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인이 들려주는 양지 이야기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13
이종란 지음 / 자음과모음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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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와 '어떻게'를 저절로 깨치게 도와주는 초등학생을 위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시리즈에 매료되어 읽기 시작한 후 어느 새 13번째 이야기를 읽어보게 되었다. 어렵게 느껴졌던 철학을 동화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덕분에 철학이 한결 가까워지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알찬 내용에 동화 형식으로 재미를 더한데다 [통합형 논술 활용노트]로 유익함을 더하여 탁월한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어 초등학생을 비롯 중고등학생, 성인까지 함께 읽어도 무방할 듯 싶다.

13번째 이야기는 <<왕수인이 들려주는 양지 이야기>>로 시골로 전학온 왕수인이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에서 왕수인의 양지를 알아가고 스스로 깨우쳐가면서 갈등을 풀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요즘 우리 사회는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사건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훈계한다는 이유로 벽돌로 머리를 맞아 끝내 사망한 할머니, 학교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선생님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 부모형제를 폭행하는 패륜사건 등등 실로 너무도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본디 착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하였고, 왕수인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양지)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왜 사람들은 다들 착하게 살지 않는걸까? 이 책을 통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는데, 그 해답을 읽어보면서 이 책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꼭 읽어봐야 할 작품임을 느끼게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와 단둘이 살던 수인이는 할머니랑 같이 살기 위해 시골로 전학을 오게 된다. 수인이가 다니게 된 새싹초등학교는 수인이가 전학오면서 전교생이 다섯 명이 되었다. 콩나물, 감자, 된장, 민들레라 불리는 네 명의 아이들은 수인이를 왕여시라 부르며 놀렸을 뿐만 아니라, 양명학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는 있지도 않은 숙제를 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컴퓨터도 없고, 학원 선생님한테도 물어볼 수 없는 탓에 숙제 걱정에 울음을 터트린 수인이에게 할머니는 옆집에 사는 철학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는 오빠를 소개한다. 그렇게 수인이는 유학을 완성한 주희의 주자학의 공부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주자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양명학을 만든 자신의 이름과 같은 '왕지인'에 대해 알게 된다. 주자는 온갖 사물에 태극이란 진리가 있다고 했지만, 왕수인은 사물을 일일이 공부해서는 진리를 찾을 수 없었으며 진리란 오직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보았다.

수인이는 친구들의 장난에 양명학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친구들의 못된 장난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수인이는 아빠가 내려오신다는 전화에 아침부터 설레였는데, 아빠는 뜻밖에도 결혼하고 싶다는 아줌마와 함께 내려왔고 영원히 엄마를 잊지 말자는 약속을 깨뜨린 아빠와 아줌마가 미웠다. 수인이는 옆집 오빠에게 왕수인 역시 새엄마와 함께 살았다는 일화를 전해들었지만, 화가 풀리지 않았고 늦은 저녁이었지만 집에 가고 싶지 않았던 수인이는 우연히 감자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감자를 구워먹다 잠이 든 탓에 동네가 발칵 뒤집어지게 되고 수인이와 감자는 선생님으로부터 양지의 이치를 깨달은 왕수인이 말하는 '양지'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벌을 받게 된다. 결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되는 수인이와 양지는 옆집 오빠가 알려주었던 내용들을 되짚어가면서 양지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한편 수인이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함께 지내게 된 아줌마가 마음에 들지 않은 수인이는 아줌마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옆집 오빠의 도움으로 양지가 무엇인지 알게 된 수인이와 감자는 모든 사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양지를 갖고 태어나는데 왜 다들 착하게 살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양지란 깨알보다 더 작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야. 그 가능성을 무럭무럭 키워야 한단다. 그냥 내버려 두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어." (본문 109p)

그렇게 수인이는 무사히 양지에 대한 발표를 끝낼 수 있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500년 전에 이미 왕수인이 어린이 교육에 대해 강조했던 내용이다. 내용이 좀 길지만 기억하고픈 내용이라 적어본다.

 

근래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는 오직 책 읽는 과정을 날마다 감독하여 야단치고 검사만 하지 예의로 인도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총명해져야 한다고 강조만 하지, 선으로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회초리 들어 때리는 것이 마치 죄수를 다루는 듯하니, 아이들이 학교 건물을 감옥 보듯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등교하지 않는다. 또한 가르치는 스승을 원수 대하듯 하여 보지 않으려고 한다. 몰래 틈을 엿보아 장난을 치고, 안 그런 척 꾸미고 속여 제멋대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하여 가벼움과 비열함이 날마다 생겨나니, 악을 몰아내고 선을 구하고자 하나 어찌 가능하겠는가? (본문 121p)

 

500년 전 왕수인이 어린이 교육에 대해 생각했던 내용이 현 교육과 맞물려진다. 양지를 갖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착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양지를 잘 기르기 위한 교육이 아닌 총명하기 위한 교육만을 추구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양지에 대해 알아가면서 수인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 자신이 괴롭힌 아줌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선생님의 결혼 축하 공연을 위한 악기 연습을 통해 왕수인이 말한 '지행합일(知行合一)'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마음이 곧 행동의 시작임을 깨닫고 연습에 충실하게 된다.

 

아는 것은 행동의 중요한 방향이다. 행동은 아는 것의 공부이다. 아는 것은 행동의 시작이고, 행동은 아는 것의 완성이다. 아는 것을 말하면 행동이 이미 그 속에 들어 있고, 행동을 이야기 하면 아는 것이 그 속에 자연히 들어 있다. (본문 150p)

겉으로 드러난 행동도 나쁘지만 나쁜 상상을 한 것도 옳지 않았기에 착하면 살려면 처음부터 마음을 바로 먹어야 하며, 진리인 나의 마음이 잘 발휘되려면 마음속에 숨어 있는 나쁜 욕심을 완전히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인이의 좌충우돌 시골전학 소동은 왕지인의 양지를 통해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물론 아빠의 재혼에 대한 갈등도 자신을 사랑하는 아줌마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된다.

 

철학이 우리 생활과 멀리 있는 듯 보였는데, 수인이의 생활과 맞물려 읽게 된 <<왕수인이 들려주는 양지 이야기>>는 철학은 곧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학문이며, 우리 생활과 밀접한 학문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동화로 풀어낸 덕분에 철학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깰 수 있었으며, 양명학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 시리즈의 강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어린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구성이 아이들에게 철학적 사고를 기르는데 도움을 주고 있어 더욱 유익한 작품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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