이가 높아질수록 추락할 위험도 커지지. 적당한 바위 위에 안착해야 해. 그러나 어떤 이들은 멈추지 못하고 점점 더 높이 날 수밖에 없는 거야. 태양에 밀랍 날개가 녹을 위험을 무릅쓰고! 너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지. (본문 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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