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르루 지음, 양혜윤 옮김 / 세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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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계 최초로 밀실 미스터리를 다룬 밀실 트릭의 바이블'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바로 표지에 적힌 위 문구 때문이었다. 많은 추리소설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 밀실 트릭을 세계 최초로 다룬 작품이라고 하니,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 큰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쓴 작가가 <오페라의 유령>을 쓴 저자였다는 점은 나를 한번 더 놀랍게 했다.

사실, 읽기전에 세계 최초로 밀실 트릭을 다룬 작품이고, 1900년대 초 작품이라 현 추리소설에 비해 덜 화려하고, 덜 극적일 것이라는 것임을 감안하기는 했지만,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내 '예상'이 너무 '적중'했다는 점이 스토리에 대한 긴장감을 반감시켜 읽어내려가는 동안 좀 힘이 빠졌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화자는 피해자도 범인도 그렇다고 해서, 경찰이나 탐정도 아닌 이 사건을 해결하는 기자 룰르타뷰의 친구이다. 이런 이야기 구성을 볼때, 생각나는 작품이 하나있는데 바로 <명탐정 셜록 홈즈>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그의 친구 왓슨 박사가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노란 방의 비밀>> 역시 룰르타뷰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듣고, 본 후 기록한 글이다.

1892년 10월 25일, 에피네 쉬르 오르주 마을의 상류, 생트 주느비에브 숲에 있는 글랑디에의 스탕제르송 박사의 저택에서 흉학한 범행이 발생했는데, 박사의 딸 스탕제르송 양이 그녀의 방 '노란 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범인은 귀신처럼 깜쪽같이 사라졌다는 점때문에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사건으로 경시총감은 증권 도난 사건을 위해 런던에 파견되어 있는 명탐정 프레드릭 라르상에게 즉시 파리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보냈고, 풋내기 수습기자였던 조셉 룰르타뷰 역시 이 사건을 담당하면서 이 책의 화자이자 변호사인 생클레르와 함께 사건 현장으로 가게 된다.

 

원래 이름은 조셉 조세팡이었지만, 그의 활약으로 인해 '룰르타뷰'('자네의 구슬을 굴리게나'라는 말을 그대로 이어서 한 단어로 만들어 버린 것으로, 도박의 '룰렛' 또는 '계속해서 직업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본문 23,24p))라고 불리었는데, 열 여덞살의 어린 룰르타뷰는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밝고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상할 정도로 진지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양의 뼈에 맞은 관자놀이의 상처, 눌린 듯한 목의 상처, 그리고 방에 흩어져 있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증거물, 벽에 묻어있는 혈흔, 그리고 의문스러운 스탕제르송 딸의 약혼자인 로베르 다르자크 등으로 사건이 해결점을 찾아가는 듯 보이지만, 유령처럼 사라지는 범인을 추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명탐정 프레드릭 라르상 그리고 수습기자 조셉 룰르타뷰는 그렇게 범인을 추적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는데, 혈기왕성한 룰르타뷰는 명탐정과의 대결에서 꼭 이기고 싶어했다, 지나치게 논리적인 롤르타뷰를 탓하는 프레드릭과 범인을 지목해두고 거기에 필요한 증거를 찾는 프레드릭의 수사상의 실수를 탓하는 룰르타뷰의 대결구조는 이 책을 읽는 또하나의 즐거움이다.

 

"자네는 정말 놀랄만한 인물이야. 그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말이지!. 게다가 대단한 탐정이 될 수 있겠어. 조금만 더 체계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말일세. 너무 직감과 두뇌에만 의존하지 않았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내가 그 동안 몇 번이나 느낀 건데, 룰르타뷰 자네는 너무 추리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어.

정말 그런 난폭한 직관으로만 사건을 보고 있으니...주의하는 게 좋을 걸세, 룰르타뷰 군. 자네는 지나치게 논리적이야. 논리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다뤘다가는, 언젠가 그 논리라는 녀석 때문에 큰 코 다치게 될 거야." (본문 125p)

 

"프레드릭 라르상 씨. 이 세상에는 섣불리 논리를 다루는 것보다 좀 더 경계를 요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어떤 종류의 탐정들에게 흔히 보이는 특유한 정신적 경향이지요. 본인은 잘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그 논리라는 것을 자기가 바라는 쪽으로 서서히 구부러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프레드릭 씨, 당신은 일찌감치 누가 범인인지 점찍어 놓고 있습니다. 프레드릭 씨, 그건 정말 너무 위험한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범인을 지목해두고 거기에 필요한 증거를 찾는다니!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수사상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자칫 잘못하면 거기에 걸려들고 맙니다!" (본문 126,127p)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고 룰르타뷰는 절망하지만, 결국'이성의 올바른 행동'으로 미스터리는 해결되었다.

너는 알고 있다! 그런 일은 없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개를 들어라....이마의 두 개의 혹을 양손으로 눌러 보아라. 그리고 생객해내는 것이다. 종이 위에 도형을 그리는 것처럼 확실하게 네 두뇌 안에 원을 그렸을 때, 너는 이성을 올바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본문 255,256p)

 

비록 내 예상이 적중한 결말이었지만, 거침없이 진행되는 스토리, 기자와 명탐정의 대결구조 등으로 내용면에서는 알찬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밀실 트릭은 예상했지만, 범인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던 작품이었는데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그러나 긴장감이 다소 부족했던 점 때문에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져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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