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페어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추리소설 한편을 만나게 되었다. 책을 읽기시작하면서부터 손을 놓기가 어려울 정도였기에,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동안에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책을 읽었다. 범인을 추리해가는 동안,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혼돈을 주고 있는데 범인이다,라고 확신할 때 쯤이면 또다른 용의자가 등장한다. 독자의 추리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는데 이 정도면 작가의 구성력이나 필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소설은 흥미로움과 재미 그리고 긴장감을 모두 갖추고 있는 작품이기에 이미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놀라운 일도 아닌 거 같다. 9월 일본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궁금하다.

 

<<언페어>>추리소설 속에는 T.H. <추리소설>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등장하는 형식으로, 소설 속 살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면서 독자,형사 그리고 범인과의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6월 14일 건설 중인 채로 몇 년째 방치되어 있는 빌딩 앞에서 접점을 알 수 없는 두 명이 피살된 채 발견된다.

 

"이것이, 리얼리티."

"그리고, 독창성." (본문 12p)

 

범인은 범죄현장에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책갈피를 남겨둔다.

 

유키히라는 검거율 1위로 '쓸데없이' 미인인 여형사로 이 사건에 투입되는데, 소설 속 개성강한 캐릭터 중에서도 단연 으뜸인 인물로 굉장한 매력을 가진 주인공이다.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사건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나며 굉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어 수사1과 과장인 야마지, 파트너 형사인 안도 역시 그녀에게 감히 반감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강한 그녀에게도 악몽같은 사건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총기 발사로 인한 여론의 비난과 가족의 분열이었다.

 

그리고 범인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들게하는 독자와 형사를 헤깔리게 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와사키 출판 편집자로 '실제 판매부수 10만 부. 매출 1억 6천만 엔'이라는 영업목표를 달성해야하는 감정보다는 이성적이면서도 냉철한 인물 세자키.

미스터리 작가로 소재의 고갈로 인해 미스터리 연구회 소속 소설가가 꿈인 다구치의 아이디어를 제공받는 다루메.

W대학 문학부 7학년생으로 다루메를 통해 추리소설가가 되기 위해 다루메의 소설을 대필하는 리에코와 미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다구치.

다구치와 같은 대학 4학년생으로 2년째 행방불명이며, 리에코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차인 경험이 있는 히라이.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전 사건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를 받게 되며, 히라이가 범인임을 확신하는 리에코.

작가 구루메의 비서로 소설 속 짧은 분량 속에서도 굉장히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마리.

 

처음 살인사건이 발생 후 조금의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 속에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세자키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개최하고, 구루메가 심사위원으로 진행되는 '신인문학상' 시상식에서 세자키의 친구 구리야마가 독극물에 의해 사망한다. 범인이 남긴 책갈피는 세자키의 양복 주머니에서 발견되고 곧이어  여러 출판사들과 경찰에 범인이 쓴 작품이라 짐작되는<추리소설> 상권이 배달된다.

이 소설 속에는 그동안 일어난 살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범인은 이 소설의 다음 이야기를 낙찰하라는 요구과 함께 일주일의 기한동안 3사의 신문에 최저입찰가 3천만 엔을 게재할 것을 요구하였고, 입찰하지 않을 경우 또 한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고한다.

 

무차별 살인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걸까?

편집자 구리야마 소헤이. 회사원 스즈키 히로무, 여고생 다츠이 마도카, 그리고 'S'라고만 표기한 남자 - 그들 간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네 명의 인간이 있으면, 이론상으로는 여섯 개의 관계 라인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경찰은 한 개의 라인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본문 141p)

 

이렇게 사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세자키는 사건의 실마리가 될 만한 2년전 한 청년의 응모작을 생각해내고, 유키히라는 점점 수사망을 좁히게 되지만,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범인은 또 한번의 살인 사건을 예고한다.

 

이 살인의 책임은, 내 소설을 무시한 경찰과 매스컴에 있다.

다음 살인은 1주일 후. 최저입찰가 1억 엔.

다음 피해자는 일곱 살 소녀. 그 아이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나의 <추리소설>을 낙찰하라! (본문 203p)

 

우리가 추리 소설을 볼 때는 몇 가지 법칙이 존재한다. 그 법칙으로 인해서 독자는 범인을 추리해나가게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 법칙 중에는 '범인은 클라이맥스에서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가 존재하는데, 책을 읽는 동안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라고 주목한 인물 중에 진실을 말하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이 소설은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다.

독자들이 추리소설을 읽을 때 '리얼리티와 독창성'이라는 부분에 중점을 둔다. 범인이 누구인지가 뻔한 내용과 결말에 대해서는 인색한 점수를 준다. 이런 소설에 대해서는 악평과 독자들의 외면만이 남게 되는데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추리소설>은 '리얼리티와 독창성'을 추구하는 독자와 편집자들을 꼬집고 있는 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에서 작가는 독자,추리소설을 쓰는 작가 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이 소설 속에서도 독자와 편집자, 출판사에 대한 저자의 아쉬움이 숨겨져 있는 듯 보인다.

 

 

 

저자의 의도가 어찌되었건 간에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쉴새없는 긴장감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절대 놓칠 수 없는 흡입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점이다. 또한 인물 하나하나의 묘사와 뚜렷한 개성 그리고 사건에 대한 뛰어난 묘사로 인해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오랜만에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와 긴장감을 모두 갖춘 추리소설 한편과 만나게 되었다. 범인이 밝혀질 때의 그 놀라움과 통쾌함이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내가 쓴 <추리소설>은 완성된다. 현실적으로 관측되고, 증명된, 리얼리티 넘치는 소설이 된다. (본문 286p)

 

이 문구는 어쩌면 작가 자신이 이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기록한 내용은 아니었을까? ^^

 

(사진출처: '언페어'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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