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엄마 1 - 영주 이야기, 개정증보판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난 29년 동안 엄마의 딸이었고, 16년째 딸의 엄마이다. 딸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한 여자의 숙명은 참으로 묘하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딸, 그런 딸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그 딸의 딸, 반복되는 애증의 관계의 연속이. 난 이제 엄마의 딸이 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29년의 그 모습 그대로 엄마의 딸로서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이 엄마의 기억 속에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영주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였고 가슴 먹먹해지는 슬픔 속에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SBS-TV 주말특별기획으로 방영된 바 있다고 하지만, 이 작품을 알게 된 것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엄마'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늘 눈물을 쏟아낸다. 엄마는 딸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어하지만, 딸은 엄마처럼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마음이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한다. 나를 닮은 딸에게 서운함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를 느낀다. 엄마와 딸, 그 끝나지 않는 관계 속에서 '엄마'는 늘 눈물이 된다.

 

"김선영 환자 동생분 아닌가요?" (본문 15p)

 

환자분이 완치되었다는 정신병원 간호사의 전화에 영주는 그녀가 완치되었을 경우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미친년''미친 바보''바보'라는 수식어를 떼어낼 수 없었던 그녀였기에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일주일 동안의 고민끝에 영주는 그녀 '김선영'이 입원하고 있던 정신병원을 찾는다. 열다섯이 많은 나이의 그녀는 복잡하고 거짓된 가족의 중심이었고, '언니'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도, '엄마'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도 없었기에 3인칭 '그녀'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바로 위 언니라 여겼던 그녀보다 열다섯 살 어린 늦둥이였던 영주는 가족의 미움을 독차지 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외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면 구박을 받았다. '엄마'라고 부르면 미간을 찌푸렸던 엄마였던 외할머니의 구박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작은 어머니라 부르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때문이었다. 엄마인 줄 알았던 사람이 외할머니가 되었고, 언니인 줄 알았던 사람이 엄마가 되어버린 순간을 안 순간 영주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언니는 강간당해 나를 놓고는 미쳐버린 바보엄마일 뿐이었다. 매 순간 나쁜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녀가 있었다. 그녀로 인해 영주에게는 늘 나쁜 일이 일어났지만, 되려 여주는 늘 나쁜 사람이 되어야했다. 그렇기에 그녀를 더욱 미워했고, 그녀에게 더욱 짜증냈지만 그녀는 늘 영주의 편을 들어주고 영주를 감싸안을 뿐이었다.

 

바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와 관련된 일에서는 다른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민첩한 행동을 하곤 했다. (본문 50p)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에 결혼을 하고 닻별이를 낳았지만, 그녀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늘 무릎 꿇고 비는 것은 영주였고, 10살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한 천재였던 닻별이를 가르치기 위해 대학원을 포기하고 학원 강사를 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영주였다. 그러나 닻별이의 우울증, 자살 시도 그리고 남편의 외도는 그녀를 평범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남편과의 별거, 우울증 치료를 받는 닻별이와의 쉽지 않는 관계 등으로 힘든 영주의 삶에 그녀가 다시 찾아 오게 된 것이다. 닻별이에게 이모로 소개한 그녀와의 동침이 시작되었다. 그녀와 함께 살게 되면서 닻별이에게도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와 함께 웃고, 그녀와 함께 시장을 보는 닻별이를 보며 영주는 희망을 갖게 된다. 반면 우울증 치료를 받는 닻별이는 자신에게 맹목적인 엄마의 마음이 부담스럽다. 그것을 알게 된 영주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오버랩된다.

 

"엄마는 슬퍼하는 법도 노여워하는 법도 없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해도.....그렇게 맹목적인 감정이 두려워요. 솔직히 엄마가 이해되지 않아요. 나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 같아요. 바보같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그냥 받아들여버려요. 바보처럼." (본문 91,92p)

 

난 절대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안 될 거야.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난 절대 우리 딸에게 그런 소리는 안 들을 거야.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도 다른 엄마들과 똑같았다. 그녀가 그랬듯이...(본문 98p)

 

영주는 그녀가 자신 곁에 있을 때만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쁜 일만 일어날 때도 그녀는 자신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어 준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그녀만이 곁에 남아 있었주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렇게 달이자 엄마인 영주, 엄마인 그녀와 딸인 닻별이의 관계에 조금씩 변화가 생겨난다.

