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 빈처 올 에이지 클래식
현진건 지음 / 보물창고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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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수록되었던 현진건의 작품을 읽은 뒤 실로 오랜만에 현진건의 작품을 읽어본다. 사실,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작품이 <운수 좋은 날>이었는지, <빈처>였는지 뚜렷한 기억도 없지만, 학창시절 안타까운 현실을 담아낸 현진건의 작품은 내게 그다지 즐거운 작품이 아니었다. 현진건의 묘사가 주는 탁월함, 세밀함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무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가난, 고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감수성때문일지도 모른다.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후에 읽게 된(어쩌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없이 읽게 된) 현진건의 작품은 연민, 안쓰러움이 그가 보여주는 섬세한 묘사 속에서 진하게 배어져나와 그 애틋함이 강하게 밀려왔다.

특히 이번 보물창고 올에이지클래식에서 출간된 <<운수 좋은 날 빈처>>는 1부,2부를 통해 현진건의 작품 10편을 수록하였는데, 원문을 살린 작품은 현진건의 묘사가 오롯이 전해져 그 시대의 삶, 인간의 고뇌 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1부에서는 <빈처><술 권하는 사회><희생화> 세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빈처>는 무명작가가 느끼는 경제적인 무능함, 아내에 대한 미안함 등을 보여준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는 처형을 통해 빈부의 격차를 보여주고 있는데, 삶의 위안이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닌 무능한 자신을 인정해주는 아내를 통해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무명작가인 나를 다만 저 하나가 깊이깊이 인정해 준다! 그렇기에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요구도 참아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준 것이다.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본문 29p)

 

<술 권하는 사회>는 유학을 다녀온 뒤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남편이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 술 주정꾼 노릇이 아니면 할 것이 없다는 현실에 대한 야속함과 현실의 압박을 담아내고 있다.

<희생화>에서는 근대화 속에서도 뿌리박혀져 있는 봉건적인 사상으로 끝내 헤어질 수 밖에 없는 남녀의 사랑을 기록하고 있다. 봉건적 사상으로 인한 사회적 모순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운수 좋은 날><B사감과 러브 레터><까막잡기><사립정신병원장><불><고향><할머니의 죽음> 7편이 수록되어 있다.

가난때문에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하층민의 슬픈 삶을 보여주는 <운수 좋은 날>은 비 오는 날, 아픈 부인에게 설렁탕 한 그릇 사 줄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어 간만에 주머니에게 짤랑거리는 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날에, 간만에 운수 좋은 날에 찾아온 슬픔을 보여줌으로써 가난으로 인한 아픔과 절망을 곱절로 느끼게 한다.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신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본문 93p)

 

가난, 삶에 대한 고뇌와 아픔을 느끼게 하는 현진건의 여러 작품 중 유독 <B사람과 러브 레터>는 웃음을 머물게한다. <까막잡기> 역시 청춘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여성에 대한 비방을 서슴치 않던 학수가 사랑 맡은 귀신의 은총을 입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할머니의 죽음>은 삶의 모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0여 년을 돌아가신 엄마를 병간호 하면서 힘겨워했던 나의 모순됨을 보는 듯 하여, 개인적으로는 그 쓸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운수 좋은 날 빈처>>는 시대적인 배경에서도 아픔과 그로 인해 겪어야 할 고통, 사회적인 모순 그리고 삶의 모순을 담아내고 있다. 현진건의 문체에서 보여주는 묘사는 구구절절한 사회,인간의 모순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는데, 그 섬세한 묘사를 통해서 그 아픔이 진하게 배어진다.

수록된 10여편의 작품은 단편단편의 주인공에 대한 아픔이 오롯이 느껴져, 책을 읽는내내 편치 못했다. 그만큼 삶의 묘사가 탁월했다는 뜻일 것이고, 이 작품에서 원작을 잘 살려냈다는 뜻일게다.

숙어, 방언, 구어체를 그대로 살리고 있어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나, 원문을 그대로 살린 이 작품은 맛깔스러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현진건 작품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보물창고의 <<운수 좋은 날 빈처>>를 적극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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