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따라잡기 - 제10회 푸른문학상 동화집 미래의 고전 32
강은령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하루를 돌아보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빨리빨리'가 아닐까 싶다. 출근 준비와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하면서, 점심시간 식당에서, 업무를 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퇴근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도 '빨리빨리'라는 말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여유'라는 말은 사치처럼 들릴 뿐,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쫓아가다보니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러간다.

어른들은 자신의 욕망과 선택에 따라 그럭저럭 세상의 속도에 맞추며 살아가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른들에게 이리저리 내몰리고 쫓겨 다니는 아이들에게 (본문 4p)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누구보다 빨리 말을 하고, 누구보다 빨리 글을 깨우치고, 누구보다 빨리 영어를 배우고, 누구보다 빨리 달려야하는 경쟁 사회 속에서 아이들에게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 놀이터의 회전그네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실정이니 그들에게 "더 잘 할 수 있다"라는 격려보다는 "조금 느려도 괜찮다"라는 말이 더 절실하리라.

 

<<달팽이 따라잡기>>는 아동청소년 문학의 미래를 열어 갈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마련한 '제10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5편은 모은 동화책으로 느리지만 조금 천천히 걷는 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표제작인 [달팽이 따라잡기]는 늘 '빨리빨리'를 외치는 엄마에 의해 허겁지겁 간식을 먹고 학원으로 향하던 형진이가 놀이터입구에서 달팽이 승우를 만나 함께 숲 속에 가게 되면서 느끼는 갖가지 이야기를 담아냈다.

승우와 함께 숲 속에서 하늘을 보면서 시간이 아주 느릿느릿 흘러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느긋해짐을 느끼게 되는 한편, 늘 달팽이 느림보라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승우의 새로운 부분을 알게 되고, 승우보다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개울 아래쪽에 있는 소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종종걸음을 치는 엄마가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작품에서는 '빨리빨리'를 외치는 엄마와 이리저리 내몰리는 아들 형진이를 통해 현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조금은 느긋한 마음을 가져봐야겠다.

 

저렇게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또 얼마 만인가. 이곳에서는 시간이 아주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 같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느긋해졌다. (본문 15p)

 

[보름이의 이사]는 어린이의 동심을 엿볼 수 있는 귀여운 작품이다. 부산, 중국으로 친척을 찾아간 친구들의 자랑에 보름이는 할 말이 없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외삼촌과 이모까지 모두 같은 동네에 사는 탓이다. 보름이는 엄마에게 이사를 하자고 조르다가 급기야 홀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학교가 끝나고 홀로 이사를 하던 보름이는 가는 곳마다 친척들을 만나게 되는 탓에 결국 이사 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가족이 함께 모여사는 보름이네 가족이 부럽기만한 내 마음처럼 보름이도 가족이 함께 모여사는 행복을 느꼈을 듯 싶다.

[이야기 장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라는 옛 이야기를 모티브로 창작된 이야기인 듯 싶다. 친구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재담이가 장롱 속에서 이야기 연습을 하던 중에 떠돌이 귀신을 만나게 되고, 결국 귀신의 도움으로 친구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는 유쾌한 이야기다. 있는 그대로, 진솔한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음을 알게 된 듯 싶다.

 

[여보세요! 아빠?]는 5편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며, 가장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아빠에게 전화를 건 미지는 웃을 때 아빠처럼 눈이 안 보여 좋아했던 담임 선생님이 싫어지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 전화 통화내용을 통해 민지의 아빠가 돌아가셨으며,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본 날 '아빠는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것이며 아빠 생각이 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다는 아빠의 말에 따라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 애틋함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마지막 편인 [고등어와 해결사]는 엄마가 집을 나간 뒤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된 기표가 냄새로 별명을 지어 주는 발달 장애 지훈이와의 우정을 그린 예쁜 동화로 이 작품 역시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이 작품은 후각이 발달한 지훈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눈길을 끄는데, [달팽이 따라잡기]처럼 조금 느리다는 것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각각의 작품에는 어린이들의 내면이 잘 그려져 있어 그들의 동심을 엿볼 수 있었다. 늘 빨리빨리를 외치는 엄마로 인해 허덕이던 아이들의 모습과 조금의 여유도 없이 빠르게 달리기만 했던 나의 모습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어쩌면 이 말은 아이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늘 다독여주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도, 변화하는 날씨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무조건 바삐 달리다보면 행복이 오는 소리마저 듣지 못할테니...

오늘 아침 출근길, 느리게 걷는 아이의 손을 잡아당기며 걸었다. 엄마의 빠른 보폭에 맞추어 뛸 수 밖에 없었던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자꾸만 되뇌어 보련다.

 

...아이들에게 "조금 느려도 괜찮아. 잠시 멈춰도 돼. 그래, 쉬었다 가렴!"이라고 말해 주는 이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본문 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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