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된 건 <원더보이>를 통해서였다. 1천 65억 개의 하나인 개개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라 아주 특별하다는 점을 담아냈던 작품은 내게는 조금 어렵게 다가왔기에 사실 처음 이 작품을 읽기위해서는 나름의 각오(?)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와는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작가였는데, 이 작품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통해서 나는 작가와 조금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50년이 넘도록 해외 입양국이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자아를 찾기 위해 고국을 찾는 입양아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오래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던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치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 자신의 친모를 찾아 한국의 진남을 찾은 또 한 명의 입양아가 있다. '동백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밀라가 바로 그녀다.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일 수 밖에 없는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주던 양모인 앤의 죽음과 양부의 새로운 출발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온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여섯개 상자로 인해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시인인 남자친구 유이치는 여섯 개의 상자로 남은 유년을 글로 써보라고 권유하게 되고, 그녀가 쓴 글은『너무나 사소한 기억들: 여섯 상자 분량의 입양된 삶』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 좀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1988년경)' 이라는 부제와 함께 친모와 자신이 찍힌 사진을 빈 공간으로 기록된 부분에 주목한 에이전트는 빈 공간을 채우는 논픽션을 제안한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생후 6개월에 입양되기 전의 진짜 집으로, 엄마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유이치와 함께 고향 진남에 도착한 이들이 마주한 것은 '미운 사위 매생이국'이라는 속담처럼 의뭉스럽고 속이 안 보이는 블랙박스 같은 진남의 사람들이었다. 진남여고에 다녔다는 엄마의 흔적을 쫓아 알게 된 것은 동백꽃 앞에서 찍었던 오래된 사진 속의 동백꽃 뿐이었다. 진남여고의 교장 신혜숙에게 어떤 실마리도 얻지 못했던 카밀라는 자신을 찾아온 김미옥에게 카밀라가 태어난 그다음해에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엄마의 이름이 정지은이라는 사실도. 결국 신혜숙은 카밀라에게 고통일 수 있을 진실을 들려주게 된다. 자신은 카밀라가 아닌 정지은이 태어날 자식에게 붙이고 싶었던 이름 '정희재'이며, 엄마는 정지은, 아빠는 정재성이며 두 사람이 남매였다는 사실은 진실 앞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았던 그녀를 절망에 빠트린다.

 

진실을 알게 된 카밀라, 아니 이제 희재라고 불러야겠다. 1부가 카밀라의 시점에서 기록되었다면 2부는 지은이 시점에서 기록된다. 엄마로서 희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처럼 지은은 그렇게 희재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엄마처럼 바다에 빠진 희재를 구한 지훈의 메일로 희재는 다시 한국의 진남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희재는 자신의 아버지가 엄마의 오빠가 아닌, 신혜숙 교장의 남편인 그 당시 엄마의 학교 선생님 최성국임을 알게 된다. 그 당시 엄마가 겪었던 오해과 소문들로 인한 이야기들을 지은은 침착하게 희재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된 지은의 문집에서 발견된 '20년 뒤의 희재에게'라는 부제가 붙여진 '어느 저녁, 양관에서'라는 시를 통해 오해로 인해 거짓으로 감추어져 있던 진실의 실마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서로간의 간극이 만들어낸 오해와 시기들로 인해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은 3부 우리를 통해서 지은을 둘러싼 친구들의 이야기로부터 얽혔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다.

 

"사실은 불편하다는 편견 때문에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지은이를 죽인 거지요. 하지만 진실을 불편하지 않아요. 진실은 아름다워요." (본문 279p)

 

이야기는 이제 1983년 진남조선공업에서 일하다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을 했던 지은의 아버지로 돌아가야 한다. 모스부호로 보내 준 'HOPE'라는 메시지를 간직한 채 투신자살한 아버지를 바라보던 지은의 시점으로 말이다. 그 시점으로 돌아갈 때, 서로 다른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던 오해와 서로 다른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결론지어지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건네 받는다.

친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희재는 이제 자신이 엄마 지은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는 날개였음을 깨닫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본문 275p)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날개가 필요할지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본문 327p) 바란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입양아가 자아를 찾기 위해 모국을 방문하고, 오해와 간극으로 덮어져 있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사람 사이의 간극 즉, 심연으로 가기 위해서는 본심으로 가닿을 수 있는 날개가 필요함을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싸워야했던 지은의 아버지와 희재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도와주었던 서교수가 들려주는 운동화 공장에서 힘겹게 일하던 어머니의 당시 상황을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적 환경을 되짚어보려 했던 것일까. 어머니에게 어울리는 또 다른 사전적 의미를 찾으려는 희재를 통해 가슴뭉클하게 하는 어머니의 존재를 각인시키려고 했던 걸까. 이도 아니면 매생이국같은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심리를 꼬집고 싶었던걸까. 입양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질책이었을까.

나는 비록 저자의 마음을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심연과 희망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내 마음에 작은 날개를 찾아보겠다는 야무진 다

짐을 해본다. '늘'과 '널'을 오해하여 헤어지게 되었다는 김지훈의 에피소드처럼 우리는 서로가 너무 많은 것을 오해하며 살아간다. 결국엔 심연은 더욱 어둡고 깊어지고, 너에게 가고자 했던 날개는 그 힘을 잃어 결국 우리가 되지 못한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될 수 있는 그 희망의 날개는 어디에 있는걸까?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도록 권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는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본문 228p)

그 해답이 이 글귀 속에 담겨진 것은 아닐까 싶어, 읽고 또 읽어본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다양한 시점의 이야기들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퍼즐조각을 맞추어가고 마침내 결론에 치닿을 때 즈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결국 날개는 존재하고 있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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