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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기억
다카하시 가쓰히코 지음, 오근형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아주 어린시절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일이 있는가하면, 어떤 일들은 전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없다. 아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기에 나도 모르게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나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우연한 계기로 망각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 적이 있다. 하나의 기억이 또 하나의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그 당시 겪었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잊고 싶었다. 그런데 연쇄반응처럼 하나의 기억으로 인해 모든 것들이 되살아났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을 나는 다시 잊어보려하지만, 잊혀지지 않는다.
<<붉은 기억>>는 기억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낯설지않은 어떤 기억을 뒤쫓으면서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망각 속에서 끄집어낸 기억과의 대면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기억을 소재로 한 7편의 단편은 추리소설 형식을 띄고 있는데, 충격적인 결말과 반전은 놀라운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선명한 붉은 색이 꼭 감은 내 눈에 서서히 펼쳐졌다. (본문 25p)
[붉은 기억]은 5년만에 만난 친구가 가지고 있던 고향 모리오카의 오래된 주택 지도로 기억이 되살아난 야마노는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던 기억을 되짚어보다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63년 고등학교 시절의 지도를 찾아보지만, 기억 속의 소녀가 살았던 집은 어쩐 일인지 나와있지 않다.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기억 속의 장소와 지도는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고향을 방문한 그는 고등학생 시절 알게 된 초등학생 아야코에 대한 기억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게 되고, 그 기억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20년이나 고통에 시달려왔던 기억, 붉은색에 시달려왔던 그 기억에 대한 납득할 수 없는 진실을 그는 이해할 수 없다.
[뒤틀린 기억]는 어머니의 죽음의 진실을 확인한 화가의 뒤틀린 기억을 담아내고 있다. 30년 이상 찾아 헤매던 곳을 한 장의 사진으로 찾게 된 그는, 어린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산길을 걸어 당도했던 그 숙박업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시즈코라는 한 여성과 만나게 되고, 그 여성이 엄마와 함께 묵었던 그 방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낯익은 느낌을 주는 시즈코와의 하룻밤을 보낸 그는 자신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설명하게 된다. 그는 어린시절 어머님가 죽은 원인과 대면하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다.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말할 수 없는 기억]은 강연회를 마치고 고향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강에 빠져 죽은 노리코의 오빠로 인해 잊었던 과거를 떠올린다. 노리코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면서는 그는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추적하게 되고, 진실과 마주한다.
어떤 기억에 부딪혀 나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본문 144p)
[머나먼 기억]에서도 망각을 떠올리면서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는 내용을 담았다. 어린시절 고향을 떠난 그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자 아들을 키워낸 엄마는 고향 이야기를 꺼려했기에 고향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는 촬영차 고향에 들렀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하나 둘 떠올리게 되면서, 마침내 망각 속에 묻어두었던 충격적인 장면을 떠올린다. 그 기억은 온몸이 얼어붙을 듯한 한기를 전해주었다. 온전한 망각의 세계를 보여준 작품이다.
[살갗의 기억]은 사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결말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억보다는 엄마의 뱃속에서 이어받은 어머니의 살갗 기억을 보여주고 있는데, 모성애로 마무리되는 작품이라 그런지 충격적인 결말이나 반전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안개의 기억][어두운 기억]은 앞서 보여주었던 충격이나 반전이 다소 미비했던 작품이다.
기억은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점점 왜곡되어지고, 결국 기억은 왜곡 속에서 진실과 다르게 저장되고만다. 그 왜곡된 기억이 진실과 마주했을 때 누구나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으리라. <<붉은 기억>>은 왜곡된 기억 혹은 진실을 숨기려는 망각 속에서 진실과 마주하면서 괴로워하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보게 한다. 왜곡된 기억이 마치 사실인 듯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는 분명 우리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기 위한 목적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감추기 위해 왜곡하고,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각자가 숨겨고 있는 이 진실을 끄집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진실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왜곡된 기억과 망각보다는 덜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려주려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