이제 영주에게 '그녀'는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남편의 재혼으로 다시 자살을 감행한 닻별이를 위해 영주는 그동안 나서서 한 번도 아이 편이 되어준 적이 없었던 시누이 앞에서 기꺼이 닻별이의 편이 되어준다. 엄마가 그랬듯이...

 

하지만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면 기다리던 내리막은 없고 더 가파른 오르막이 자신을 기다렸듯이 이번에도 영주는 자신이 심부전증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고, 심장이식밖에는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된다. 이제 영주는 닻별이를 아버지에게도, 엄마는 엄마를 사랑하는 민 원장에게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닻별이와 엄마에게는 자신의 병을 비밀로 한 채 영주는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자격 없는 사람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횡포일 뿐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이 지겹고 버겁다고 느꼈던 자신의 지난 날을 후회하며 영주는 그렇게 엄마에게서 멀어지려 하지만, 엄마가 뇌종양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엄마는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준비하던 영주 앞에 기적처럼 심장기증자가 나타나고 무사히 수술을 끝내지만 영주는 심장기증자가 엄마임을 알고 더욱 슬퍼한다.

 

"...아파서 기절했다가 깨자마자 뇌사가 될 수도 있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구나. 네게 심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좋아서 웃더라. 고통을 참느라 얼마나 이를 악물었으면 치아에 금이 가서 바스러지는 바람에 어금니를 다 뽑아야 했어. 그래도 웃더라. 고통이 크다는 건 빨리 죽을 수 있다는 뜻이냐고 물으면서 웃더라.....극심한 고통에 머리를 벽에 박으면서도 모르핀 주사는 안 맞겠다고 고집을 부렸어. 그 이유가 뭔지 아니? 혹시 심장에 나쁘면 어떻게 하냐고, 너한테 조금이라도 건강한 심장을 주고 싶다고......그러니 그 사랑을 버리지 마라, 네 가슴속에 들어 있는 네 어머니의 사랑을." (본문 368,369p)

 

영주는 다음 생이 있다면 그 모습 그대로 내 엄마로 다시 태어나 달라고 한다. 그때는 자랑스럽게 내 엄마라고 말하겠다고. 책을 읽을 때도 하염없이 울었다. 서평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엄마의 사랑이 너무도 크고 벅차 눈물이 흐른다.

바보 엄마였던 선영의 삶은 우리의 모든 엄마들의 삶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바보 엄마인 선영이가 바로 내 엄마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슬프고 아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엄마와 딸, 그 애증의 관계가 사랑과 미움이 아닌 온전한 사랑으로 맺어지는 것을 보았다. 애증의 관계의 사슬 속에서 엄마와 딸이 비로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한없이 기쁘고 슬펐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다 바보엄마였다. 자신은 죽어가지만 바로 옆에서 밝게 빛날 자식이 있어서 행복해하는 사람, 바로 '엄마'라는 이름이었다. 슬프고 애달픈 선영의 삶은 세상의 모든 딸에게 보여준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엄마가...........보고싶다.

 

"신성?"

"새로 생겨난 별이라고."

"별도 새로 생겨나?"

"그럼.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그래. 보통 새로 생겨나는 별들은 쌍성인 경우가 많아. 모성, 그러니까 엄마별을 갉아먹으면서 태어나는 거지. 엄마별의 먼지, 바위, 에너지들을 전부 끌어당겨서 자기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

"그럼 엄마별은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에너지를 다 잃고 죽어버리는 거지. 차갑게 식어가면서. 더 이상 빛날 수 없으니 죽은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결국 저 거대한 별조차도 그렇게 죽어간다는 게 참 허무하지 않아? 그것도 자식한테 먹혀서."

"그래도 엄마별은 행복할 거야. 비록 자신은 죽어가지만 바로 옆에서 밝게 빛날 자식이 있어서 행복할 거야." (본문 164,1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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