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
김하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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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말이야, 상상 속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란 존재하지 않아. 정말 멋지지 않나? 이 지루하고 무능력하고 권태로운 인생 너머에 모든 악과 욕망으로 들끓는 또 다른 판타스틱한 세계가 존재한다면 말이지. (본문 68,69p)

 

레몽뚜 장은 매일매일 햄스터가 쳇바퀴 돌듯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스물네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상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 우리 사회는 상상력이 현실화되는 세상이다. 우리는 상상으로만 꿈꾸었던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스마트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행복할까.

영화 <일곱가지 유혹>에서 주인공은 사랑을 얻기 위해 일곱가지 소원을 실현하는 대신 자신의 영혼을 넘긴다는 조건으로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이런 영화를 보고나면, 나 역시도 가끔 상상에 빠진다. 그런데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내가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를 읽는동안 나는 자꾸 자문해보게 된다. 상상은 또 다른 자신이 만들어 낸 욕망의 분신이라는 레몽뚜 장의 말처럼 상상이란 내가 가진 욕망이 만들어낸 산물이고 결국엔 그 욕망이 나를 옭매게 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한다. 욕망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흥행 영화감독 B의 영화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홍마리는 바로 뒤 번호인 채수진이라는 여자가 유독 신경쓰였고, 저 여자만 오디션장에서 사라져준다면 그녀가 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당신은 이제 상상의 세계의 문을 열었습니다." (본문 22p) 홍마리의 강렬하고 두려움 없는 열망의 눈빛을 보았던 채수진은 홍마리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낯설고 두려운 느낌을 받았고, 자신이 홍마리와 위험한 거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홍마리는 영화 조연으로 캐스팅 되었고, 그 순간 홍마리의 오빠는 교통사고로 사망하였으며 장기기증 서약서대로 그의 신장은 만성 심부전증 환자였던 채수진에게 이식되었다.

 

"상상은 푸딩처럼 달콤하고 말랑하지만 실체는 모호하고 끔찍한 것이죠."

"인생은 시소와 같아요. 당신이 추락한 만큼 반대편의 누군가는 떠오르죠. 당신이 눈물을 흘릴 때 상대는 웃습니다. 당신이 가장 행복하고 기뻐할 때가 바로 당신 앞에 누군가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순간입니다. 잊지 말아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잔인한 시소게임이라는 걸." (본문 29p)

 

달콤한 상상의 푸딩 맛을 떨쳐내기 힘들었던 홍마리는 나중에 끔찍하게 추락해도 상관없다는 각오로 그 맛을 더 보고 싶었다. 

영등포역에서 뚱뚱한 남자에게 상상발전소 명함을 받게 된 아주 예민한 만성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고 있는 마태수, 잘 나가던 프로그래머에서 새로운 게임의 실패로 사는게 끔찍해져버린 마태수에게 명함을 건네 준 뚱뚱한 남자 조.

이 셋은 이렇게 달콤한 푸딩맛을 맛보기 위해 레몽뚜 장을 찾게 된다.

레몽뚜 장은 이들을 더비 카운티 메디컬센터라는 특수 치료 기관에 6개월 간 무의식의 코마 상태에 빠진 사십 대 전후의 리의 영혼을 찾아오는 자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고 한다. 위험하고 뜨거운 숨은 열망, 그 열망을 현실로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에 이들은 리의 영혼을 찾기 위해 두렵고 신비롭고 환상적인 다른 세계, 즉 상상의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상상은 감추고 싶었던, 잊고 싶었던 바로 그들의 현실 자체였다.

 

상상과 현실이 뒤섞여진 공간에서 작가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본질을 담아내고 있다. 사실 <<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라는 제목과 괴기스러우면서도 기인한 표지 삽화는 호기심을 자극했고, 흥미로운 전개로 이어질 듯한 세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초반부 역시 재미를 기대하게 했으나,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현실과 상상이라는 뒤섞인 공간에 대한 이해부족과 인간의 본질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내게는 조금 어렵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자 김하서가 가진 상상력은 굉장히 놀랍다는 점이며, 그 상상력에 인간의 욕망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다는 저자의 의도 역시 정말 대단하다. 다소 묵직한 주제가 독자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는 모호하지만 '김하서'작가 이름을 기억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상상해봐.....현실로 만들어줄게.....(본문 282p)

"근데 나를 쫓고 있는 저자는 누구예요?"

"또 다른 네 욕망의 분신이지. 너 자신에게 붙잡혀선 절대 안 돼. 항상 잊지 마. 네 뒤엔 항상 또 다른 네가 쫓고 있다는 걸." (본문 158p)

 

결국 인간의 과욕은 부질없음을 작가는 상상이라는 세계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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