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어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책이었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 꼬리를 잡은 채 바다 속에 고요히 떠 있는 삽화 표지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그러고보니 작가가 눈에 띈다. 바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저자 오가와 요코다. 책을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던 이유들이 모두 사라지고, 오가와 요코 작가의 작품이기에 읽어야 한다는 이유만 남게 되었다. 폭풍 감동을 기대하며 책을 읽어보았지만, 내 기대가 너무도 컸던걸까? 이야기를 미화하려다보니, 내용의 흐름은 있으되 이렇다할 주제를 끄집어내지 못한 듯 싶은데다 잔잔함 뒤에 느껴질 감동도 너무 부족했다. 결말도 너무 허무하다랄까?

주인공 소년의 이야기보다 체스 이야기가 더 중심이 되어버린 내용이 그다지 시선을 사로잡지 못한 듯 하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는 훗날 리틀 알레힌이라 불리는 소년의 일곱 살 무렵부터 시작된다.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자기만의 세계를 또렷하게 구축하고 있는 소년은 백화점 개업 기념으로 인도에서 찾아왔지만, 너무 커져버린 탓에 동물원에 가지 못하고 결국 백화점 옥상에서 죽은 코끼리 인디라와 소년의 집과 옆집 벽과의 틈새에 들어간 여자애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 속 미라에 집착한다.

소년은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가 형제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왔으나 어머니가 2년 전에 뇌출혈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소년은 윗이술과 아랫입술이 붙은 입술 기형으로 태어났고, 수술로 입술을 떼어낸 뒤, 벗겨진 속살은 아기의 정강이 피부를 떼어 이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강이에서 이식된 탓에 소년의 입술에는 솜털이  나 있었고, 그런 이유로 소년은 말이 없었다.

이런 소년이 말수가 많아질 때가 있는데 바로 거실 난로 옆에 있는 장롱을 개조한 침대에서 잠을 자기전이었다. 벽과 벽 사이에 끼여 나올 수 없게 된 소녀 '미라'에게 인사를 건넸고 인디라 이야기를 했으며,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느님은 왜 나를 젖도 빨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 거예요?"

"하느님도 가끔은 허둥댈 때가 있단다. 다른 데 특별히 신경을 써주시느라, 그래서 마지막에 입술을 뗄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닐까."

"다른 데라뇨?"

"그건 할미도 모르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말이다. 눈인지, 귀인지, 목인지, 좌우지간 어딘가에 보통 사람한테는 없는 특별한 장치를 해주신 게야. 그래, 그거다. 틀림없어." (본문28p)

 

어느 날 소년은 폐차된 버스에서 사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처음 체스를 접하게 된다.

"그래, 체스. 나무로 만든 왕을 쓰러뜨리는 게임이지. 8X8 모눈의 바다, 장구벌레가 물을 마시고 코끼리가 벽을 감는 바다에 잠수하는 모험이란다." (본문 42p)

소년은 인디라를 떠올렸고, 곧 체스에 빠지게 되었으며 폐차된 버스의 남자, 마스터를 통해서 체스를 배우게 된다. 소년은 체스판에 있으면 비행기 같은 걸 탈 때보다 훨씬, 훨씬 먼데까지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소년은 마스터의 침착한 목소리 덕분에 실수를 겁내지 않게 되었고, 마스터의 "서두르지 마라, 꼬마야" (본문 57p)라는 격려로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생각하게 되었다.

체스에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면 소년은 마스터의 고양이 '폰'을 안고 테이블 체스판 밑으로 기어들어가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버스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 4년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마스터를 이기게 되었다.

 

너무나 뚱뚱했던 마스터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자, 소년은 크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지고, 신발이 작아지는 변화의 예감이 그를 공포의 늪으로 끌어들였고, 그는 하루 중 대부분을 테이블 체스판 밑에서 웅크리고 보냈으며 더 자라지 않았다.

 

'커지는 것은 비극이다.'

리틀 알레힌은 이 한 줄을 가슴속 깊이 새겼다. 그것은 언제까지고 곪아 나을 줄 모르는 상처요, 또 동시에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광맥이었다. (본문 127p)

 

소년이 다시 체스 실력을 발휘하게 된 곳은 퍼시픽 호텔 지하 '해저 체스 클럽'이었는데, '리틀 알레힌' 인형 속에 들어가 상대방과 체스를 두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소년은 자신이 연상했던 '미라'와 닮은 소녀를 만나 우정을 쌓기도 했으며, 어른들의 어두운 면을 보기도 한다.

 

나는 체스를 잘 모른다. 허나 저자가 상처 많은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체스판에 놓아둔 것을 볼 때, 체스판의 말이 가지고 있는 역할을 통해서 심연의 바다를 헤쳐갈 수 있는 용기를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체스판의 말 중 '폰'은 눈앞에 있는 상대편 말을 잡을 수 없고, 자기 혼자선 메이트도 못하는 가치가 낮은 말이다. 그러나 '폰'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한발 두발 나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 후퇴하는 않는다.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하거든. 후퇴는 안하고. 어린애가 성장하는 거랑 마찬가지야." (본문 51p)

책을 읽는 동안 비숍처럼 고독한 소년이 폰처럼 한발 한발 나아가 성장하기를 바랬다. 심연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세상으로 나오기를 바랬다. 마스터를 만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소년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는가보다 했지만, 작가가 마스터를 너무 허무하게 죽임으로해서 소년은 다시 세상과 단절되었다.

 

자라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많은 일을 겪게 된다. 체스판의 말처럼 쓰러지기도 하고,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심연의 바다가 아니라 바다가 아닌 육지,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년이 비숍을 좋아하는 것을 통해 소년을 너무도 고독한 존재로 몰아가고 있지만, 나는 소년이 마스터가 좋아하는 폰처럼 세상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길 바랬다. 바록 소년은 '리틀 알레힌'으로 세상에 남겨졌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허무할 따름이다. 성장을 두려워한 소년, 인생이 묻어나는 체스, 두 조합이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던 느낌이다. 지나치게 잔잔한, 그래서 오히려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너무도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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