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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의자왕은 백제를 망하게 했을까? - 의자왕 vs 김부식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10
양종국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평점 :
역사 속의 라이벌을 법정에 세워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도록 이끌어주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시리즈는 원고와 피고 그리고 역사 속의 다채로운 인물들이 증인으로 등장하면서 흥미롭게 진행되는 역사 이야기이다.
역사는 승자 중심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때문에 지금까지 전해 오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우리나라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서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는 『삼국사기』가 역사의 승자였던 신라 중심으로 쓰여진 다분히 편파적이었다고 평가가 되고 있다.
물론 『삼국사기』가 우리나라 삼국 시대의 역사와 지리, 문물, 제도, 인물 등에 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새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해 준다(본문 50p)는 의미에서 우리 역사의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닌 기록으로서의 역사였던 『삼국사기』의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기에 『삼국사기』에 기록된 역사 속 패자에게는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으리라. 그 억울함으로 김부식을 소송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백성을 돌보지 않은 채 그저 여자와 술만 즐기며 왕위를 누린 방탕하고 무책임한 임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의자왕이다.
<<왜 의자왕은 백제를 망하게 했을까?>>에서는 백제의 제31대 왕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나라를 망친 술주정꾼에 3천 명이나 되는 궁녀들과 놀아난 음탕한 인간으로 만든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을 사실을 왜곡한 공문서 유조죄와 명예 훼손 혐의로 고발하게 된다.
재판 첫째 날은 『삼국사기』가 승자의 기록인지에 대한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삼국사기』가 과연 어떤 책일까?에 대해 심층분석한다. 원고 김부식은『삼국사기』는 개인적으로 편찬한 책이 결코 아니며, 고려 제17대 왕인 인종의 명을 받아 자신을 포함한 11명의 학자가 편찬에 참여했으며, 독단적인 서술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의 문헌에 전하는 기록들을 모아서 재구성한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한다. 이에 증인인 김유신은 『삼국사기』는 고구려나 백제 사람보다 신라 사람에 대한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의도적이었다기보다는 신라보다 고구려와 백제가 일찍 망해 자료들이 없어진 탓에 정보부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흑치상지는 후삼국 시대의 인물을 신라인 39명, 고구려인 8명, 백제인 4명만을 기록했음을 감안할 때 신라인에 대한 김부식의 애착을 엿볼 수 있다고 증언한다.
이어 둘째 날은 의자왕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삼국의 국제 정세와 의자왕이 신라를 공격한 이유 등을 통해 의자왕이 실제 어떤 정치를 했는지 알아간다. 피고측은 봄 가뭄으로 백성이 굶주렸다거나 태주궁을 화려하게 수리했다는 기록, 의자왕이 궁녀들과 음탕하게 지내며 술을 마시고 놀았다거나 왕의 서자 41명을 좌평으로 임명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내세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없으며 결국 백제말기의 사회를 혼란에 빠트린 무능한 통치자로 결론을 낸다.
그러나 원고 의자왕은 중국의 역사 기록을 찾아보면 예로부터 패망한 나라의 마지막 임금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망한 나라의 마지막 임금들을 사치와 향락에 빠진 군주는 정치에 관심이 없고, 백성은 가뭄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 또는 전쟁 등으로 고통을 겪는다는 왜곡된 사실이 많으며, 하늘의 명령에 의해 나라가 바뀐다는 중국의 천명(天命) 사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표명하면서 『삼국사기』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사실과 다른 기록들을 받아들였음을 밝히고, 뒤이어 셋째 날 백제 멸망이 의자왕의 탓이었는가를 둘러싼 공방으로 치열했던 법정이 마무리된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판사가 되었다면 어떤 판결을 내리고 싶은가? 그동안 우리의 역사교육은 신라나 중국 등 승자 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정의롭고 자애로운 임금'이라는 뜻을 가진 의자왕이 저평가 된 것에 대해 반론을 논문을 통하여 줄곧 제기해 왔다는 저자를 비롯 많은 역사학자들을 통해 역사의 진위를 계속 밝혀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삼국사기』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변함이 없는 사실이지만, 사실을 넘어선 진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하지 않을까. 역사의 진실에 대한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중국이나 일본에서 자행되고 있는 역사의 왜곡에 보다 떳떳하게 우리의 주장을 펼칠 수 있을 때, 현 독도 문제와 같은 억울한 일이 되풀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에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며, 이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아무리 진실만을 기록하려 해도 역사가 역시 사람인 이상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겠지요. 개인적인 감정 또는 선입관, 어쩔 수 없는 능력의 한계, 사회 환경이나 시대 분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역사가들의 입장은 서로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역사가들이 쓴 역사책 속에서 진실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항상 이러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본문 39p 증인 사마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