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푸른도서관 53
문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까레이스키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대를 전후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현지의 한인 교포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이라고 부른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몇 해전만 해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 자주 언급해주었던 거 같은데, 요 몇 년동안은 이들에 대해 방영해주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던 거 같다. 그렇게 그들은 또 같은 민족에게서 잊혀지고 있었나보다.

책 제목을 보고서야 비로서 그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가슴에 한을 품은 그들은 국적을 잃은 채 차별과 배척을 당하며 방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타국에서의 서러움도 모자라, 조국에서는 그들에 대한 관심마저 사라지고 있으니 그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

 

230여 년 동안 발해가 다스리던 땅 연해주. 한인들은 주인 없는 이곳에 계절 농사를 지으러 왔고, 1900년대에 이르러는 일제의 한반도 침략으로 망명가나 독립투사들까지 연해주로 들어왔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연해주는 러시아 한인 민족 운동의 주요 지역이 되었으며, 1910년 한일 합방 이후에는 일본의 식민 통치로 고통을 당하던 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연해주로 모여들었다. 그러다 1918년 일본이 연해주를 점령하자, 한인들은 독립군을 만들어 항일운동을 했으나 1919년 만세 시위로 인해 일본의 한인 탄압은 더욱 거세졌고, 1920년 4월 일본군이 신한촌을 습격하여 한인 수백 여명이 희생되었다. 1922년 일본은 연해주에서 물러났고, 레닌은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의 국가들을 통합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을 탄생시켰다. (프롤로그 中)

 

1924년 신한촌에서 동화는 까레이스키로 태어났다. 그러나 1937년 소련은 18만여 명이나 되는 까레이스키들을 강제 이주 열차에 태웠고, 동화 역시 그중의 한명이었다. 이 책은 바로 강제 이주 열차에 태워진 동화를 비롯한 수많은 까레이스키들의 고통이 오롯이 수록되었다. 읽는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아파서 책을 읽는 것이 고통이 되었다. 그들을 잊고 지낸 것에 대한 미안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오갈데 없이 철저히 고립되어버린 그들은 우리가 보듬어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하기 때문에 강제 이주를 시킨다는 말도 들려요?"

"첩자라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까레이스키 모두가 이를 가는 일본군의 첩자를 하겠소?" (본문 32p)

 

사흘 전에 통보받은 이주 명령으로 동화네 가족은 농사터와 집, 가축들을 모두 버려둔 채 열차에 태워진다. 소련 사람에게 갑자기 끌려간 아버지는 이주하는 그날까지도 돌아오지 못했고, 동화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담아 편지를 남겨둘 뿐이었다.

열차 안의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려야했는데, 출산을 앞두고 있던 동화 엄마는 끝내 숨을 거두었고, 태어난 아기마저 목숨을 잃었다.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버티던 사람들은 군인들에 의해 사살되었고, 사람들은 하나 둘 숨을 거두었다.

연해주를 떠난 지 40여 일만에 밟은 땅은 집도, 나무도, 바람을 피할 바위도 없는 허허펄판의 눈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땅 위로는 나무줄기가 뻗지 못한 채 땅속으로 뿌리를 뻗은 싹싸울 나무처럼 그들은 끈질기게 버텨 냈다. 아이와 아들을 잃고 정신을 놓은 함흥댁,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동식 등 이들은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지만, 그래도 끝질기게 버텨 냈으며, 마을을 일구어냈다.

 

"서로 힘을 합치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요."

아버지를 기다리는 일이 나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본문 164p)

 

연해주에 남겨놓은 짧은 편지를 보고 아버지가 찾아오리라는 희망으로 동화는 엄마, 오빠, 할아버지의 죽음을 견디어냈지만, 해가 바뀌고 또 한 해가 지나도 아버지의 소식은 할 길이 없었다. 이주를 당한 지 햇수로 20여 년이 흘러서야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되었지만, 동화는 레닌 훈장을 받아 아이들이 까레이스키의 벽을 넘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강제 이후를 당한 지 49년이 지나서야 소련 정부는 적성이민족이 잘못된 정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소련의 잘못된 정책으로 60년 가까이 억울한 삶을 살아온 까레이스키들의 보상은 누가 해 줄 것인가? (본문 229p)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국적을 잃고 여전히 발붙일 곳 없는 유랑 민족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도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의 일부이며,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독립운동을 해온 이들의 후손들은 방랑자가 되어있다.

광복과 함께 우리는 경제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다. 역사 속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었으며, 그 노력에는 연해주에서 독립을 해온 이들의 도움도 컸다. 지금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보듬어야 할 때이다. 조국으로도 오지 못 한채 타국에서 차별과 배척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제는 우리의 따뜻한 손이 필요하다.

조국의 무관심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싹싸울 나무처럼 버텨내고 있는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너무 늦지 않게, 그들의 희망이 꺼지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이 관심의 시작이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으로 인해 멀리멀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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