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토끼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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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토끼><토끼는 부자다><토끼 잠들다>로 완결되는 존 업다이크 대표작인 이 시리즈는 이 책 <<달려라, 토끼>>로 시작되었다. 2005년 타임 선정 '20세기 100대 영문'소설로 선정된 이 시리즈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흥미로움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용의 고조가 없이 완만하면서도 김빠진 콜라처럼 싱거운 느낌이 든다. 이야기에 열중할 수 있는 포인트도 없었을 뿐더러, 그래도 좀 나은 결과를 기대했던 부분에서도 실망감을 느껴서인지 책을 덮은 뒤 맥이 빠진 작품이었다.

존 업다이크는 20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이라고 하는데, 이 시리즈로 두 번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을 볼 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내가 느낀 것보다는 훨씬 더 큰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섹스 쪽에 비중을 두어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30대 후반의 내가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논할 수는 없지만, 삶의 무료함을 느껴 일상의 일탈을 생각해 보기도 했으며, 30대에 들어선 후에는 20대, 소위 말하는 잘 나가던 때와는 다른 내 모습에 좌절을 느껴보기도 했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기에, 그나마 주인공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보탬이 되었고, 밋밋한 내용이었지만 주인공의 탁월한 심리 묘사에 매료될 수 있었던 거 같다.

 

<<달려라, 토끼>>는 미국 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내부에서 느끼는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평범한 세일즈맨인 해리 앵스트롬이 자신이 삶에 대한 공허함을 느끼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과 심리를 담아내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전도유망했던 농구선수였으나 졸업 후 잡화점에서 주방용품을 선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 해리는 펜실베니아에서 다섯번째로 큰 도시인 브루어 교외에 있는 소도시 마운트저지의 윌버 스트리트에 살고 있다. 188cm의 큰 키의 해리는 하얀 얼굴의 폭, 파란 홍채의 창백함 때문에 래빗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 집에 돌아간 래빗은 예쁘기를 그만두어버린 것 같은 만삭의 아내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보게 된다. 어머님 댁에 있는 2살인 아들 넬슨과 처가집에 주차된 차를 가지러 가야했던 래빗은 그렇게 일상으로부터 멀어진다.

일탈을 꿈꾸었던 래빗은 농구 선수였던 감독을 만나게 되고, 감독의 소개로 루스를 만나 즉흥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래빗은 고등학교 선수시절, 농구를 잘했던 자신에 대한 우월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에, 현재의 평범한 삶에 적응을 하지 못했고, 지난 날의 화려한 명성을 너무도 그리워한다.

 

"나도 한때는 괜찮은 일을 했지요. 일류 농구 선수였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어떤 것에, 그게 뭐가 되었든, 어떤 분야에서 일류가 되면 이류가 되는 게 뭔가 감이 잡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재니스와 내가 해온 그 웃기는 일, 그건 정말 이유였단 말입니다." (본문 153p)

 

래빗은 그렇게 평범했던 일상과 가정을 버리고, 루스와의 불륜 생활을 시작한다.

래빗은 옷을 가지러 집에 갔다가 목사인 잭 에클스를 만나게 되는데, 잭 에클스는 미국의 60년대 중산층, 성직자가 가지고 있는 위엄과 전형적인 교리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역시도 래빗이 과감하게 결행했던 이탈에 대한 부러운 속내가 엿보인다.

두달 여간의 불륜 생활 속에서 래빗은 재니스의 출산 소식을 접하게 되고, 자신의 이탈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함께 했던 루스에 대한 죄책감없이 그녀를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재니스나 아기가 죽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죄는 도주, 잔혹, 외설, 자만이 뭉쳐진 덩어리. 출산의 내장 속에 구현된 검게 엉긴 덩어리. 그의 창자는 이 덩어리를 내보내려고, 수축하려고, 원상태로 돌아가려고 뒤틀리지만 (생략) (본문 282p)

 

딸의 출생과 재니스의 용서로 가정으로 돌아온 래빗은 제자리를 찾은 것에 대한 행복을 느끼지만, 재니스의 출산과 양육으로 원만하지 못한 성관계로 갈등을 겪게 되고, 래빗의 갈등으로 재니스는 만취 상태에서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것으로 래빗은 다시한번 가정을 버리고 루스를 찾아간다.

 

그가 균형을 잡으려던 것들은 무게가 없다. 갑자기 그의 내부가 아주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빽빽한 그물 한가운데 있는 순수하고 텅 빈 공간이다. 모르겠어. 그는 루스에게 계속 그렇게 말했다. 그는 모른다.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의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무한히 작게, 잡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같다. (본문 436p)

 

저자 존 업다이크는 교외에 사는 미국인들의 불륜 등 결혼생활의 불안정성을 다루는 작가로 유명해졌으며, 사회적 관습의 붕괴에 내재한 혼란과 자유의 묘사는 많은 논란(본문 442p)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그의 이런 묘사가 이 작품에 많이 수록되어있다. 현재 출간되는 소설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묘사지만, 1960년대 당시 이 작품은 큰 화제가 되었으리라는 것은 작품의 묘사를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해리의 감독이었던 토세로의 모습은 나약하고 능력없는 노인에 불과했으며, 뇌출혈로 인해 기억력조차 온전하지 않지만, 그는 해리에게 충고한다.

 

"옳으냐 그르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야. 우리. 우리가 만드는 거야. 불행을 막기 위해. 변함없이, 해리, 변함없이. 불행은 그것을 따르지 않는 데서 나와. 우리 자신의 불행은 아니지. 처음에는 우리 자신의 불행이 아닌 경우가 많아. 그런데 이제 너도 너 자신의 인생에서 그런 예를 하나 본 거야." (본문 397p)

 

이 작품은 미국이 물질적인 발달로 인해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왔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을 표출하게 되었고, 불륜이나 관습이 붕괴되었던 시기였다. 래빗은 바로 그 시기를 살아가는 인물로 그 시대를 표현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쳇바퀴 돌아가듯 똑같은 생활, 무료함으로 누구나 한번쯤은 이탈을 꿈꾼다.

"내가 나 자신이 될 배짱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 대가를 치러준다는 거야."(본문 214p) 해리는 이렇게 말하지만, 나 자신이 될 배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스스로가 만들어가야한다.

 

"인생은 계속되어야 해. 우리에게 남은 것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야 해."(본문 389p)

래빗은 달린다. 그의 인생은 그가 느꼈던 그 무료한 일상을 다시 시작하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달린다. 인생은 계속 되어야만 하니까.

우리도 이탈을 꿈꾸고, 무료함에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을 갖는다. 희망을 기대하고 이탈한 삶에서 래빗은 또다른 현실 속으로 돌아왔다. 그가 추구했던 희망이라는 것은 현실에 대한 도피였지만, 결국 그가 돌아올 곳은 현실뿐이다. 우리는 도피가 아닌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달려야함을 래빗은 너무도 처절하게 보여주었다.

내게는 좀 따분하고 지루하게 다가온 책이었지만, 저자는 인생의 깊이있는 의미를 담아두었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덧붙히자면, 그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대한 내 무지함으로도 그가 담아놓은 심리적인 묘사는 탁월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가라는 그의 칭호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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