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엄마와 딸의 10일간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영미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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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사람들은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말을 하곤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얼마나 힘든지 어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랴.

내가 그 사람이 되지않는 한, 정말 어려운 일일게다.

요즘 나는 사춘기가 절정을 이룬 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고 있다. 내 딸도 내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요즘 나는 자꾸만 어긋나는 딸과 나 사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2007년 방영된 일본드라마<아빠와 딸의 7일간>으로 이가라시 다카히사는 문학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가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아빠와 엄마와 딸의 10일간>>은 그 후속작품으로, 전작에서 아빠와 딸의 몸이 뒤바뀌었던 사건으로부터 2년이 지난 이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딸 고우메는 고등학교 졸업 후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등학교 한 학년 선배인 축구부 주장이며 인기있는 스타라이커 오스기 겐타와 교재 중이다.

아빠 가와하라는 2년 전 고우메의 도움으로 레인보우*드림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유부단하고 그저 조용히 넘어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성격 탓에 할 일 없는 신상품 기획개발부 부장을 맡고 있다.

엄마는 여느 가정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잔소리가 심한데, 고우메는 이런 엄마가 성가시다는 생각을 한다.

고우메의 대학 입학식 날, 회사에서 퇴근한 아빠와 입학식이 끝나고 친구와 수강 신청 설명회를 듣고 집으로 가던 고우메는 오후 늦게 천둥과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우산이 쓸모없게 되자, 집 근처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다행히 우산을 가지고 마중 나온 엄마와 만나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 번개가 내려치면서, 이 가족에게 엄청난 일이 생겨난다.

고우메는 또 다시 아빠의 모습으로, 아빠는 엄마의 모습으로 그리고 엄마는 고우메의 모습으로 뒤바뀌게 된 것이다.

아빠와 고우메는 2년 전 한번 경험했던 일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엄마에게는 이 일이 너무 충격적이다.

언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지 모르는 이들은 각자 주어진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유부단한 아빠를 대신해 회사를 다니는 고우메는 능력은 없지만, 직장 생활의 어려움과 돈이나 명예를 쫓기보다는 정직하게 회사 생활을 아빠를 다시보게 되고, 고우메 대신 대학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힘든 생활을 하는 엄마는 고우메의 생활을 엿보게 된다. 또한 집안일을 하게 된 아빠는 그동안 오랜세월 집안을 책임지고 노력해왔던 부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 본적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서론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던 이들은 이제 매일 서로의 일상을 보고하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이야기하면서 꾸준히 대화를 하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식사, 청소, 세탁. 그것은 다 아내가 할 일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손으로 직접 해 보고 나서야 그건 나름대로 힘든 일이란 걸 깨달았다. 절대 즐거운 일도 아니었고, 성취감이 있다면야 있을 수도 있지만 별로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빨래도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닌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뭐라고 할까? 눈이 번쩍 뜨인 기분이었다. (중략)

남편은 밖에 나가 일해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아내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가정을 지킨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좀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본문 221p)

 

타인이 되어 그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게 된 이들은, 서로의 몸이 바뀌게 된 원인을 생각하게 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애쓴다. 그런 와중에 고우메는 아빠와 엄마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엄마를 구하라는 아빠, 아빠를 구하라는 엄마, 그 두 사람이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고우메는 결단을 내린다.

 

늘 공부하라고 잔소리만 퍼붓는 엄마.

촌스러운 옷을 입고도 아무렇지 않은 아빠.

그만 놀라고 투덜거리는 엄마.

썰렁한 농담을 던지고는 자기 혼자 좋다고 웃어 대는 아빠.

줄곧 성가시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짜증 난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소리 좀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힘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신이시여, 제가 잘 못 했습니다. 그건 전부 거짓말입니다. 아빠도 엄마도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분들, 단 하나뿐인 아빠와 엄마. 어찌 되었던, 무슨 일이 생기든, 이 손을 놓을 순 없다. (본문 450p)

 

줄곧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라 생각하며 가볍게 여기며 책을 읽었는데, 너무도 감동적인 결말과 마주하게 되었다. 타인이 되어 생활한다는 것은 분명 불편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불편함 속에서 서로가 되어 부모자식과 부부 간의 유대를 새삼 확인했으며, 각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서로를 배려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내가 혹은 남편이 있다는 고마움, 딸이 있다는 행복을 깨달은 이들은 보면서, 나는 그동안 부모자식, 부부 관계에 대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통'이라는 것이 그 유대관계를 얼마나 돈독히 하고 있는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금 깨달아본다.

가족이기에 서로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만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소설 속 공부하라고, 그만 놀라고 투덜거리는 엄마를 보며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고우메를 통해서 내 딸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던가,도 생각해보면서 지금까지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 너무 등한시했던 것에 대해 자책해본다. 사춘기입니다, 라며 온갖 짜증과 투정을 부리는 딸을 보며 어린시절 나를 떠올려 보았다. 그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했던 엄마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일도 함께 떠올리면서 딸의 마음을 이해해본다.

'가족'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도울 때 그 관계가 돈독해지고 유지될 수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알고 있었던 일인데, 이제사 알게 된 듯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다. 그동안 가졌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은 기분이다. 유쾌함 속에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감동이 있는 이야기 <<아빠와 엄마와 딸의 10일간>>는 그동안 잊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주었다.

 

"세 사람이 함께 행동하고, 서로 도울 수 밖에 없겠군."

"서로 돕는다..... 뭐, 가족이니 그 정도는 해야겠지." (본문 4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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