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비타민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8
양호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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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00여 건의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한 후 이 책을 3분의 1쯤 썼을 때, 대구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자살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이대로라면 과연 학교가 정말 필요한 곳인지 깊은 회의마저 들었다. (작가의 말 中)

 

대구 중학생의 자살사건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학교폭력이 청소년보호법이라는 미명하에 가해자들에게는 이익을, 피해자에게는 더 큰 피해를 입히면서 묵인되어왔다. 가해자는 오히려 더 떳떳하게 학교를 다니고, 피해자는 자퇴나 전학을 통해 오히려 도망쳐야하는 뼈아픈 현실에서 청소년보호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 뿐인가.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입는 학생들은 학교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학교의 묵인으로 인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다, 사건이 표면화가 되면 학교는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악마를 키우는 비타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책을 읽는내내 화나고, 슬프고, 원통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저자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단란하고 행복하던 한 가정이 처참히 붕괴되는 과정을 실제 사건에 입각해서 집필하였다고 하는데,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이럴진데 피해자인 그들의 마음은 오죽하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어느 누구하나의 도움도 받지 못했을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듯 했다.

사랑하는 자녀가 학교폭력으로 힘들다면 어느 부모가 화나지 않을까? 간혹 뉴스에는 왕따를 당한 자녀를 대신해 부모가 가해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이 보도되곤 한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나는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 아이가 고통받고 있다면 어느 부모가 화나지 않을까.

2주 전부터 이태균이 다니는 길을 파악해두었기에 미행을 하고 납치를 감행하기까지, 성혁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혁은 친구 현묵의 도움으로 태균을 납치하는데 성공하여 이미 폐교된 상혁이 다녔던 초등학교에 오게 된다. 그곳은 오래 전 아내와 아들 윤빈이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었다.

상혁은 태균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게 하겠노라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방법을 선택했지만, 현묵은 상혁 몰래 태균을 풀어주며 어설픈 용서를 통해 어설픈 사죄를 받아내어 돌려보낸다.

그런 현묵의 행동에 화가 나고, 더 이상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상혁은 폐교에서 망연자실하며 지낸다.

 

한편 죽음의 낭떠러지에서 살아난 태균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잘못을 쉽게 용서 받았던 일들을 되새기며, 세상은 정말로 웃기는 곳이며, 재밌는 곳이라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절망을 하거나 겁을 먹지 않을 것이며 마음이 내키는 대로 멋지고 화끈하게 살아보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다짐까지 하게 된다.

여전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돈과 옷, 신발 등을 빼앗고, 폭력과 성폭행을 일삼으면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태균은 상혁에게 복수의 칼을 갈면서 민서홍을 괴롭힌다.

 

"아무튼 이 얘기가 학교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애들 입단속 철저히 시켜요. 우리 학교 이미지 실추되면 큰일이에요." (본문 135p)

눈에서 핏물이 흐르는 원통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죽었는데도 그저 눈물만 흘리고 한숨만 짓는 게 고작이었다. (본문 137p)

 

상혁은 진드기처럼 달아붙어 영 떨어지지 않는 기억이 공포스러웠다. 아들의 교육을 위해 도시로 이사를 한 상혁은 아내와 함께 음식점을 하면서 윤빈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 아들 윤빈은 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아내마저 정신요양원에 입원하게 된다. 유서는 없었으나 핸드폰과 윤빈의 메모를 통해서 학교폭력에 의해 자살이라는 증거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경찰서에서는 윤빈이 정신력이 나약했기 때문에 친구들의 장난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변명으로 오히려 상혁이네 가족을 회피하려 든다. 친구, 선생님 하나 찾아오지 않았던 쓸쓸했던 장례식.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인냥 내몰리는 상혁이 아내를 위해 취했던 마지막 방법조차 사라지고 상혁은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죄책감에 시달리고 끝내 아내마저 잃게 되었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가족과 함께 낚시를 했던 저수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엄마는 별다른 거 없고, 우리 윤빈이랑 아빠랑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게 소원이야."

"아빠! 그 집, 내가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지어줄게. 엄마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이왕이면 크게 지어서 다 함께 살지 뭐!" (본문 72p)

'아무도 없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엄마 아빠도, 선생님도, 경찰도, 대통령도,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것이다.' (본문 191p)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단란했던 가족, 별똥별을 보면서 서로를 위해 소원을 빌며 행복감에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던 그들에게 닥친 불행의 시작은 학교폭력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너무도 쉽게 용서되고, 잘못이 잘못이 아닌게 되는 것을 보고 자란 태균의 폭력은 더이상의 죄책감이란 없었다. 윤빈의 죽음에서 조차도. 부모도 학교도 법 조차도 모두 태균의 편이었다. 그리고 결국 학교폭력으로 극심한 시달림을 받던 민서홍, 그 역시도 마지막 선택을 하고야 만다.

 

<<악마의 비타민>>는 학교폭력으로 단란했던 한 가정이 처참히 붕괴되어가는 모습을 통해서 현 우리의 모습을 되짚어본다. 그들을 향한 어설픈 용서와 기대는 죄책감 조차 느끼지 못하는 악마로 키우고 있었고, 그들의 폭력에 대한 무관심과 방관은 그들의 폭력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들이 점점 그렇게 악마가 되어가고 있음에도 학교는, 세상은 모르는 척, 못 본 척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른들 사회에서 보여주는 부조리는 그들에게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잘못된 잣대만을 가르치고 있기에 우리 사회는 더욱 암담하고 절망적뿐이다.

 

"...세상은 이 힘있는 놈이 쥐고 흔들게 되어 있다고 그러더라. 힘만 있으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그냥 무사통과래."

"우리나라는 그래서 좋은 나라라는 거야. 예전에 대기업 총수 그 누구야? 자기 자식이 술집에서 싸우다가 좀 맞았다가 직접 룸싸롱을 찾아가서 주먹으로 개아작을 낸 사람. 그 사람도 경찰 조사 좀 받고 금방 풀려났대. 그리고 재벌 2세 그 누구야? 작년인가? 야구방망이로 트럭 운전수를 수십 대 후려패고 한 대에 백만 원씩 계산해서 수표 집어 던져주 사람 있었잖아?" (본문 209p)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무관심, 어설프고 섣부른 용서

이것이 악마를 키우는 비타민이라는 것을.....(표지 中)

 

이 글귀가 우리 사회에 희망을 줄 수 있는 해답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천만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묵을 지키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는 얄팍한 생각이 나를 떠날 줄 모른다. 그것이 책을 읽는내내 나를 더욱 괴롭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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