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요리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권남희 외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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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일곱 가지의 음식과 일곱 가지의 사연들이 수록된 <따뜻함을 드세요>를 통해서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찬 바람이 부는 날 친구랑 함께 어묵을 먹으며 까르르 웃던 날이 떠올랐고, 어린시절 퇴근하는 아빠 손에 매일같이 들려져있는 소보로 빵의 맛이 떠올랐고, 엄마와 함께 만두피를 빚어 맛있게 먹던 만두국도 떠올라 콧끝이 찡해졌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추억을 채워주는 일상 속에 음식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늘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게 <따뜻함을 드세요>는 추운 겨울 날의 어묵처럼 따뜻하게 다가왔기에,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23까지 음식 이야기를 담은 <<오늘의 요리>>에 선뜻 손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사랑, 우정, 일, 용서, 화해 등 우리 일상의 이야기가 음식을 통해 맛깔스럽게 수록되어 있다.

도내 맨션인데다 주민들의 연령이나 직업도 가지가색이어서 복도에서 만나도 인사를 하는 일이 거의 없는 맨션에서 고참인 사오리와 옆집 남자. 사오리는 대청소 중에 옆집 남자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친구 사와가 만들어 준 생선살 계란말이로 인연을 만들어가려는 예쁜 이야기 [생선살 달걀말이]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찾은 시골의 부모님 집에서 일찍 일어난 슈헤이는 젊은 시절 일종의 반발심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부모님와 달리 도쿄에 뿌리를 내리게 된 과정을 곱씹어 보며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 떡국 준비를 시작한다. [이세식 떡국] 이야기에는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만, 어머님만의 방식으로 끓인 떡국 맛만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카네 선배가 나이에 맞춰 준 스물일곱 알의 콩으로 아카네 선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떠올려보는 마사토의 이야기 [복은 콩], 남자 친구와 헤어진 치즈루가 회사 일에 지쳐 돌아온 배고픈 동생에게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배운 얼렁둥땅 카르보나라를 만들어주며 서로 위로받고 위안을 받는 이야기 [얼렁뚱땅 까르보나라], 반은 객기로 반은 각오한 일로 직장을 잃게 되면서 생활이 힘들어진 가즈토시가 일로 바쁜 아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본 후 도시락을 만들어 함께 벚꽃놀이를 가게 되는 [벚꽃놀이 도시락]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그려졌다.

 

카즈토시는 그날 밤 뭔가를 깨달았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기척을 느끼면서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자신은 이미 모든 것을 얻은 게 아닐까. (본문 84p)

 

사키가 옆자리 남학생 쓰구미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고 우동을 통해 사랑이 시작됨을 알리는 예쁘고 풋풋한 이야기 [우동], 가정살림을 맡고 있는 코스케는 호랑이콩과 팥앙금을 두고 고민한다. 또래보다 성장이 느린 사랑스러운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호랑이콩을 사온 코스케는 콩조림을 만든다. 맛있게 먹는 딸을 보며 행복해하고, 힘들어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호랑이콩 속에 담뿍 담아낸 [콩조림], 결혼한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 후미코는 남편과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스케모노를 담는 것도 좋은 시기와 나쁜 시기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듯이 부부의 관계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을 하는 후미코의 이야기 [오이 쓰케모노], 특히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포토퍼]에는 <<오늘의 요리>>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같이 먹어볼까?"

"먹읍시다."

아아,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내일도, 모레도 두렵지 않았다. 이 순간이 있다면. (본문 159p)

 

[오코노모야키]에서도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일깨우고 싶은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달걀, 밀가루, 채 선 양배추와 파, 물, 그리고 튀김가루와 과립 조미료 그리고 그 위에 늘어놓은 돼지고기가 프라이팬에서 하나가 되듯이 가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방은 서로의 소유물이 섞여 있다. 하지만 언젠가 하나가 될 것이다.

오코노모야키처럼. (본문 196p)

 

[경단]에서도 [오코노모야키]와 같은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열심히 치대다 보면 부드러워지는 반죽처럼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러하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 만들었는데 경단 만들기 꽤 재미있더라. 밀가루는 물을 넣으면 질척해지는데 찹쌀가루는 바슬바슬해져. 하지만 그걸 열심히 치대다 보니 부드러워지더라고."

마치 가족........아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 같지 않은가. 계속 치대는 동안 부드러워지는 것. (본문 260p)

 

 

<<오늘의 요리>>에 수록된 23가지 이야기에는 마치 요리책처럼 음식의 재료를 소개하고, 요리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된다. 그 속에 기록되는 이야기에는 사람과 사람이 있고, 사랑과 이별, 용서와 화해 그리고 위로와 위안이 있었다. 맛깔스러운 음식 이야기는 군침을 돌게 하고, 따뜻한 이야기는 마음을 채워 풍요롭게 했으며, 23가지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한 템포 쉬게 하는 여유로움을 주었다. 이들의 이야기처럼 가족이 함께 웃으며 먹는 식사 시간이 있다면 두려울 일은 없으리라. 오늘 저녁은 왠지 더 특별해질 거 같다.

 

"아, 맛있는 냄새가 나는걸." (본문 160p)

 

맛있는 냄새가,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오늘의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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